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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부꾸미 Dec 30. 2019

졸업 앨범




“아니 눈을 왜 이렇게 뜬 거야, 도대체?”

몇 달 뒤면 나와 평생을 함께 할 이 남자는 내 침대 위 요염한 자주색 극세사 이불을 온 몸에 돌돌 감고 엎드린 채 말한다. 손에는 나와의 긴 격투 끝에 빼앗은 내 고등학교 졸업앨범이 들려있다. 하아... 엄마는 내가 저걸 그렇게 결혼 전에 불살라 버리자고 얘기했건만... 예비 사위의 가당찮은 애교에 넘어가 기어코 무거운 책 더미를 쭈그려 들춰내고 손에 들려주고 말았다.


“응? 왜 이렇게 떴냐고? 좀 놀았어? 세 보이고 싶었어?”

이 티 없는 예비 반려자를 선택했던 기준 중 가장 주된 항목은 얼굴이었다. 졸업앨범에도 굴욕 따위 없었던 그는 이미 당당하게 과거 사진들을 공개한 바 있다. 교복을 입고도 싱그럽게 웃을 수 있다는 걸 그의 졸업앨범을 보고 처음 알았다.


그가 손가락으로 톡톡 짚는 졸업앨범 사진 속 나는, 나는 말이다. 상태가 좋지 않다. 굴림체로 한 칸씩 띄어쓰기 된 이름 석 자 위에 회색 교복을 입은 나는 앞머리로 왼쪽 눈을 반 정도 덮어 가렸고 심지어 그 앞머리는 뭔가 딱딱한 플라스틱처럼 광이 난다. 입 꼬리는 오른쪽만 비열하게 올라가 있고 화룡정점은 눈이 삼백안이라는 점이다. 마치 재능이 없는 연기자가 머그샷 촬영을 연기하고 있는 듯한 사진이다. 프릴 블라우스를 입은 굉장한 기세의 절대적 위험분자다.


19세의 나날들은 기분 좋은 기억 하나만 떠올리면 대롱대롱 엮인 구슬처럼 행복한 기억들이 딸려 나오고, 더러운 기억 하나만 떠올리면 줄줄이 끔찍한 날들이 딸려 올라오기 마련이다. 해서 굳이 그러고 싶진 않지만 졸업앨범 사진을 찍던 그 날도 한 번 떠올려볼까.


그 날 우리 반 촬영은 오후였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점심을 건너뛰겠다고 했다. 조금이라도 사진에 날씬하게 나오고 싶다는 이유였다. 원래 벼락치기란 효과에 비해 임하는 자세만큼은 진지하다. 물론 나는 벼락치기를 선호할 만큼 매사에 바싹 달아오르진 않는 타입이라 외로운 점심식사를 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 반에 눈썹 장인이 있기 때문이었다. 평소에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지만 졸업앨범 촬영 얼마 전부터 그녀는 몇몇의 입에 눈썹 정리가 예쁘게 잘 된 아이로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정말로 그녀의 눈썹은 그 시절 유행하던 패션잡지에 나오는 모델들처럼 꼬리가 섬세하고 가는 선으로 아치를 그리며 빠진 날렵한 눈썹이었다. 그렇게 손질된 눈썹과 비교하면 평범한 우리의 눈썹은 누가 섣불리 헤치고 들어가지도 못하는 정글과도 같았다.


