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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부꾸미 Apr 07. 2021

탐폰 실패자의 기록




 생리대는 착용만으로도 괴롭다. 푹 젖은 부분을 내 몸에 대고 걷는 것도 앉는 것도 끔찍하다. 여름에는 또 어떤가. 생리대 끄트머리가 닿는 엉덩이께에는 땀띠가 오소소 올라온다. 앉았다 일어설 때 흔히들 비유하는 뜨끈한 굴 같은 생리 혈 덩어리가 꿀렁하고 나오고, 그게 흡수가 되지 않은 채로 생리대 겉면을 데굴데굴 배회하는 게 느껴질 때. 이 더러운 기분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도저히 생생하게 전달할 수가 없다.


 엄마는 생리대를 사용했고, 당연히 그 방법은 내게 대물림되었다. 생리대가 아닌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건 중학교 때 처음 알았다. 가장 친했던 친구 하나가 엄마에게 받았다며 천 파우치에 귀중히 모셔온 탐폰을 꺼내든 것이다. 몇몇이 은밀히 몰려들어 구경했다. 가녀린 비닐을 벗기자 실 꼬리가 달린 주사기 모양의 기다란 플라스틱이 나왔다. 우리는 너도나도 한 번씩 만져보고 들여다보며 답해주는 이 없는 질문만 서로 던졌다.


- 이게 몸에 들어간다고? 가능한가?

- 주사기처럼 이걸 누르면 내가 넣은 길이보다 더 깊이 들어간다는 말이잖아? 못 빼면 어떡해?

- 그럼 이걸 끼면 다 벗고 서 있을 때 덜렁덜렁 실이 나와 있는 게 보이는 거야? 


 그녀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엄마한테 이미 확실하게 넣는 방법을 배웠고, 설명서도 정독했으니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이것만 성공하면 니들처럼 피로 축축한 나날은 안녕이다. 친구는 잠시 뒤 찾아올 우월감을 미리 느끼고 있었다. 시간이 여유로운 점심시간을 골라 당당하게 화장실로 탐폰을 들고 간 그녀는 한참 만에, 우리가 생각한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서야 땀이 범벅된 벌건 얼굴로 돌아왔다.


- 야, 이거 안 돼. 내 몸에 구멍이 없어.


 아이들은 다시 머리를 모았다. 생리가 나오는 걸 보면 분명 길은 있을 텐데 이상하게 나도 씻을 때 구멍이 있다고 느껴본 적은 없다. 평소엔 닫혀 있다가 생리가 나올 때만 열리나? 그럴 리가 있느냐, 약간의 틈이라도 있는데 못 찾는 거겠지. 우리는 이 난제를 두고 누구 한 명 나서서 도전해 볼 마음 없이 입으로만 쫑알댔다.


 듣자하니 친구는 결국 그날 저녁 샤워하다말고 엄마에게 넣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차가운 화장실 바닥에 누운 채로 엄마가 엉엉 우는 그녀를 붙잡고 어떻게든 넣었다는데, 대체 엄마는 무슨 죄. 그 얘기는 내가 살면서 들어온 기괴하고 끔찍한 이야기 탑 5안에 든다. 


 그 얘기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인지 나는 성인이 될 때까지 탐폰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생리대의 찝찝함과 불쾌함도 세월이 쌓이니 익숙해져서 그러려니 하게 됐다. 그러던 내가 탐폰에 도전하게 된 건 순전히 필요에 의해서였다.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작은 패션광고기획사에 입사했을 때, 그곳에서 나는 이름대신 ‘막내’라고 불렸다. 막내야, ~좀 해줘. 막내야, ~는 했니? 막내의 역할은 신데렐라와도 같아서 회사가 매끄럽게 돌아가게 하기 위한 온갖 잡일이 막내의 몫이었다. 사무실과 화장실 청소를 하고, 필요한 비품들을 사와서 채워두고, 손님이 오시면 커피를 내오고, 촬영 시 필요한 소품들을 대여해오고, 각 나라 별 패션 잡지를 스크랩하고, 카탈로그 가제본을 만들고... 내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보다 분주하게 몸을 놀리는 시간이 훨씬 더 길었다. 엉덩이 한 번 제대로 붙일 새가 없었던지라 생리 기간이 아주 곤란해졌다. 한 시간에 한 번씩은 화장실에 가야 할 만큼 양이 많은데, 때를 놓쳐 바지에 피가 묻어나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결국 공포에 직면해야 했다. 탐폰을 착용하고 생리대까지 덧대면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난생 첫 구매인만큼 가장 유명하다는 외국 회사의 탐폰을 주문했다. 종류는 생리량과 나이에 따라 주니어용부터 대여섯 개 정도로 다양했다. 나는 가장 무난해 보이는 ‘normal’사이즈와 ‘extra’라는 단어가 붙은 탐폰 두 가지를 샀다. 양이 많으니까, 오래 버텨야 하니까 엑스트라 정도는 써야지.


 첫 도전은 마음 편한 집에서 하기로 했다. 이미 꼼꼼하게 읽었지만 그래도 설명서를 옆에 펼쳐두고 그림에 나와 있는 대로 자세를 잡았다. 설명서가 초보에게 추천하는 쉬운 자세는 선 채로 한쪽 다리를 변기 위에 올려둔 자세였다. 자, 심호흡을 크게 하고 해보자. 


