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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부꾸미 Jan 13. 2020

하노이 쪽으로 지다

세 번째





삼십 분 뒤 착륙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내려서부터는 사람들이 가는 쪽으로 잘 따라가고 줄만 잘 서면 된다는 미주의 메시지 내용을 떠올렸다. 경험해보지 못한 타입의 진동과 함께 비행기가 거칠게 땅에 바퀴를 디디고 나니 다시 가벼운 긴장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는 호텔까지 무사히 가야 한다는 새로운 목표가 있다.


비행기가 완전히 멈춰 서자 사람들은 훈련이라도 받은 듯 일제히 안전벨트를 풀고 짐을 끌어내려 복도로 서서 내릴 준비를 했다. 연실도 허둥지둥 앞 좌석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핸드폰을 꺼냈다. 옆자리 남자는 좌석 위 짐칸에 넣어두었던 본인의 은색 캐리어를 꺼내면서 연실의 캐리어도 함께 꺼내주었다. 감사하다며 작은 목례를 했지만 남자는 보지 못하고 복도 쪽으로 돌아섰다.


사람들이 가는 쪽으로만 가면 된다는 말은 정말이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어디 따지러 가는 기세로 캐리어를 씩씩하게 굴리며 한 방향으로 걸었다. 어딜 가면 한국인들이 그렇게 재빠르다던데 정말 그렇구나 했다. 연실은 헤맬 새도 없이 사람들에 합류해 걷고 더딘 입국심사를 마쳐 후덥지근하면서도 축축하게 인공적인 찬 기운이 맴도는 공항의 출구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다.


바깥공기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더위도 더위지만 공기 중에 매캐하게 탄 냄새 같은 것이 섞여있었다. 기대했던 느낌의 이국적 공기는 아니었지만 확실히 우리나라와 다르긴 했다. 게다가 습기 때문에 캐리어를 쥔 손이 금방 뭐라도 묻은 듯 찝찝해졌다. 호텔에 도착하면 콧속을 물로 한 번 헹궈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공항 앞에는 택시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깡마른 기사들이 저마다 나와서 호객을 겸하며 차 트렁크에 짐을 대신 실어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연실은 수염이 없는, 잘 알 수는 없지만 굳이 추측하자면 미주 또래로 보이는 기사가 주인인 빨간색의 작은 택시에 타기로 했다. 뒷좌석에 캐리어를 가지고 타려 했으나 그는 연실이 그런 뜻을 내비치기도 전에 트렁크에 낡은 캐리어를 실었다. 어쩔 수 없이 연실은 핸드폰을 쥔 채 미주의 메시지를 띄워두고 뒷좌석에 올라탔다.


기사가 행선지가 어디냐는 듯 핸들에 왼손을 올려두고 눈을 크게 뜨고 룸미러로 연실을 쳐다봤다.

“어, 어... 그러니까... 깍상 써머셋.”

기사는 몸을 돌려 뒤돌아봤다. 핸드폰으로 지도를 보여 달라는 뜻 같았으나 연실도 지도에서 그곳을 찾을 줄 몰라 한국말로 발음할 수 있도록 써놓은 미주의 메시지 외에는 보여줄 것이 없었다.

“어... 몰라요? 모르겠어? 깍상 써머셋. 호안끼엠. 그렇게 말하면 알 거라던데?”

“호안끼엠?”

“어어. 맞아요, 거기. 호안끼엠 깍상 써머셋.”


택시는 일단 출발했다. 도로 위엔 차만큼이나 스쿠터가 많았다. 팔에 잔잔한 꽃무늬의 토시를 끼고 허리에는 비옷 재질의 천을 담요를 덮듯 두르고서는 차와 비슷한 속도로 달리는 스쿠터가 한두 대가 아니었다. 라디오인지 핸드폰에 연결된 건지는 모르겠으나 올드팝과 우리나라 트로트의 중간쯤 어딘가의 감성인 베트남 노래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핸들을 쥔 기사의 새끼손톱이 유난히 길다.


