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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부꾸미 Apr 07. 2021

죄 많은 소녀




 열네 살, 그러니까 중학교 1학년이던 어느 여름날, 나는 집으로 가는 언덕길에서 쓰러졌다. 기절한다는 건 상상했던 것만큼 드라마틱하지 않았다. 사막에 스러지는 어린 왕자처럼 천천히 풀썩 쓰러지거나 한참 뒤 눈을 뜨고는 ‘여긴 어디예요?’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무거운 책가방을 짊어진 등은 땀에 흠뻑 젖었고, 그럼에도 더운 건지 추운 건지조차 구분도 안 되는 오한이 반복되어 한 걸음 한 걸음 겨우 언덕을 올랐다. 갑자기 눈앞이 빨갛게 물들고 그다음 다시 티비를 끈 것처럼 까맣게 변하더니 다리에 힘이 풀려 뒤로 고꾸라지는 것처럼 주저앉았다. 아마도 정신을 잃은 것은 몇 초 정도였을 것이다. 온통 빙글빙글한 눈을 떴을 때는 남의 집 담벼락 밑 그늘이었고, 뒤를 따라오던 아저씨가 나를 옮겨 놓고 학생, 괜찮아? 하고 땀이 가득한 놀란 얼굴로 물어봐주었다.


 그 날, 생리통이 심해 제대로 앉아 있을 수가 없다는 나의 말에 양호 선생님은 의심이 가득한 곁눈으로 위아래를 훑으며 하얀 펜잘 한 알을 손바닥에 올려주었다. 손바닥에 닿은 선생님의 손끝은 너무나 차가웠고, 한 시간만 누워 있어도 되겠냐는 말은 꺼내보지도 못했다.


 생리를 이유로 체육 시간에 주번 대신 교실에 남아있기로 한 아이가 이미 2명이 있었다. 미리 바꿔달라고 말하지 못한 게 죄다. 수업 시작 전 운동장 두 바퀴를 열 맞춰 뛰는 동안 가장 뒤에 처진 채로 천근만근인 운동화를 직직 끌며 흙먼지만 일으키다 선생님의 지적을 받았다. 생리통이 심하다는 내 고백에 선생님은 참나, 이 얘기를 몇 번째 듣는 줄 알아? 50명 중 대여섯 명이 동시에 생리를 한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 하냐? 하고 나 말고도 여럿 들으라는 듯이 소리를 질렀다. 


- 생리한다는 놈들 다 나와서 저쪽 앉아있어! 


 주번과 바꾸지 못한 나포함 4명은 운동장 구석 땡볕에 앉아 선생님의 싸늘한 시선과 나머지 아이들의 의심스러운 시선을 한꺼번에 받아야 했다. 




 생리는 일종의 잘못이었다. 화장실에 자주 드나들어야 하는 것도, 아파서 바른 자세로 수업을 듣지 못하는 것도, 체육 수업에 참관만 하는 것도 모두 죄였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고개를 제대로 들 수 없다. 생리 중이라는 것을 밝혀야 하는 순간마다 고개를 숙인 채 눈치를 봐야 했다. 심지어 친구들에게서도 따가운 눈총을 받는다. 아직 초경도 시작하지 않은 아이, 생리 주기가 이미 정착된 아이, 생리통이 심한 아이, 아무 느낌도 없이 사나흘이면 생리가 끝나는 모든 종류의 아이가 혼재하기 때문이다. 


 따지자면 나는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봐도 좋을 아이였다. 초등학교 4학년 말에 시작된 생리는 중학교에 들어서면서 이미 주기가 정착되어 한 달에 한 번 8일 동안 꼬박꼬박 이어졌다. 양도 어마어마해서 수업 하나가 끝날 때마다 화장실에 가면 대형 사이즈의 생리대가 피로 꽉 차고도 넘쳐 팬티 옆 라인과 허벅지 사이에 묻어나곤 했다.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첫날과 이튿날은 아랫배를 쥐어짜는 생리통 때문에 허리를 제대로 펼 수가 없었다. 양호실에서 굽실거려야 받을 수 있는 진통제는 너무 독해서 매번 속이 울렁거렸다. 매달 내 몸에 일어나는 이 잘못은 형벌을 잊지 않고 함께 데려오는 셈이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어떻게 버텼나 싶다. 나만 그랬던 건 아니었을 테니까. 지금처럼 좌변기가 아닌 재래식 화변기로만 이루어진 학교 화장실에서 생리대를 교체하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속옷을 벗어 무릎께에 걸쳐두고 기마자세로 사용한 생리대를 떼어내는 동안 생리혈이 후두둑 떨어져 팬티에 묻어버리는 일도 다반사였다. 


