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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부꾸미 Apr 07. 2021

코스모폴리탄이 낳은 괴물




 성인이 되는 것만큼 짜릿한 순간이 또 있을까. 차곡차곡 눌러 담아온 야망을 한 순간에 터뜨리는 시기. 나 하나로도 나를 증명할 수 있어야 하는 시기. 상상만 하던 것들을 조심스럽게 시작해보는 그런 시기.


 이맘때 가감없이 드러나는 맹목적 열정은 굳이 나이를 물어보지 않아도 아, 스무 살이구나 짐작케 한다. 뭘 하고 싶었는지 의도가 뚜렷이 파악되는 메이크업이라든지, 얼굴형과 아무 관계없는 긴 생머리 스타일이라든지, 하다못해 술잔을 쥔 느낌까지도 서툴다.




 조그맣고 단순한 가전제품 하나를 사더라도 전원을 켜기 전에 매뉴얼부터 정독하는 내 성격상 아무 이론적 정보 없이 성인이 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거금을 투자해 코스모폴리탄 잡지를 정기 구독하는 것으로 그 포문을 열었다. 수능 참고서를 사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코스모폴리탄은 나를 성인의 신세계로 이끄는 일종의 안내서였다. 검색 한 번이면 동영상으로 아이라인 그리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요즘 친구들이여, 문명의 발달에 감사하라.


 물론 괴리감은 있었다. 잡지에는 성공한 30대 초반 여성 CEO들이 백 만 원이 우스운 원피스를 입고 바 체어에 다리를 늘어뜨리고 앉아 인터뷰를 하거나 백화점 브랜드의 몇 만 원 짜리 워터프루프 컬러 마스카라가 봄 필수 아이템으로 등장했다. 가진 돈에서 해결할 수 있는 조악한 대용품들이 내 옷장과 화장대를 메워갔다. 내 체형에는 어울리지 않는 옷들, 하얗던 얼굴도 거무죽죽하게 보이게 만드는 색의 화장품. 잡지를 매뉴얼 삼아 그런 시행착오들을 거치는 시간이 꽤나 길었다고 고백해본다. 


 그 안에서 발견한 또 하나의 신세계는 경구피임약이었다. 남자친구의 손을 지스팟으로 이끄는 방법, 여성 상위에서 무릎이 덜 아픈 방법들과 나란히 그 동안 나를 괴롭혀온 어마어마한 생리 양과 통증에 대한 해결책을 그렇게 우연히 찾아내고야 말았다. 몇 번이나 그 부분을 정독했는지 모른다. 피임약을 꾸준히 복용하면 자궁 내막의 두께가 얇게 형성되어 생리 양이 줄어들고 생리통도 경감된다는 것이다. 유레카! 거금의 정기 구독이 보람이 있었어!


 수업이 끝나고 신촌으로 달려갔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피임약’이다 보니 내 얼굴을 알아볼지도 모르는 동네 약국이 아니라 번화가의 약국을 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잡지에 광고 중이던 경구피임약 이름을 외워갔다. 혹시 몰라 약사와의 첨예한 대화를 미리 그려보기까지 했다.


- ㅇㅇ보라 주세요. (침착한 목소리)

- 그 약이 왜 필요하시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 피임 때문은 아니고요, 생리 양이 너무 많고 생리통도 심해서 먹어보려고요. 어디서 읽었는데 피임약을 먹는 게 도움이 된다고 해서요. (떨지 말고 차분하게 설명)


 백화점 옆에 있던 큰 약국에는 약사가 세 명이나 있었다.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여자 약사가 없어서 응대 중인 고객이 없던 가장 젊은 남자 약사에게 다가갔다.


- ㅇㅇ보라 주세요.

- 5,000원이요.


 약사는 초콜릿보다도 작은 상자 하나를 올려놓았다. 약을 사는 데에 구구절절 설명이 필요할 거란 내 예상은 빗나갔다. 아무런 난관 없이 내 손에 들어온 21알의 알약은 존재감 없이 가벼웠다. 


 그렇게 어느 날부터 자가 처방으로 복용하기 시작한 피임약은 지나고 보니 대략 12년 정도를 복용한 셈이 되었다. 