넓게 쭉 뻗은 도로를 한참 달리던 택시는 약간 좁은 도로로 들어섰다. 이제부터 본격 시내가 시작되는 모양이었다. 달리는 스쿠터들도 차에 스칠 듯이 가까워졌다. 차선과 신호는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4차선 도로를 아무렇지 않게 가로질러 건너가는 남자가 있는가 하면 스쿠터끼리 살짝 닿고도 아무렇지 않게 가던 길을 갔다. 연실이 탄 택시도 몇 번이나 아슬아슬한 순간이 있었으나 그때마다 기사는 무표정으로 기계처럼 경적을 누를 뿐 화를 내지는 않았다.


삼십 분 넘게 달려 사람이 꽤나 많은 번화가가 나타나자 기사는 슬금슬금 룸미러로 연실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거의 다 온 건가 싶었는데 기사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는 느린 속도로 운전을 하면서 통화를 이어갔는데, 핸드폰 너머의 통화 상대도 어지간히 목소리가 큰지 함께 택시에 타고 있는 것처럼 쩌렁쩌렁 울렸다.


창밖에 몰두하고 있던 연실은 분명히 아까 본 것 같은 식당을 다시 보게 되자 그제야 기사가 지금 호텔을 찾지 못해 같은 곳을 돌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마도 다른 기사에게 전화로 호텔이 어디인지 물어보는 통화이지 싶었다.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상대도 모르는 모양이다. 둘 중 하나가 지도를 보거나 검색을 하지 않는 이상 상의한다고 답이 나오는 문제가 아닌데 통화는 끊어질 생각이 없었다. 연실도 뾰족한 수가 없어 창밖에 써머셋 호텔이 보이는지 적극적으로 두리번거렸다.


오랜 통화를 끝낸 기사에게 연실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걸었다.

“몰라요? 어딘지 모르는 거야? 깍상 써머셋. 써머셋 호텔. 본 적 없어요? 아니 택시 기사가 길을 모르면 어떡하자는 거야, 정말...”

연실은 팔을 엑스 모양으로 만들며 몇 번이나 모르냐고 되물었는데, 기사는 룸미러를 통해 웃는 건지 억울한 건지 모를 표정으로 “호안끼엠. 호안끼엠”이라며 손가락으로 이곳을 가리켰다. 환장할 지경이었다. 그러니까 기사는 호안끼엠에 오긴 왔으나 호텔의 정확한 위치는 몰라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이었다.


연실은 가방 속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흔들었다.

“됐어요, 됐어. 계속 삥글삥글 돌기만 하고 돈만 더 받아먹으면 어떡해, 어딘지도 모르면서! 내려줘요. 나 내린다고.”


기사는 스쿠터가 줄지어 세워져있는 복잡한 길가에 연실을 내려주고 트렁크를 열어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걸레들 위에 사뿐히 얹혀있던 캐리어를 꺼내주었다. 연실은 인상을 썼고 기사는 눈치를 보듯 차에 올라타 복잡한 도로로 멀어져 갔다.









연실은 캐리어를 끌고 약간 큰 도로로 나섰다. 호텔이 어느 방향인지도 모르는 판에 무작정 걸어서 찾을 순 없으니 호텔 위치를 아는 택시를 다시 잡아 볼 생각이었다. 손님이 없는 택시가 다가오자 창문에 대고 “깍상 써머셋. 써머셋!” 하고 외쳐 보았으나, 세 대나 빤히 바라보기만 하고 그냥 가던 길을 갔다. 너무 가까워서 안 가려는 건지 어딘지 몰라서 안 가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한순간에 걱정이 몰려왔다. 미주는 연락이 되지 않는다. 회의 중일 수도 데이터가 다 된 것 일 수도 있다. 택시가 호텔 위치를 몰라 엉뚱한 곳에 내리게 되는 것은 예상하지 못한 사고였다. 연실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일단 사람이 더 많은 쪽으로 가보자. 호텔은 호안끼엠에 있고 여기가 호안끼엠이니까 분명히 걸어서 갈 만할 것이다.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물어볼 만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와이파이를 제공하는 카페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도보와 차도가 구분도 되지 않는 울퉁불퉁하고 더러운 길을 연실은 캐리어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걸었다.


