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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부꾸미 Jan 13. 2020

하노이 쪽으로 지다

첫 번째




“엄마, 할 수 있겠어?”

미주는 의심과 걱정이 가득한 말투로 재차 물었다. 연실은 핸드폰을 어깨와 뺨 사이에 끼운 채 칼같이 정돈된 미주의 책상 위를 기웃거렸다. 영어로 뭐라 뭐라 쓰인 두껍고 큰 책부터 손바닥만 한 수첩까지 키 순서대로 가지런히 꽂혀있는 책들 사이에서 투명한 폴더 하나를 찾아냈다.

“찾았어. 이거 이거 맨 위에 전자 항공권 여정 안내서라고 써 있는 거 말하는 거 아냐. 이거랑 여권이랑 챙겨서 가면 되잖아, 맞지? 모르는 거는 가서 물어보면 되지 뭘 걱정해? 엄마가 어디 가서 헤매는 사람이디?”


연실은 대수롭지 않은 투로 말하며 폴더를 챙겨들고 미주의 방을 나왔다. 미주는 그래도 맘이 안 놓였던지 공항 도착하면 어디로 가서 어떻게 하면 되는지 내가 순서대로 다 정리해서 메시지로 보내줄게, 남들 하는 대로만 하면 되니까 어려울 건 없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하면서 핸드폰 너머로 주절주절 걱정을 내비쳤다. 연실은 자꾸 흘러내리는 핸드폰을 추키며 신문지를 거실 한구석에 조그맣게 펼치고 앉은 자세로 슬슬 엉덩이를 밀어 이동해 TV 밑 서랍에서 손톱깎이를 꺼냈다. 아이고 알았어, 알았어. 니 일이나 봐, 바쁘다며. 하면서 간신히 전화를 끊었다.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은 이틀 전 일이었다. “엄마, 큰일 났어.”하며 전화한 미주는 출장이 연장되어 하루 늦게 들어온다고 알렸다. 원래 미주가 홍콩 출장에서 돌아오면 공항에서 연실을 만나 그대로 모녀가 하노이로 여행을 떠날 계획이었다. 미주 말마따나 큰일은 큰일이었던 것이, 연실은 이번이 첫 해외여행이었다. 여권도 지난주에 처음 만들었고, 인천 국제공항은 가본 적이 없었다. 미주는 취소 수수료가 세서 두 명 분을 다 취소하기는 그렇고, 자기 것만 다음 날 이른 시간으로 변경을 할 테니 엄마는 하루 먼저 하노이에 가 있는 게 어떻겠느냐 했다. 호텔에는 자기가 연락을 해 둘 테니 엄마는 공항에서 택시 타고 호텔로 이동해서 저녁 드시고 하루만 혼자 주무시면 다음날 늦은 오전에는 자기가 하노이에 도착할 수 있다고. 연실은 불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짐짓 담담한 척 그러마 했다. 일에 문제가 생겨서 그렇다는 데 투덜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처음인데 엄마가 혼자 어떻게 해 하며 나약한 소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똑 소리 나는 딸이 또 오죽 꼼꼼하게 알려주겠나 싶어 걱정을 조금 내려두기로 했다.



미주가 똑 소리 나는 딸이라는 건 연실 또래의 동네 여자들이 입을 모아 하는 얘기였다. 워낙 눈에 띄지 않고 아줌마들을 만나도 큰 소리로 인사하는 법 없이 고개만 푹 숙여 겨우 인사 흉내를 내던 딸이라, 자라는 동안에는 어른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중상위권의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역시 서울 중상위권의 대학에 입학한 미주는 옆에서 다그치지 않아도 착실하게 취업 준비를 해 누구나 알만한 외국계 기업에 입사했다. 동네 여자들의 입에 오르내린 건 그때부터였다. 그 집 딸내미는 참 조용하고 야무져. 학교 다닐 때부터 진득한 데가 있었잖아. 딸내미 또 해외 출장 갔다며? 아이고 그렇게 능력 있는 딸 두니 무슨 걱정이 있겠어 자기는? 정작 연실은 때늦은 칭찬과는 별개로 삼십 대 중반을 넘어가는 나이에도 결혼은커녕 남자 얘기조차 없는 딸이 걱정이었다.