 약이 처음부터 마법을 부리진 않았다. 처음 몸 안에 들어오는 호르몬제에 적응하기까지 부작용을 겪으며 약의 종류도 몇 번이나 바꿨다. 오히려 생리통이 심해지는 약도 있었고, 속이 메스꺼워지는 약도 있었다. 많지 않은 종류 중에 이것저것 바꿔가며 최종 정착한 약에는 편두통이라는 부작용이 있었지만, 그 외에 더 바꿔볼 대안이 없었다. 몇 년 동안이나 틈틈이 찾아오는 편두통 때문에 머리가 맑은 느낌은 어떤 거였더라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저 습관적으로 한 달에 한 번 손님이 많아 정신없는 약국을 골라 약을 샀고, 나중에는 그마저도 귀찮아 한 번에 세 달치 정도를 샀다. 가방 안주머니에 넣어둔 약은 한 알이 너무도 작아 물 없이도 침을 모아 삼킬 수 있었다. 매일 밤 11시에는 알람이 울리지 않아도 잊지 않고 약을 삼켰다.


 부작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약을 끊지 못했던 이유는, 실제로 약을 복용하는 동안 생리 양과 생리통이 줄어들긴 했기 때문이다. 8일이 지속되던 생리는 7일로 하루가 줄어들었고, 4일 간 대형 생리대를 한 시간에 한 번 씩 꼬박꼬박 갈아야 했던 것도 이틀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 정도의 변화만으로도 긍정적이었다. 때문에 약을 끊는 순간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게 될 것이 무서웠다. 


  산부인과에서 피임약을 처방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아주 뒤늦은 일이었다. 그것도 역시 잡지를 통해서였다. 피임이 목적이 아니더라도 산부인과에서 생리통 등으로 진료를 받으면 적절한 피임약을 처방해준다는 것이다. 27살에 처음으로 산부인과에 찾아갔다. 병원 문을 넘기까지 얼마나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는지 모른다.


 이번에도 내 예상을 빗나갔다. 전설처럼 소문으로만 들어온 질 초음파는 하지 않았다. 의사는 사춘기 무렵부터 이어져 내려온 유구한 생리통 역사와, 손바닥만 한 생리대를 삽시간에 무용지물로 만드는 생리 양과, 그동안 거쳐 온 피임약들에 대해 가만가만 듣고는 

- 그럼 야즈 드실래요?

하고 커피 한 잔 권유하듯이 도리어 내게 물었다. 이건 내가 결정하는 것이었던가? 아파서 병원에 가면 그럼 일단 3일은 이 약을 먹어봅시다. 하면서 내 의사와 관계없이 처방을 내려주는 게 아니었던가? 생리통이란 건 뭐가 달라서 약을 먹을지 말지 나에게 되묻는 걸까?


 혼란 속에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서 받아 온 새 피임약은 원래 먹던 것의 두 배를 뛰어넘는 가격이었다. 병원에 갈 때마다 처방해주는 약은 최대 세 통. 한 번에 지불해야 하는 약값이 부담스러워 나는 형편이 쪼들릴 때는 이틀에 한 번 약을 먹기도 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뭘 위한 약 복용이었는지도 의문스럽다.


 나에게 잘 어울리는 옷들과 잘 맞는 화장품들이 옷장과 화장대를 채워가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생리통에 대해 내가 알게 된 건 처음 잡지를 펼쳤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취향, 성격, 잘 하는 것과 못 하는 것, 그렇게 차근차근 나를 알아가는 동안에도 내 몸 속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그저 막연하기만 했으니. 


 의외로 가진 열정과 들인 노력에 비해 돌아오는 것이 없는 건 내 몸뿐이었다는 게 참 이상한 일이다. 그 허탈함이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지속될 거라는 걸 이 나이가 되어 비로소 알게 되었다는 게 그나마 나에게 돌아온 보상인걸까? 미용실에 가면 버릇처럼 코스모폴리탄을 펼쳐드는 나는 아직도 몇 백 만 원짜리 신상 가방 소개에 머리털이 쭈뼛 선다. 그러면서도 가방을 든 내 모습을 잠시 떠올려보고... 이쯤 되면 참고서 중독이지만 성적이 오르지 않는 딱한 학생 정도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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