큰 길을 찾아 무작정 걷는 동안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예전에 본 TV프로그램에서 베트남을 소개하면서, 서양에서 일몰이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쿠바라면 동양에는 베트남이 있다고 했던 말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화면 속에는 붉게 물든 강인지 호수 위를 농을 쓴 사람이 긴 배를 홀로 타고 물 위에 아름다운 검은 그림자를 만들어 냈었다. 저렇게 아름다운 노을이라면 혼자여도 외롭지 않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었던가. 기억하는 영상 속 일몰과 달리 빼곡한 건물과 나무 틈으로 보이는 하늘은 붉은 노을은커녕 그저 더 짙은 회색으로 어두워질 뿐이었다.


좁은 길 끝 멀리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곳이 보였다. 연실의 캐리어는 힘을 내 다급해진 발걸음을 뒤쫓았고 그곳에서 미주가 보여줬던 갈 곳 중 하나인 성 요셉 성당을 마주했다.


연실은 미주가 고등학생이던 때 성당을 다니기 시작해 세례를 받았다. 연실뿐만 아니라 수험생을 둔 주변의 많은 엄마들이 비종교인에서 종교인으로 삶의 철학을 바꾸는 시기였다. 절에서 100일 기도를 올리든 교회에서 예배를 보든 형태만 달랐을 뿐 목적은 같았다. 지금까지도 성당에 비교적 성실히 다니는 이유는 언제나 연실이 나서서 기도해야 마음이 놓이는 일들이 꾸준히 있어왔기 때문이다. 미주가 외국에 공부를 하러 당분간 떠날 때에도, 취업을 앞두고 통통하던 젖살이 빠지다 못해 볼 양옆에 움푹 그림자가 드리웠을 때에도, 정년퇴임을 앞둔 남편에게 갑상선암이 발견되었을 때에도 연실의 기도가 필요했다.


성당에서의 연실은 성당의 대소사에 관여하며 살림을 돕는 또래의 열성적인 다른 자매들에 비하면 소리 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편에 속했다. 하지만 종교가 없는 남편과 미주 앞에서는 거의 매주 미사에 참석하고 미사 후 다른 자매들과 수다를 떨다가 오는 것만으로도 열혈 신도로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미주는 여행 계획을 짜면서 프랑스가 베트남을 점령한 기념으로 세운 유명한 성당에 들를 예정이라며 ‘성당이니까 엄마가 좋아하겠지?’라고 핸드폰에서 오래된 성당 사진을 보여주었다. 연실은 소파 끝을 더듬어 돋보기안경을 찾아 쓰고 성당 사진을 옆으로 넘겨 몇 장이나 보았었다. 사실 이 어두침침하고 낡은 건물이 뭐가 그렇게 특별한지 도통 알 수 없었지만 연실은 웃으며 “그래애? 여기 사람들도 카톨릭 믿나 보지? 시간 맞으면 미사도 드리고 하면 참 좋겠네.”했다.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던 성당이 눈앞에 나타났다. 성당을 배경으로 하는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길가는 말도 못 하게 붐볐다. 앞 쪽에 있는 성당 정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성당 주변을 한 바퀴 크게 돌자 열려있는 옆문이 보였다. 연실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캐리어를 앞세워 두 손으로 밀며 옆문으로 들어갔다. 성당 내부는 의외로 눈부신 흰색이었다. 미사 중인 건 아니었지만 사진을 찍으러 들어온 사람들이 꽤 많았다. 연실은 십자가 쪽을 향해 성호를 긋고 다시 조심스레 캐리어와 함께 빠져나왔다.