돋보기를 쓰고 몸을 공처럼 둥그렇게 구부린 채 발톱을 깎는 연실의 등에 대고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던 남편이 싫은 소리를 했다. “그러게 바쁜 애 닦달해서 해외여행 가겠다고 난리 난리 칠 때 알아봤다. 혼자 헤매다가 어디서 미아 됐다고 나한테 연락 오게 만들지나 말어.” 연실은 대꾸도 안 하고 묵묵히 쇠공처럼 가만히 딱딱 발톱만 깎아냈다.



난리 난리 친 것 까진 아니었다. 그저 미사 끝나고 커피 마시며 동네 여자들과 수다를 떨다가 또 미주 얘기가 나왔던 것이다. 최근에 아들 내외가 보내준 유럽여행 패키지를 다녀왔다는 누군가의 자랑을 시작으로 너도나도 그래 어디가 좋더라, 어디는 가봤어? 별별 나라 얘기가 다 나오고 시끄러운 참이었다. 별말 없이 웃는 표정으로 멀뚱멀뚱 귀만 기울이는 연실을 귀신같이 누군가가 알아채고 “아니, 자기 딸은 그렇게 일 년에 몇 번씩 해외로 출장 다니면서 생전 엄마 같이 가요 소리는 안 해?” 하는 바람에, 여차저차 하여 그 자리의 모든 사람이 연실이 해외에 가본 경험이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아유, 나는 그런 욕심 없어. 요샌 텔레비전에 세계 곳곳이 안 나오는 데 없이 다 나오더구만, 나이 먹고 왔다 갔다 비행기 타는 것도 힘들고 뭘 그리 다녀. 애써 큰 소리로 웃으며 대답하고 넘겼지만 영 초라해진 기분이었다.



그날 늦은 저녁 밥상머리에서 또 출장 스케줄이 잡혔다는 얘기를 꺼내는 미주에게 그 여자의 말을 복사라도 한 듯이 “야, 너는 맨날 해외로 출장 다니면서 엄마 보고는 여행 한 번 같이 가요 소리가 없냐?” 투정하듯 말을 던졌고, 미주는 “그러네... 그 생각은 못 했네. 내가 한 번 알아볼게.” 하고 의외로 쉽게 연실의 말에 수긍했다. 쯧쯧 거리며 눈총을 던지는 남편에도 아랑곳 않고 의외의 반응에 기분이 좋아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저 인간은 은퇴 전에 출장도 다녀봤고, 동창들이랑 여행 계모임도 만들어 종종 다녀왔으니 이 기분을 어떻게 알겠어. 남편을 향한 괘씸한 눈빛을 애써 감추고 차돌박이 볶음이며 계란찜을 미주 밥그릇 쪽으로 슬며시 밀어주었다.








먼저 할 일은 여권을 만드는 일이었다. 힘들여 기억을 더듬지 않아도 마지막으로 찍어 본 증명사진은 고등학교 졸업 때인 것이 확실했다. 수십 년 만에 증명사진을 찍으려니, 패인 주름이며 줄어든 머리숱이며 처진 입매며 가감 없이 마주할 세월의 흔적을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사진을 찍는 날엔 홈쇼핑에서 샀다가 세 번 써보고 장롱 구석에 처박아 뒀던 전기 헤어 세팅기를 꺼내고 드라이어와 롤빗을 동원해 최대한 머리의 볼륨을 살렸다. 굳어서 마른 논바닥처럼 갈라진 파우더도 쓸어 바르고 미주가 면세점에서 말린 장미색이 유행이라며 사다 줬던 립스틱도 꼼꼼하게 발랐다.


