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찹쌀부꾸미 Apr 07. 2021

오늘도 간호간병통합병동은
평화롭다




 어릴 적 따라가 본 입원 병동의 냄새가 아직도 선명하다. 6인실 병실 커튼 사이사이마다 빼곡하게 차 있는 어설프게 묵은 살림살이들. 먼지를 털지 않고 뭉개기만 해 병의 냄새가 그대로 밴 담요. 끼니 때 풍겨오는 텁텁한 병원 식사 냄새. 멀쩡한 음식도 그 플라스틱 그릇에 담겨 뚜껑을 닫아두는 순간 냄새가 묘해진다. 그 냄새가 빠지기도 전에 퍼져오는 주사약 냄새. 뭐 하나 편하지 않은 냄새와는 달리 너무도 익숙하게 일상처럼 머무는 보호자들의 이질감에 압도당해 매번 병원을 완전히 빠져나올 때 까지 얼어있었다. 


 대대로 암 발병률이 높은 우리 집안에서는 어느 정도 나이가 지긋해지면 한 두 달 쯤 입원해 있는 게 절차처럼 반복되었다. 그 때마다 환자 옆을 지키는 건 집안의 대소사를 몽땅 챙겨야 마땅한 며느리인 엄마였다. 엄마는 막내고모,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아버지, 그리고 아빠까지 이어지는 길고 되풀이되는 병수발에 끊임없이 동원되어야 했다. 


 어지간한 몸살감기 따위로 엄마에게 어리광을 부려봤자 통하지 않는 건 당연했다. ‘아프다’라는 건 암 정도의 중병이 아니면 설득력이 없었다. 내 생리통이 방치될 수밖에 없는 여건이었다는 거다.


 엄마는 모두의 투병이 끝나고, 돌아가실 분들은 돌아가신 다음에야 엄마의 병을 앓았다. 갑상선암이 초기에 발견되었고, 자궁을 적출했으며, 고장나버린 팔꿈치도 무릎도 수술을 필요로 했다. 환자 곁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고된지 누구보다 잘 알았던 엄마는 되도록이면 본인이 입원해 있는 동안 병실에서 누군가가 함께 뭉개지 않도록 애썼다. 이 모든 걸 눈으로 보고 마음속에 나도 모르게 담아뒀던 이상적인 계획 같은 게 있었는지, 내가 수술하고 간호간병통합병동에 머무르게 될 거란 사실이 너무 안심이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말 그대로 간호와 간병에 관련된 모든 일을 간호사와 조무사가 도맡아 하는 것이다. 가족이 상주하며 밤에 화장실 가는 환자를 부축할 필요도, 환자 대신 식판을 내다놓을 필요도 없다. 필요한 모든 부분은 호출벨로 부탁하면 된다. 그렇다보니 그 얄궂음에 보호자의 컨디션을 환자보다 떨어뜨려 놓는다는 악명이 자자한 보호자용 침대라든가 의자는 아예 없다. 덕분에 병실은 깨끗하고 고요하다.






 수술을 앞둔 밤 옆 침대의 아주머니는 수술 후 통증에 엉엉 울었다. 아마도 숨까지 헐떡이며 본격적으로 울기엔 배가 너무 아팠는지 그야말로 어어어엉어어엉 하며 내쉬는 숨을 빌어 곡소리를 냈다. 간호사들이 몇 번이나 무통주사가 잘 들어가는지 확인하고 불편한 부분을 체크했지만 통증이 크게 줄진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잠이 어설피 들었다 깨다를 반복하며 내일 수술 후 통증이 어떨지 가늠해 보았지만 딱히 상상할 수 있는 범위의 것이 아니어서 그만두었다.


 다음 날 수술이 끝나고 나를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을 때 순간적으로 빠르게 내 몸의 상태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잘 된 건가? 배가 아픈 건가? 소변 줄 꽂아둔 부분이 아프진 않나? 엄마는 수술하고 나올 때마다 그렇게 춥다고 했는데 내가 지금 추운가? 마취약이 덜 빠져 몽롱한 와중에도 나름 정밀하고 꼼꼼한 스캔을 계속했고 내린 결론은 이상하게도 아무 느낌이 없다는 거였다. 정말로 아무 느낌이 없었다. 아픈 곳도 불편한 곳도 없었고 심지도 춥지도 않았다. 오히려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귀동냥으로 듣고 어깨너머로 보아온 수술 후 일반적 상태에 비해 너무 멀쩡했던 것이다.


 병실에 올라와 시트에 싸인 채 짐짝처럼 침대로 옮겨지는 동안에도 나는 깽 소리 한번 내지 않았다. 뭐 어디 조금 불편한 곳이라도 있어야 징징거리고 눈물 한 방울 떨구겠는데 내 상태는 너무도 평온했다. 전체적으로 몸이 가벼운 껍데기만 남은 것처럼 붕 뜨며 멍하긴 했지만 확실히 아픈 건 아니었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던 남편에게 아주 멀쩡한 목소리로 배고플 텐데 밥을 먹고 오라고까지 했다. 그리고는 아주 깊은 잠을 잤다. 