백 퍼센트 기분 탓이겠지만 성당을 들른 연실은 조금 불안함이 가셨다. 정신없기만 하던 거리도 조금 또렷하게 간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각선 건너편에 문 앞에 ‘Wi-fi’라고 써 붙여둔 카페로 추정되는 가게가 있었다. 일단 커피라도 한 잔 마시며 와이파이가 되는 곳에서 지도를 켜 호텔 위치를 다시 차근차근 검색해 볼 생각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지도 앱을 사용해 본 적은 없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연실은 붐비는 카페에 들어서 카운터에서 멀지 않은 창가에 겨우 자리 잡고 앉았다. 아무도 메뉴판을 들고 오지 않았다. 캐리어로 카디건으로 어설프게 자리를 맡아둔 뒤 연실은 핸드폰을 들고 카운터로 갔다. 카페 유니폼을 입은 깡마른 남자 직원이 주문받을 자세를 취했다. 연실은 카운터 앞 쪽에 사진이 함께 있는 미니 배너를 들어 보이며 아무거나 눈에 띄는 한 가지 음료를 톡톡 가리켰다. 직원은 밝게 웃으며 ‘OK.’라고 했다. 카드로 계산을 끝낸 뒤 연실은 이번엔 자기 핸드폰을 들어 보이며 “와이파이. 와이파이 비밀번호. 아, 아니. 패스워드.”라고 했다. 직원은 영수증 아래쪽에 적혀 있는 와이파이 이름과 비밀번호를 손으로 가리켜 알려주었다. 땡큐 땡큐.


자리로 돌아와 몇 번의 오타 끝에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와이파이를 연결하자마자 미주의 메시지가 연달아 몇 개 쏟아지듯 도착했다. 부재중 메신저 통화도 2건이었다. 연실은 미주에게 통화를 연결했다. 몇 번 신호가 가기도 전에 미주가 허겁지겁 받았다.


“엄마, 호텔 도착했어요?”

“아니, 나 여기 호텔 아니야. 택시 탔는데 기사가 호텔을 못 찾아 가지구 엉뚱한 데에다가 떨궈놨어.”

“어? 그럼 어디야 지금? 아예 모르는 데예요?”

“그때 너가 보여줬던 성당 있었잖아. 어떻게 걷다 걷다 보니까 그 성당이 보이더라. 그래서 거기 근처 카페 들어왔어. 와이파이 연결해서 다시 길 찾아보려구.”

“허... 어떻게 이렇게 됐지. 기사가 모른대? 엄마, 호텔이 그 성당에서 멀진 않아요. 근데 초행길에 거기서부터 걸어서 찾아가기는 힘들어. 길이 워낙 복잡해서.”

“그럼 어쩌냐. 다시 택시를 타봐? 택시 타면 또 와이파이가 안되니까 너랑 통화가 안 되잖아. 니가 기사한테 설명을 못해줄 거 아냐.”

“하... 어떡하지. 엄마, 있잖아 그러면요. 지금 말하려던 건 아닌데 내가 원래 가서 남자친구를 소개시켜 주려고 했단 말이야. 내 남자친구가 미리 하노이에 가 있어요. 그 친구를 엄마한테 보낼게. 그 친구한테 엄마를 호텔로 모셔다드리라 할게.”

“아니, 여태 그런 얘기 없다가 갑자기 너 무슨 소리야. 남자친구가 있어? 여기서 소개시켜주려고 했어? 너 뭐 결혼까지 생각하는 사이야? 진지하게 만나는 사이야?”

“엄마, 그런 얘기 할 때는 아니고. 일단은 호텔에 무사히 도착하는 게 중요하니까 내가 남자친구랑 통화를 해볼게요. 그 친구가 지내는 곳도 거기서 멀지 않아서 금방 도착할 거거든. 제대로 소개하려고 했는데 뭐 좀 이렇게 돼 버렸지만... 엄마 있는 카페 이름이 뭐예요?”

“아휴... 여기 성당 건너 쪽이고 이름이... 씨 오 엔 쥐...”