버스 두 정거장 거리에 있는 조그만 사진관에 걸어가 여권 사진을 찍으러 왔다고 말하는데 왠지 조금 긴장되었다. 미주보다 조금 어려 보이는 남자 사진사는 어머니, 고개 오른쪽으로 야악간만 갸우뚱 하실게요. 어머니, 턱 쪼오금만 뒤로 땡겨 볼까요. 어머니, 미소, 미소! 하며 연신 높은 목소리로 어머니를 찾았다. 잠깐 사이에 십 수장은 찍은 것 같은 사진사는 큰 모니터에 방금 찍은 사진들을 띄워놓고 한참을 고심하다 어머니, 요걸로 갈게요. 하며 사진 하나를 고른 뒤 잠시 잡지 보시면서 기다리라고 했다. 요즘 사진 기술이며 컴퓨터 기술은 실로 놀라운 것이어서 삼십 분 뒤 연실은 낯설긴 하지만 걱정했던 정도로 늙어 보이진 않는 12장의 자신을 마주했다. 사진을 들여다보던 연실에게 사진사는 “어머니, 입술색이 좀 더 환해야 젊어 보이실 것 같아서 컬러 좀 바꿔드렸어요.” 했다. 그러고 보니 사진 속 연실의 입술은 미주가 사준 립스틱 색보다 밝고 환한 붉은색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사과가 색도 예쁘고 알이 실해 한 봉지 샀다. 야근이 잦아 평일 저녁에 집에서 저녁을 먹는 일이 거의 없는 미주는 과일을 사다 놓으면 늦은 밤 조금씩 먹곤 했다. 어릴 때도 과일은 참 잘 챙겨 먹였다. 등에 업혀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빽빽 울다가도 제 주먹만 한 딸기 하나 등 너머로 쥐여주면 언제 울었냐는 듯 한참 동안 조용히 딸기를 빨아먹었다. 그랬던 미주를 위해 지금도 제철 과일만큼은 가리지 않고 챙겨두곤 했다.


여권은 구청에 신청한 지 일주일 만에 만들어졌다. 소파 끄트머리에서 돋보기안경을 쓰고 몇 번이나 녹색의 여권을 들여다보았다. 10년이나 남은 유효기간이 마치 새로 주어진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 10년 동안에는 해보지 못한 것들을 하고 나를 위한 시간으로 온전히 살아도 된다고 어디선가 허락받은 것 같았다.


미주는 며칠 뒤 비행기 티켓과 호텔을 예약했다고 말했다. 처음 가는 해외여행이니만큼 너무 장거리 비행은 엄마가 힘이 들 테고, 리조트에서 쉬기만 하는 곳도 의미가 없을 것 같아 이것저것 따져보니 하노이가 적당하겠더라고 했다. 시내 관광도 하고, 하롱베이도 가까우니 경치 구경하기도 좋을 거라고. 몇 번 출장으로 가본 곳이라 자기에게도 익숙해 가이드 하기에도 괜찮겠다고 했다.


“엄마, 그리고 이번에 같이 여행 가면 나 엄마한테 할 얘기도 있어.”

“뭔데.”

“가서 얘기할게요. 급한 얘기는 아냐.”

할 얘기라는 게 뭘까. 그것도 여행까지 가서 둘이 있을 때. 연실은 순간 불안한 마음이 피어올랐지만 어차피 가면 알게 될 일이니 더 생각은 말기로 했다. 좋은 곳에 가서 안 좋은 얘기를 할 리는 없다. 생애 첫 해외여행이 어떨지 기대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분주했다.







언제부터 베트남 여행이 이렇게 인기였나 싶을 정도로 TV에서는 베트남을 자주 소개했다. 얼굴이 익숙한 연예인들이 모여 그중 한 명이 가이드가 되어 주어진 예산으로 베트남을 여행하고, 덩치 큰 연예인 몇 명은 식탁 한가득 현지 음식을 시켜 놓고 그릇을 뚫어버릴 기세로 그 많은 걸 다 해치웠다. 날짜를 기다리는 동안 그렇게 TV 채널을 돌리다 홈쇼핑에서 ‘하노이+하롱베이 특가’라며 여행 상품을 파는 것을 발견할 때면 잠시 틀어두고 대략 어떤 곳을 가게 되는 건지 설레는 마음으로 구경하기도 했다. 딸이 데리고 다니는 거면 저것보다 훨씬 좋은 레스토랑에 가겠지. 딸이 잡았다는 호텔은 훨씬 더 신경 써서 고른 곳이겠지. 베트남은 커피가 맛있다던데 딸은 어딜 가야 그중에서도 제일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지 알고 있겠지. 생각해보면 미주의 선택들에 이렇게까지 전적으로 오롯이 확신이 드는 건 거의 처음이었다. 항상 연실은 미주의 많은 부분에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관여해야만 마음이 놓였기 때문이다.