아이들은 며칠 전부터 그녀에게 눈썹 손질을 예약했다. 말수도 적고 반 애들과 교류도 적던 그녀는 처음에는 남의 눈썹은 손질해 본 적 없다며 거절하다, 몇 명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립글로스 사줄게 하며 절박하게 부탁하자 갑자기 책임감이 샘솟은 듯 촬영 날 점심시간에 순서대로 자기가 해줄 수 있을 만큼 해주겠다고 했다. 다른 반에도 이런 꾸밈봉사자가 있었는지 우리 반만 유난이었던 건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당일 점심시간, 아이들은 그녀의 주변에 줄을 섰다. 아예 책상을 밀어 공간을 확보해두고 의자 두 개를 마주 놓아 눈썹 장인의 작업이 용이하도록 했다. 교실 뒤 거울 앞에서는 상대적으로 홍보가 덜 된 고데기 장인이 앞머리를 손질해 주고 있었다. 나는 어디에 줄을 섰느냐. 아무데도 서지 않았다. 나에게는 미술하는 아이라는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다. 하루에 2절 사이즈 그림도 휙휙 그려내는 난데 털 몇 가닥 예쁘게 밀어내는 일은 일도 아닐 거라는 밑도끝도 없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자신을 백퍼센트 철석같이 믿은 건 아니어서 장인이 손질하는 걸 어깨너머로 보고 따라할 요량으로 눈썹칼을 사갔다. 장인은 역시 남의 눈썹에 손대기는 처음이라 생각보다 작업시간이 오래 걸렸다. 뒤쪽에 줄을 선 아이들은 행여나 자연산 정글눈썹으로 졸업앨범 사진이 찍힐까봐 발을 동동 굴렀다. 세 번째 아이 정도까지의 숨죽인 작업 현장을 옆에서 조용히 관찰한 나는 내 자리로 돌아와 당차게 손거울을 필통에 기대 세웠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연필로 가이드라인이라도 그렸어야 했다. 그냥 홀린 듯이 눈썹칼로 눈썹 꼬리 아랫부분 털을 살살 밀어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털이 우수수 떨어져 당황했다. 하지만 어딘지 푸르스름하게 밀어낸 부분의 살이 드러나고 꼬리가 가늘어지자 뭔가 세련된 도시여성이 된 기분으로 금세 자신감이 충만해졌다.


자, 꼬리가 가늘어졌으니 전체적인 모양이 아치가 나와야 한다. 그러려면 이론적으로는 눈썹 중앙 부분을 좀 더 깊게 파내야 동그랗게 선이 빠지겠지. 이제 와서 생각하면 눈썹부분 살이라도 다른 손으로 좀 들어 올렸어야 했다. 세 번의 관찰에서 그 부분을 놓친 나는 그냥 중앙 부분에 칼을 갖다 댔는데 생각처럼 동그란 모양으로 파지지가 않았다. 그렇게 굴려 밀다가는 피를 보지 싶었다. 어설픈 몇 번의 칼질이 이어졌는데, 그런데. 어? 아까 만들어둔 꼬리가 아예 사라졌다. 아예. 눈썹의 절반이 통째로 날아갔다. 심지어 살아남은 부분의 끝자락은 겁을 먹고 칼질을 해 계단처럼 각이 졌다.


눈썹 장인이 생각보다 작업 시간이 오래 걸려 진땀을 빼고 있길래, 나름 내가 화려한 손기술로 내 눈썹을 완성하고 제 2의 봉사자로 데뷔하려는 야심이 있었다. 그 야심도 통째로 날아갔다. 빨리 남은 한 쪽 눈썹이라도 어떻게 수습을 해봐야 했다. 하지만 한 번의 실패로 너무 주눅이든 탓인지 남은 한 쪽은 과감히 꼬리를 빼낸 스타일에 도전할 수 없었다. 그저 눈썹 주변을 소심하게 배회하며 잔털 정도만 밀어내고 그나마 끝을 뾰족하게 할 때에는 손까지 달달 떨었다.


억장이 무너졌다. 반 날아간 눈썹 쪽을 앞머리로 덮어 가리려는데 참 이놈의 앞머리는 자기 뜻을 굽히지 않고 원래 있던 방향에 있겠다고만 한다. 아무리 빗질을 해도 원래 가르마와 반대로 앞머리를 보내려니 이마 중앙으로 흩어지며 반뿐인 눈썹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할 수 없이 거울 앞 고데기 장인에게 부탁했다. 고데기 장인은 처음엔 부드럽게 시작했으나 생각보다 주장이 센 내 앞머리에 당황해 그것마저 태워 없애버릴 기세로 연기를 내며 앞머리를 고정시켰다. 그러고도 불안한지 헤어스프레이를 달아나는 바퀴벌레 잡듯 앞머리 위에 한참을 뿌려줬다. 그렇게 플라스틱처럼 광이 나는 딱딱한 앞머리가 완성되었다.