 무사히 쪼그려 앉는 데까지 성공해도 사용한 생리대를 새 생리대의 겉 포장지에 싸서 버려야 하는데, 새것을 펴는 동안 헌것을 둘 곳이 마땅치 않다. 그래서 가끔 화장실 청소를 하다보면 끔찍한 일이 발생하는데 벽에 붙어 있는 사용한 생리대가 그것이다. 쪼그려 앉은 눈높이의 벽에 떡하니 그로테스크하게 붙어있는 피 묻은 생리대는 화장실 청소 당번들을 기겁하게 만들곤 했다. 정신병자냐 변태냐 욕이 섞인 의견이 분분했지만 그때의 나는 아마도 가엾은 누군가가 새 생리대를 펴는 동안 헌 것을 둘 곳이 없어 벽에 붙여 놓았다가 깜박한 것 일거라고 추측했었다. 쉬는 시간이 좀 짧았어야지 말이다. 아이들이 몰리는 시간의 그 급박함이 얼마나 혼을 빼놓았을지. 본의 아니게 테러 가해자가 되었을 각 학교의 몇몇 어린 소녀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표한다.






 그 시절 생리와 관련한 모든 과정이 형벌처럼 느껴졌던 건 현재의 몸의 상태를 관찰하는 걸 소극적으로 만드는 데에 일조했다. 다만 불확실한 미래를 상상하며 견디는 법만 배웠던 것이다. 출소일자를 받아두고 매일매일 엑스자를 달력에 그려나가는 죄수처럼. 다 크면 안 아프겠지. 생리양도 좀 줄어들겠지. 화장실에 자주 간다고, 달리지 않는다고 혼내는 사람도 없겠지 하면서.


 기억을 뒤지고 뒤져도 도움이 되었던 어른은 단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물어볼 사람도, 물어본다한들 시원스레 대답해줄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키를 재는 도토리 같았던 우리들은 얼마 되지 않는 경험을 그러모아, 위로 두텁게 올라가지 않고 옆으로만 얕게 퍼져가는 지식의 한계를 경험했다. 어, 너는 생리 시작 전에 배가 아파? 나는 시작하고 나야 아픈데... 어, 너는 피가 맑은 색이야? 나는 검은 덩어리처럼 나오는데... 개인차가 심한 이런 경험을 백 개, 천 개 모아 듣는다 한들 해답은 없었다. 내가 정상인지, 네가 비정상인지 알 방법도 없었다.


 십대의 몸은 마음만큼이나 불안정하다. 겉보기에 멀쩡해도 비정상으로 자라고 있는지 이상한 증상들이 있어도 정상적으로 안정되어가는 과정인지 판단할 길이 없다. 그러니 가능성을 열어두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아무것도 모르는 덜 자란 아이의 몫이 아니라 분명히 어른들의 몫이었겠지.


 물과 함께 진통제를 쥐어주며, 약을 먹으면 통증은 가라앉겠지만 네가 아직 어려 속이 울렁거릴지도 모르니 누워서 조금 쉬다가 가라고 말하는 양호 선생님이 있었더라면. 50명중 대여섯 명이 동시에 생리를 하는 일이 당연히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체육 선생님이 있었더라면. 배가아파 뒹굴 때마다 ‘괜찮아, 나도 그땐 그랬어.’라고 말하기보다 ‘나도 그랬는데 너까지 그런 걸 보니 병원에 한 번 가보는 게 좋겠다.’라고 말하는 엄마가 있었더라면. 그랬다면 어린 나는 내 몸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관찰했을지도 모르겠다. 막연한 기다림으로 쩔쩔매지 않고 적극적인 도움을 청하며 형벌을 끝낼 날을 기다리는 모범수가 되지 않았을까. 


 네 죄가 무엇이냐 묻거든, 언제든 눈물을 흘리며 고해할 것이다. 제 죄는 요란하게 생리한 죄입니다. 양 많고 아프고 떨 수 있는 요란은 다 떨었습니다. 그로 인한 형벌도 달게 받았습니다. 지은 죄에 비해 형벌이 너무 길게 늘어지고 호된 감은 있지만요. 그런데 말이죠, 이 죄는 대체 누가 언제 너그러이 사하여 주시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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