동그랗게 봉긋한 배가 제법 임산부 태를 내기 시작할 때, 연실은 남편의 사업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이웃 여자를 따라 난생처음 무당을 만났다. 작지만 총기 어린 눈매에 가늘고 주름 없는 긴 입술을 일자로 앙 다문 무당은 이웃 여자에게 “해 바뀌기 전엔 어쩔 수 없어.” 소리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시원찮은 상담을 마친 이웃 여자가 툭툭 쳐 일어날 채비를 할 때 무당은 연실의 동그란 배를 곁눈으로 보며 “딸이라지?” 했다. “네. 딸이라고 하대요.” 무슨 말을 듣게 될지 몰라 몸 사리며 대답하자 무당은 덤덤하게 말했다. “즈그 엄마 딸도 아빠 딸도 아닌 애가 들어앉았네.” 연실은 무슨 뜻인지 묻고 싶었으나 배에서 눈을 떼지 않는 무당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당황한 눈만 꿈뻑거리다 뒷걸음질 치며 서둘러 방을 빠져나왔다.


의미를 모르고 세월이 흘러도 그 말이 잊히지 않는 건 당연했다. 연실은 미주가 자라면서 잔잔하게 속을 썩일 때마다 “너 내 딸 맞어?”라며 의문 섞인 화를 냈고, 뱃속까지 들여다보는 것 같던 무당의 눈빛을 떠올렸다. 미주의 성장 동안 내 뱃속에서 나온 딸이라 내가 가장 잘 안다는 걸 확인하고자 하는 집요한 관여는 계속되었다. 내가 가장 잘 알기 위해서는 내가 가장 잘 아는 형태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말이야 그렇지만 미주는 객관적 봤을 때 키우기 쉬운 편에 속했을 것이다. 심지어 동네 여자들은 미주 같은 딸이면 왼발 한 쪽으로도 키우겠다고들 했다. 몰라서 하는 말이다. 미주는 떼쓰거나 우는 일이 적었지만, 한 번 울기 시작하면 밤을 꼴딱 지새우며 사람 진을 빼놓는 건 예사였다. 자잘한 말썽을 부린 적도 꽤 있었는데, 한 번이라도 혼나거나 지적당한 일은 절대로 다시 되풀이하지 않았다. 대신 미주는 절대로 여느 아이들처럼 ‘잘못했어요.’하고 울며 비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연실에게 미주는 까다로운 딸이었다. 보통은 만들어둔 테두리 안에 얌전히 있지만 가끔씩 속을 전혀 알 수 없었다.


미주를 키우는 동안 연실은 딱 두 번 미주의 선택에 도시락을 싸 들고 반대했던 일이 있었다. 그중 한 번은 중학생이던 미주가 예고에 진학하고 싶다고 했을 때였다. 그때까지 미주는 그림을 곧잘 그렸다. 학교에서 받은 대부분의 상은 그림을 그려 받은 상이었다. 연실은 미주가 상을 받아올 때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널 미술 학원에 다니게 한 보람이 있구나 했다. 상을 받으니까 잘 그리나 보다 하는 거지 연실은 미주의 그림을 제대로 본 적은 없었다. 원래 미주알고주알 엄마에게 자랑하거나 떠드는 성격이 아닌 미주는 ‘어디 상 받은 그림 한 번 보자!’ 하고 지 아빠가 말하면 그제야 미적거리며 내키지 않는 투로 돌돌 말아둔 그림을 펼쳐 보이곤 했다.