그럼 삼백안은 어떻게 된 것이냐. 우리 반 촬영이 시작되고 아이들이 번호 순서대로 줄을 섰을 때, 또 한 번의 동요가 있었다. 야, 평생 가는 졸업앨범 사진인데 안경 쓰고 찍으면 안 예쁘지 않냐? 그래 맞아, 안경 쓰면 눈 작아 보이잖아. 이렇게 누군가의 입에서 시작된 대화가 일파만파 늘어선 줄을 덮쳐 나를 포함한 안경 쓴 아이들 몇몇은 크게 수긍하며 안경을 자켓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는 서로서로 코에 생긴 안경다리 자국을 문질러주며 순서를 기다렸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어 조명 앞 의자에 앉았을 때, 아차 싶었다. 나는 보통 근시가 아니다. 반에서 손에 꼽을 만큼 눈이 나쁜 수퍼 근시다. 안경알을 압축하고 또 해도 남들보다 두툼한 안경의 주인이다. ‘여기 보세요~’ 하는데 어디를 보라는 건지 몰랐다. 카메라로 추정되는 검은 무언가의 실루엣만 겨우 보였다. 저기쯤인가 하고 눈을 치켜뜨는데 찰칵. ‘턱 좀 당기고 미소~’라고 해서 눈은 그대로 두고 턱만 더 당긴 상태로 웃으려는 찰나 찰칵.


그래도 사진을 받기 전까진 일말의 기대는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살아남은 눈썹 한 쪽이 있고, 사이다병 밑구멍 같은 안경도 벗었는데. 그 시절은 디지털 카메라가 아니어서 찍는 사람도 바로바로 확인을 할 수는 없었고, 그저 모두 사진 나오는 날만 기다릴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느 날 삼백안의 플라스틱 앞머리를 하고 비열한 웃음을 짓는 처음 보는 여자 사진을 받았다.


사실 이 사건으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았지만, 모든 사건에는 2차 피해가 있는 법. 사진에 눈을 감았거나 표현하기 힘들만큼 잘못 나온 경우는 사진사 아저씨가 추려서 다시 한 번 그들만 모아 촬영을 진행한다. 당연히 내가 그 안에 포함 될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누가 봐도 여학생이 아니라 범죄자잖아. 프릴 블라우스를 걸친 악마라고. 하지만 두 번째 촬영 명단에는 내가 없었다. 사진사 아저씨는 내 사진을 보고도 아 이렇게 생긴 애가 있나보다 했던 걸까. 그렇게 편견 없는 사진사 아저씨 덕분에 두 번째 상처를 받았다. 


순두부처럼 자존감이 쉽게 뭉개지는 나이. 그 날 이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눈썹 펜슬과 뷰티 잡지를 사는 일이었고, 그 다음 한 일은 소프트렌즈를 맞춘 것이었다. 물론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에 딱 맞는 짓이었지만. 그렇게 내 졸업앨범은 받자마자 봉인됐다. 세월이 흐르고 이런 식으로 봉인이 무기력하게 해제 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지. 균형 잡힌 부드러운 눈썹산과 자연스러운 앞머리와 눈웃음을 갖기까지 어떤 희생들이 있어왔는지 너는 모른다. 찰나의 사진에는 세상 누구보다 위협적인 얼굴이지만, 그걸로 남몰래 마음이 찌부러지고 말았던 딱한 19세 소녀를 다독여야겠다. 지금의 나는 갈고 닦여 내면이 위협적인 인물로 자라났거든. 


“응응? 눈을 왜 이렇게 떴냐고오?”

이놈아. 세 보이고 싶은 19세 소녀가 어디 있겠니. 예뻐 보이고 싶었다. 예뻐 보이고 싶었어. 처절한 사연을 네가 알겠니. 하지만 설명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한다.


“왜. 너무 치명적이야? 네 아내로 삼기에는 감당이 안 돼?”

나의 예비반려자는 캭캭 소리를 내며 웃고 데구르르 구른다. 일단 오늘은 여기서 일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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