 얼마나 잤을까 밥을 먹고 돌아온 남편을 다시 한 번 안심시키고 집으로 돌려보내고 나니 그제야 몸의 디테일한 상태들이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둥실 떠 있는 듯 멍하게 아무렇지 않았던 그 상태는 마취 때문이었나 보다. 엉덩이 밑은 무슨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축축했고, 손으로 더듬거려 사타구니께를 만져보았지만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몸에는 뭔가 주렁주렁 달려있었고 수술 부위는... 알고 싶지도 않았다. 순식간에 찝찝한 기분이 되어버린 건 물론 몸속이 서서히 아프기 시작했다. 분명 수술한 건 자궁인데 아픈 건 몸속 전체였다. 통증이 심하면 20분마다 무통주사 버튼을 추가로 누르라는 간호사의 말이 떠올랐는데, 그걸 누를 정도로 아프냐 하면 또 그건 아니었다. 숨이 가빠올 정도거나 저절로 몸부림이 쳐질 정도였으면 당연히 눌렀을 것이다. 통증 역시 내 손이 닿을 수 있는 껍데기를 제외한 어느 먼 구역의 일인 듯 미묘하게 부자연스러운 얼얼함이 있었다.


 간호사와 조무사들은 전날 옆 침대의 환자에게 그랬듯 수시로 내 곳곳을 들여다보며 상태를 체크했다. 열이 영 떨어지지 않아 얼음이 그득 담긴 주머니를 양 옆구리에 끼고 있게 했고 (너무 추워져서 슬그머니 몸에서 떨어뜨려 놓았다.) 쫄쫄 채워지는 소변주머니를 확인했다. 물을 마실 수 있는 시간이 되었을 때에도 물병에 직접 빨대를 꽂아 마시기 편하게 도와주었다.


 의외로 가족 보호자가 상주하며 할 수 있는 일은 꼭 필요한 것이 아닐 때가 많다. 비뚤게 놓여 불편한 베개를 다시 괴어 주거나, 침대를 기울여 상체를 올려주거나, 환자 대신 손을 뻗어 물병을 집어주는 등의 일은 팔을 움직일 수 있다면 환자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좀 더 힘을 필요로 하거나 번거로운 일들은 조무사가 도와준다. 





 여성병원이라 이곳에 입원한 다수는 누군가의 병수발에 조금씩 동원되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거나, 가족 뒷바라지에 치여 지친 사람들임에 틀림없었다. 상주하는 보호자가 없이 적막한 병실에서 간혹 들려오는 나지막한 통화소리는 그런 상황들을 짐작 가능하게 했다. 


- 오지 마. 앉을 데도 없어. 마음만으로도 고마워. 아이, 몸이야 서서히 회복하면 되고. 몸은 이래도 마음은 편해. 때 되면 삼시세끼 꼬박꼬박 밥 챙겨주고 이런 호사를 언제 누리겠어. 조용하게 혼자 호텔 왔다 생각하고 있는 거지, 호호호


 가족이 아닌 그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속마음은 그렇게 어딘가 애잔한 구석들이 있었다. 나또한 가장 힘든 시기를 겪고 이겨내는 과정을 가족에게 낱낱이 전가하지 않아도 된다는 데에서 분명한 편안함을 느꼈다. 주변에서 혼자 입원해있으면 불편하거나 심심하지 않느냐고 많이들 물어왔지만 적어도 내가 있던 6인실에서 그렇게 느낀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 가족에게 내 몸의 회복을 미루는 수동적인 환자보다 몸도 마음도 회복이 빠른 것 같다면 내 착각일까. 


 옆 침대 아주머니 환자분이 수술을 마치고 병실로 돌아와 침대로 옮겨졌을 때가 생각난다. 커튼 너머 끙끙 앓는 아주머니 옆으로 두 개의 그림자가 섰다. 대화로 미루어 남편과 성인이 된 아들인 것 같았다. 그림자는 드문드문 괜찮냐, 아프냐 물었고 아주머니는 신음하듯이 들릴락말락하게 대꾸했다.


- 괜찮겠어? 그럼 아프지 안 아프겠어?


 또다시 잠잠해진 그림자. 멀뚱히 선 두 사람에게 아주머니는 다시 겨우 소리를 쥐어짜 말했다.


- 목이 너무 말라. 거즈 좀 물에 축여 달라고 해봐.


 둘 중 제대로 들은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커튼 너머 나만 제대로 들었다. 아마 병간호 같은 일 언저리에도 가보지 않은 두 사람이었을 거다. 그래서 생소한 요구에 귀가 제대로 열리지 않았을 거다.


 몇 마디 떼기도 힘든 아주머니에게 자꾸 응? 응??? 뭐라고? 되묻는 무력한 두 그림자. 아주머니는 또박또박 말하려는 몇 번의 시도를 하다 최대한 힘주어 소리 냈다. 아마도 정상적인 컨디션이었으면 악을 썼을 것이다.


- 가! 가!! 어휴...


 크지도 않은 아주머니의 쇳소리에 곰 같은 그림자 둘은 미련이 남은 듯한 분위기를 최대한 풍기며 커튼 밖으로 슬그머니 빠져나갔다. 바로 누른 호출 벨에 간호사는 5초 만에 바람처럼 들어왔고 곧 물을 축인 거즈를 든 조무사도 들어온 모양이었다. 정말이지 웃음이 나오지 않는 훈훈한 풍경이다.






이전 12화 정신 잃고 하사불성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