그랬던 미주가 예고에 가고 싶다고 하자 연실은 오랜 시간을 두고 집요하게 말렸다. 아이의 실력이 아주 뛰어났더라면 진작 알아보고 예중에 보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상을 몇 번 받은 것으로 아예 진로를 결정하기에는 미래에 대한 보장에 비해 투자해야 하는 비용이 너무 컸다. 물론 두 번째 이유를 미주에게 직접 말하지는 않았으나 눈치 빠른 미주가 되묻긴 했었다. “엄마,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그런 거지? 내가 커서 갚을게. 진짜 약속해.” 연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불투명한 비전에 대해 강조할 뿐이었다. 반 년 정도 실랑이한 끝에 어느 날부터 문득 미주는 더 이상 예고에 진학하겠다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미주의 첫 남자친구를 반대했던 일이 두 번째다. 대학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봄, 연애하는 냄새를 솔솔 풍기는 미주에게 ‘너 남자친구 생겼냐?’하고 직접 물었고 미주는 금세 하얀 얼굴을 붉혔다. 어떤 앤지 엄마도 좀 보자. 사진이라도 좀 보자. 뭐 하는 앤데? 같은 학교 학생이야? 동갑이야 연상이야? 엄마에게도 딸에게도 처음 있는 일이라 연실은 미주를 마주칠 때마다 지칠 줄 모르고 한 가지씩 질문을 던졌고, 망설이다 미주가 보여준 핸드폰 속 남자친구 사진을 보고 기함을 했다. 사진 속 남자는 미주보다 예닐곱 살은 더 많아 보였고, 옆으로 길게 째진 눈이 매서웠다. 동그란 두상을 자랑하는 반삭 머리에 연실이 가장 혐오하는 피어싱과 문신이 셀 수도 없었다. 이런 애와 미주가 손잡고 거리를 다닐 것을 생각하니 끔찍하기만 했다. 직업이 타투이스트란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라 되묻자 문신 시술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너는 얘를 도대체 어떻게 만난 건데?” 미주는 한참을 우물쭈물하다 목덜미 뒤 쪽 옷을 살포시 끌어내렸다. 엄지손톱만 한 나비가 미주의 목덜미 아래쪽에 앉아 있었다.


연실은 충격과 더불어 배신감이 밀려왔다. 저 하나 잘 되라고 애써가며 남부럽지 않은 딸로 키워냈더니 그 딸은 멀쩡한 몸에 제 돈 주고 생채기를 만들고 왔다. 심지어 그 생채기 낸 놈한테 얼굴 붉혀가며 좋아하니 사귀니 이건 모두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연실은 앞뒤 가리지 않고 불같이 화를 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미주가 아직까지 이름도 모를 그놈과 결혼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었는데도 연실은 무조건 이 만남은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너 지금 정신 나간 거야. 그렇게 둘이 싸돌아다니다가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봐. 세상 창피해서 정말. 이게 멀쩡한 여자애가 만날 남자애 꼴이니. 직업도 그래. 불법이라며. 불법이라는 걸 알면서 직업으로 삼는 건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이유는 모르겠지만 미주 또한 결혼을 염두에 둔 진지한 만남이 아니란 걸 모를 만큼 우둔한 애가 아님에도 전에 본 적 없을 정도로 울면서 대들었다.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게 분명했다. 연실은 미주에게 많이 실망했지만 그 와중에도 이 모든 사실을 남편이 알게 될까 전전긍긍했다.


그 뒤로 미주가 그놈을 얼마나 더 만났는지 연실은 알 수 없었다. 안 보이는 곳에 나비 말고도 다른 그림이 더 생겼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미주는 그 사건 이후로 단 한 번도 연애 얘기를 한 적이 없다. 연실이 몇 번인가 눈치 봐 가며 넌지시 떠 보았을 때에도 미주는 만나는 남자 없다며 딱 잡아뗐다.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었지만 미주의 나이가 서른을 넘기면서부터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만나는 사람이 있는 거면 엄마한테도 어떤 사람인지 알려줘야지. 니 눈으로만 봐서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그래도 엄마가 봐야 괜찮은 사람인지 알지!”

이런 식의 채근을 해본 일도 있었지만 미주는 그럴 때마다 묘한 표정으로 연실을 빤히 들여다볼 뿐이었다. 연실은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던 무당의 눈동자를 떠올렸다.


요즘의 낌새로 봐서는 미주는 분명 만나는 누군가가 있긴 한 것 같았다. 연실은 자다가 두세 번은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나는 습관이 있었는데, 한밤중에 미주의 방문 틈으로 새어 나오는 빛과 함께 낮은 목소리로 통화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몇 번 있었다. 워낙에 퇴근시간이 늦어 늦게 자는 게 예사이긴 하지만 새벽 두세 시가 넘은 시간까지 통화하는 상대가 궁금했다. 살며시 방문에 귀 기울여보면 작게 웅얼거려 잘 안 들리긴 했어도 영어로 말하고 있는 듯했다. 뚜렷한 이유는 몰랐지만 왠지 그 점이 연실은 약간 마음에 걸렸다. 어두운 주방의 식탁 위엔 남겨진 사과 세 조각이 접시 위에 나란히 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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