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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부꾸미 Apr 07. 2021

가스 나오셨을까요?




 수술 후 환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내려지는 지령은 단 하나다.


 ‘걸어라’ 


 몸을 움직여야 빨리 회복된다는 것이다. 입원해 있었던 3층은 수액을 건 가느다란 거치대를 겨우 부여잡고 비슷한 속도로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는 분홍 원피스의 좀비들로 붐볐다. 더러는 깔끔한 머리를 올려 묶고 허리를 곧게 펴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산책하듯 여유롭게 걷는 환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말 그대로 좀비에 가깝다. 씻지 못한 채 누워만 있어 기름기가 촉촉한 머리를 대강 모아 묶고 한 손은 수액거치대에 의존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뒷 허리나 배를 받친다. 어딘가 기우뚱하고 구부정한 채로 떼는 발걸음은 지면을 쓸며 평소 보폭의 반의 반 정도로 이동한다. 병실이 모인 곳을 뱅글뱅글 돌며 걷는데, 이동 속도가 비슷하다보니 서로 마주치는 곳도 매번 비슷하다.


 내게는 나름의 야심찬 회복 계획이 있었다. 수술 직후 누워있는 동안은 필라테스 호흡으로 깊은 숨을 쉬어 장기를 활성화 시키고, 움직일 수 있게 되면 코어에 힘을 단단히 주고 걷자. 운동을 오래 했으니 이런 건 일도 아니다. 3층 분홍 원피스의 좀비들 가운데 단연 두각을 드러내며 회복해보자. 






 수술 다음 날, 무통 주사가 사라지고 난 다음부터의 내 몸은 지옥이 따로 없었다. 몸속의 장기를 누가 야무지게 싹 꺼내 하나씩 주먹질을 한 뒤 순서에 안 맞게 대강 넣어놓은 게 분명했다. 복강경 수술 시 주입한 가스는 몸 안을 배회하다 쇄골 근처까지 올라왔는지 조금만 움직여도 어깨와 윗 가슴이 아렸다. 배에 뚫린 네 개의 구멍 중 오른쪽 아랫배의 구멍에는 보기만 해도 정신이 아득해지는 피주머니가 연결되어 있었는데, 그 탓인지 몸의 오른쪽 등이 숨 쉴 때마다 고통스럽게 욱신거렸다. 


 필라테스 호흡 같은 건 시도도 못했다. 깊은 숨을 들이마셔 몸을 살짝 부풀리는 것만으로도 구석구석 짜릿한 통증이 이어졌다. 누워있는 동안 양 옆으로 몸을 자꾸 굴려주라는 간호사의 말에 나무늘보가 움직이는 속도로 조금씩 움직일 때에도 뭍에 던져진 물고기마냥 얕은 숨만 할딱거릴 뿐이었다. 물을 마시려고 리모컨으로 침대를 조금 세워보면 아, 정말 상체를 일으켜 세우는 데에 복근이 나 모르는 사이 일을 하고 있긴 했구나 하고 절절하게 와 닿을 만큼 배가 경련을 일으키며 아파왔다. 무기력해진 배는 약간의 각도 조절만으로도 움찔거리며 긴장하고 있었다.


- 가스 나오셨을까요?


 가스님에 대한 본인의 사적 호기심처럼 느껴지는 이 공손하고도 기괴한 어투의 질문을 몇 번씩이나 받았지만, 배에 힘을 줄 수 없는 나는 가스를 밀어낼 힘조차 없었다. 아니, 쇄골쯤에서 느껴지는 가스를 무슨 수로 저 멀리 밑까지 내려 보낸단 말인가. 포기한 얼굴로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는 내게 간호사들은 ‘걷기 시작하시면 나오실 거예요.’라고 또 나와 가스님을 한껏 다독여주었다.


 길게 늘어져 있던 소변줄을 빼고 나서는 조금씩 걷는 시도를 해야 했다. 1차 난관은 침대에서 내려오는 것이었다. 침대의 힘이 아니고서는 상체를 일으킬 수 없어 리모컨으로 침대를 거의 90도까지 세웠다. 그래도 마지막 한 순간은 배에 힘을 쥐어짜야 온전히 침대에서 상체를 떨어뜨릴 수 있다.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다리를 꼬물꼬물 옆으로 천천히 움직여 침대 밖으로 떨어뜨리고 하얗게 질린 발로 슬리퍼를 신은 뒤 온전히 서는 게 2차 난관이다. 고작 이틀 누워있었을 뿐인데 다리가 한 번도 서 본적 없는 것처럼 후들거렸다. 두 손을 모아 수액 거치대를 꼭 쥐고 스윽스윽 밀며 병실 밖으로 나와 좀비 대열에 합류했다.