“아, 응 알겠어, 알겠어. 어딘지 알아요. 다행히 찾기 쉽게 유명한 데 들어갔네. 엄마 진짜 운도 좋다. 내가 남자친구한테 거기로 가라고 할 테니깐 어디 이동하지 말고 계세요 그대로.”

“알겠어. 갑작스럽다, 참. 여기 있을 테니 오라고 해.”


미주는 또다시 허둥지둥 전화를 끊었다. 사귀는 사람이 있다는 낌새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해외에서 나에게만 따로 소개를 하려는 심산이었다니. 분명 진지하게 결혼을 염두에 두고 만나는 사이인 거다. 나이가 차서 결혼할 때가 되니 엄마의 중함을 알게 된 게지. 나에게 먼저 소개시키고 관계를 다지게 해서 나중에 지 아빠에게 소개할 때 내가 힘을 실어주길 원하는 거겠지. 연실은 기도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카운터의 직원이 연실 쪽으로 크게 몇 번 불렀다. 큰 컵에 미어터지도록 채운 음료를 들고 테이블로 돌아왔다. 주문한 음료가 이게 맞나 싶었다. 사진에 있는 것 중 대강 아무거나 짚어서 무엇을 주문했는지 모르겠다. 음료는 달면서도 고소했다. 나쁘지 않았다.


연실은 시작도 못한 눈앞의 여행보다도 서울로 돌아갈 일에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결혼을 한다고 하면 무엇부터 준비해야 하나. 남들 하는 거 다 하다가는 가랑이가 찢어질 텐데. 물론 미주는 야무지고 합리적인 애니까 그렇게 무리하는 결혼식 같은 건 안 한다고 하겠지. 그렇다고 또 너무 합리적인 것만 따지고 잘난 척하다가 시댁에 밉보이면 안 되는데. 적정선은 내가 알려줘야 되겠지. 에휴, 진작 미주를 억지로 끌고 다녀서라도 세례를 받게 하는 거였는데. 성당에서 결혼식을 하면 참 예쁠 텐데. 음료를 반 이상 들이키는 동안 머릿속을 채우는 것은 이 낯선 땅이 아닌 이제 곧 만나게 될 남자와 미주의 결혼뿐이었다.


카페는 미주 말대로 유명한 곳이 맞는 모양이었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외국인들이 여럿 드나들었고, 심지어 일부는 카페 밖 매연으로 가득한 거리 위 자그마한 플라스틱 의자에 자리 잡고 앉아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파마를 한 것처럼 곱슬거리는 검은 머리에 어두운 갈색 피부, 검고 긴 속눈썹이 약간 처진 큰 눈의 반을 덮은 외국인 남자가 들어섰다. 면도를 잊은 듯 턱밑은 어수선했고 얇은 크림색 남방을 걷어 올리고, 사이즈가 큰 카키색 바지도 동동 걷어 오린 남자는 까무잡잡한 맨발에 검은 쪼리를 신었다. 가방도 없이 핸드폰만 손에 쥔 그는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카운터로 가지 않고 한참을 목을 뺀 채 두리번거렸다. 설마. 이건 설마다.


연실과 눈이 마주친 남자는 입이 귀에 걸릴 듯이 환하게 웃으며 연실에게로 다가왔다. 연실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자신을 향해 영어로 말하기 시작하는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남자는 악수도 청해보고 계속해서 말을 해도 연실이 아무 반응이 없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기만 하자, “클레어! 미주! 미주!!”라고 말하며 자기 핸드폰을 들었다.


남자가 연실의 눈앞에 내민 핸드폰 배경화면에는 미주와 남자가 서로 뺨을 맞댄 채 창밖의 성당을 배경으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웃음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연실은 한 손으로 뜨거워진 이마를 가만히 짚었다.

“맞아요, 맞아... 미주. 내가 미주 마더예요.”


남자는 다시 한번 연실을 향해 따뜻하고 동그란 눈웃음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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