-???


 구멍이 없다던 친구의 벌건 얼굴이 떠올랐다. 정말이었다. 탐폰 머리를 내 몸 어디에 문질러 봐도 아프기만 할 뿐 이렇다 할 구멍이 없었다. 당황하는 동안 바닥으로 피가 똑똑 떨어지기 시작했다. 일단 후퇴. 


 실패의 충격을 충분히 털어내고 다음 날 다시 변기에 다리 하나를 올리고 섰다. 마찬가지였다. 피 묻은 탐폰의 머리는 질 입구를 찾지 못하고 방황했다. 진땀이 나고 손이 덜덜 떨려 왔다. 한 차례 다시 숨을 고른 다음 나는 자세를 바꿨다. 무릎을 조금 구부리고 엉거주춤 선 자세였다. 오히려 그렇게 서니 질 입구로 추정되는 오목하게 패인 부분을 찾을 수 있었다. 설명서에 적힌 대로 내쉬는 호흡에 살살 밀어 넣었다. ‘으으으으’ 소리가 절로 나왔다. 바들바들 떨며 겨우 표시된 지점까지 넣고 주사기 같은 뒷부분을 눌렀다. 의외로 몸속 더 깊이 들어가고 있는 본체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거울에 첫 성공을 거둔 내 몰골이 비쳤다. 봐줄 수가 없는 처참한 얼굴이었다.


 일단 성공하고 나니 두 번째에는 아주 조금 더 수월했고, 세 번째에는 그것보다 아주 조금 더 수월했다. 뺄 때의 느낌이 생각보다 쓰라리다는 것에 놀라긴 했지만 몸 밖으로 생리혈이 줄줄 나오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문제는 폭풍 야근을 하던 날 벌어졌다. 아무리 계산해 봐도 화장실에 갈 짬조차 나지 않을 것 같았던 그날, 나는 회사에서 대망의 엑스트라 사이즈를 개봉했다. 엑스트라 사이즈의 탐폰은 노멀 사이즈보다 어림잡아 1.5배는 굵었다. 내 엄지손가락보다 굵은 건 확실했다. 약간 겁을 먹었지만 넣는 방법이야 똑같으니까. 몇 번 해봤듯 숨을 내쉬며 깊게 넣었다. 제대로 질 안에 안착된 게 느껴졌다. 


 정신없이 일을 하고 있는데 왠지 자꾸만 식은땀이 났다. 몸이 달달 떨리고 오한이 느껴졌다. 몸살이 오려나, 대강 넘기고 시키는 일들을 처리하느라 바빠 몇 시간을 꾹꾹 참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아지기는커녕 눈앞이 하얗게 자꾸 어지러웠고 금방에라도 토할 듯 속이 울렁거렸다. 뭔가 문제가 있다, 생각이 들었던 나는 제일 먼저 화장실로 달려갔다. 


 힘없이 떨리는 손으로 겨우겨우 실을 당기자 말 그대로 애기주먹만 하게 부푼 탐폰이 쑥 하고 빠져나왔다. 생리혈 뿐만 아니라 내 질 안의 수분까지 모조리 빨아들인 것 같았다. 어마어마하게 큰 탐폰 덩어리를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


 놀랍게도 몸 안에서 탐폰을 빼내자 무슨 해독제라도 맞은 사람처럼 순식간에 이상한 증상들이 한 번에 사라졌다. 오한도 없어지고 어지러움과 메스꺼운 증상도 바로 가라앉았다. 그날 나는 깔끔하게 탐폰을 포기했다. 내 증상이 독성쇼크증후군이었는지, 아니면 생리량에 비해 과한 사이즈의 탐폰을 써서 생긴 일시적인 부작용인지는 몰랐지만 다시 경험할지 모르는 어떤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았다. 


 잠깐의 쾌락 끝에 나는 다시 뜨끈한 굴의 세계로 돌아왔다. 중간 중간 또 다른 색다른 시도-생리컵이라든지, 면생리대라든지-가 있었지만 결국 다시 평범한 생리대로 돌아온 걸 보면 실용성과 정신적 평화 측면에서 내겐 이게 최선이었나 보다.


 아직까지 생리기간을 평범한 날들과 똑같이 보낼 수 있게 하는 그 무언가는 없다. 몸 밖으로 빠져나온 생리혈을 고스란히 살에 맞닿아있게 하거나, 그걸 떨치기 위해서는 몸에 무엇인가를 넣어야 하는 두려움을 감수해야 한다. 혹은 몸에 무해하다는 이유로 부지런히 피를 지워내는 손빨래를 해야 하기도 한다.


 가끔은 탐폰이나 생리컵, 면생리대같은 생리대 대용품을 사용하면서 너무 편해졌다고, 너무 좋아졌다고 말하는 우리들을 보면 한편으로 씁쓸함이 느껴진다. 완벽한 편함은 아직 없다. 생리는 어떤 방식으로 처리하든 낱낱이 느껴지고 참아내야 하는 부분이다.


 더 편하게, 생리 기간도 일상처럼 보낼 수 있는 무언가가 생겨나길 바라는 욕심을 좀 더 부리고 싶다. 그러면 한 달에 일주일이나 피를 흘리는 그 시간도 잘못한 게 없는데 벌을 받는 것처럼 부당하게 느껴지지는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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