 코어가 뭡니까. 그건 어디 있는 겁니까. 코어는커녕 몸 어느 부위도 단단하게 만들 수 없는 상태로 앞을 향해 나아갔다. 아마 옆에서 봤으면 거의 반 접힌 채로 걷고 있었을 것이다. 오른쪽 허리와 등이 너무 아파 그 쪽을 잔뜩 찌그러뜨려 구부렸다. 한참을 걸었는데 다른 좀비들과 속도가 안 맞다는 걸 느꼈다. 나는 좀비 중에서도 상태가 가장 나쁜 좀비였다. 남들 걷는 속도에도 한참 미치지 못했다. 탕비실에서 쉬던 조무사 한 분이 내가 지나가는 걸 보고 뛰쳐나와 말했다.


- 이렇게 걸어서는 운동이 안 돼요! 힘들어도 허리힘을 딱 주고 되도록이면 곧게 걸어야 운동이 되는 거야! 


 잔뜩 구부러진 허리를 억지로 밀며 세우려고 나대신 노력해주는 손길에 큰 한숨을 내쉬며 허리를 펴는 노력을 해봤지만 움직인 건 몇 도 정도였다. 그렇게 공손히 찌그러진 상태로 몇 바퀴나 돌고나도 쇄골 언저리의 가스는 내려올 기미가 없었다.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다른 환자들이 조금씩 핏기도 돌아오고 기력을 회복하는 사이 나는 나아지는 게 없었다. 스케줄대로라면 일반식을 먹어야 할 때이지만 음식이 넘어가지 않아 계속 죽 몇 숟가락 뜨는 게 다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몸이 몸답게 활동을 해야 음식도 삼키고 소화도 되고 그러다보면 가스도 나오고 할 텐데, 걷는 게 걷는 것 같지 않으니 활동이라고 볼 수도 없고 음식도 안 넘어가고 회복도 더디고 악순환이었다. 


 절망에 빠졌다. 퇴원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렇게 회복이 더뎌서 내가 일상에 무사히 안착할 수 있는 걸까.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에 잠이 오지 않아 늦은 밤과 새벽에도 눈이 떠질 때면 몇 바퀴씩 적막한 병동을 돌았다. 


 기적의 순간은 피주머니를 빼는 날 찾아왔다. 이른 아침 예고된 시간에 찾아오신 선생님은 오른쪽 배에 매달려 원피스 주머니에 들어가 있는데도 자꾸만 시선을 잡아채는 피주머니를 뺄 준비를 했다. 


- 조금 불편하실 거예요. 숨 내쉬세요.


 하아아... 내쉬는 동안 뱃속에 길게 들어가 있던 관이 꿈틀거리며 빠져나왔고 몸에서 완전히 빠져나온 순간 푸악, 하고 움찔거리며 숨이 멎었다. 꼼꼼하게 그 부분을 소독하고 밴드를 붙여주는 동안 오른쪽 등 통증이 사라진 게 느껴졌다. 정말로 피주머니 때문이었나. 그날 아침 나는 비교적 나아진 컨디션으로 일반식을 먹었다.


 등 통증이 가라앉은 이후부터는 회복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허리를 거의 편 채로 걸을 수 있었고, 그렇게 고대하던 가스님도 나와 주셨다. 무릎을 조금 올리면 장기들이 꿀렁 하면서 통증을 느꼈지만 그래도 퇴원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데에는 문제  없을 것 같았다. 


 욕심이 끝이 없는 게, 몸이 회복되기 시작하니 청결한 인간이 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얼른 퇴원해서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누워있을 때에도 앉아있을 때에도 필라테스 호흡을 하며 보송한 몸을 상상했다.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좀비들은 기력을 회복하고 인간에 가까운 모습으로 병원을 빠져나갔다. 몇 번이고 그런 생각을 했다. 의사와 간호사, 조무사들이 있으면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그랬듯 죽은 자도 움직이게 하겠다 라는 생각. 그들이 숨 쉬랄 때 쉬고, 걸으랄 때 걷고, 먹으란 것들을 먹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몸은 조금씩 원래의 상태를 되찾아가고 있다. 신기한 일이다. 


 건강에 자만해서는 안 된다는 것처럼 회복에도 시간이 필요하고 순서가 있다. 자만할 일도 조급할 일도 아니었다. 인간이 되는 데에도 열 달이 필요한데, 좀비를 벗어나려면 인내심을 좀 가질 필요가 있다. 온순한 좀비가 되어 분홍 원피스에 몸을 맡기고 병동을 빙빙 돌다 보면 하루는 밥을 삼킬 수 있게 되고 하루는 허리가 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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