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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부꾸미 Jan 20. 2020

나는 괜찮은가요?





아침에 나는 그 죽은 새를 거의 밟을 뻔했다.



밤새 내버려 둔 핸드폰이 새로 온 메시지로 꽉 차 있어 시선을 길이 아닌 손에 꼭 쥔 핸드폰에만 둔 탓이다. 이상한 느낌에 아차 했을 땐 이미 내 뒤꿈치가 납작하게 펼쳐진 날개 끄트머리에 닿아 있었다. 운동신경도 둔한 내가 새를 밟지 않으려고 파닥이는 모습은 아마 내 뒤를 걷던 사람들에게는 꽤나 볼만한 그림이었을 것이다. 한순간 달아오른 볼에 눈까지 화끈거렸지만 애써 태연한 척하며 버스정류장에 다다랐다. 고개를 뒤로 돌려 신발 뒤꿈치에 흔적이라도 묻은 건 아닌지 확인했다. 다행히 뭐가 묻진 않았다.

하마터면 종일 찝찝할 뻔했다.



며칠 전 신연희 대리의 장례식이 있었다. 나와 입사 동기였던 그녀는 매사에 크게 도드라지지 않는 인물이었다. 규모가 꽤 큰 회사다 보니 개개인의 역량이 크게 드러날 일이 없기도 했지만, 신대리는 그야말로 있는 듯 없는 듯했다. 휘몰아치듯 일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고, 남들 야근할 때 야근하고 술 마실 때 술 마시는 아주 적당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지난주 몇 개의 부서가 함께 모인 대규모 회식 자리를 마지막으로 그날 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회사에 도착해서도 핸드폰 화면은 짤막한 메시지를 띄우며 끊임없이 켜지고 꺼지기를 반복한다. 대부분은 그룹 메시지 방 대화 알림이었다. 우리 부서 젊은 과장 이하의 직급이 모두 포함된 이 그룹 메시지 방에서 가장 먼저 퇴출되었던 건 입사 2년 차의 P사원이었다. 차장이며 옆 부서 서무며 가리지 않고 도마 위에 올려 잘게 다지기가 주된 목적이었던 이 방에서 P사원은 꽤나 묵묵히 어느 누구의 험담에도 동참하지 않으며 몸을 사렸다. 어느 날 밤 그가 회사 근처의 술집에 우리의 단골 비난 대상이었던 K차장과 단둘이 들어가는 것이 발견되면서 자연스레 그만을 제외한 새로운 대화방이 생성되었다. 한동안 우리의 뒷담화가 K차장에게 흘러들어갔을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부터 유부녀인 K차장과 어린 P사원이 썸을 타는 것이 아니냐 하는 추문에 이르기까지 그룹 메시지 방은 쉴 틈이 없었다.



그다음 사람이 퇴출되기까지는 조금 기간이 걸렸다. 신대리의 부고가 뜬 날이었다. 퇴출자는 나와 마찬가지로 신대리와 별 인연이 없었던 Y대리였다. 신대리에게 우울증이라도 있었는지, 회식자리에서 가까이 앉아 얘기를 나눴던 사람들은 누구였는지, 그날 무슨 낌새라도 챘던 사람이 있었는지, 남겨둔 유서는 있는지 등등의 조잡한 대화가 작은 핸드폰을 통해 오가는 동안 눈치를 보던 누군가가 ‘혹시 약을 먹은 거래요?’ 하고 선을 넘었고 Y대리는 과하게 발끈하기 시작했다. 죽은 사람 놓고 아무 얘기나 하는 거 아니라며 한참 싫은 소리를 내뱉던 그녀를 제외한 나머지는 또다시 새로운 대화방을 만들어 Y대리가 신대리랑 평소 친한 것도 아니었는데 왜 저렇게까지 과민반응하는지 모르겠다며 원래의 대화방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결국 Y대리는 우리와 따로 조문을 간 것 같았고, 그 뒤로 누구와도 같이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며 어울리는 일은 없었다.



신대리의 죽음은 적잖이 회사 분위기를 바꿔놓았다. 딱히 친분이 있었던 사람은 없었지만 늘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을 하던 동료가 죽었으니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싱숭생숭한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흐르고 우리가 대놓고 신대리에 대해서 얘기하는 일은 줄었지만 여전히 대화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우울증의 증세라든가 비슷한 시기에 목숨을 끊은 연예인에 대한 이야기 같은 것들이었다. 사무실에서 웃음소리가 들리는 일도 없어졌다. 모두들 당분간 이 숙연한 분위기를 지속하는 것이 고인에 대한 예의라는 것을 말하지 않고도 합의한 것 같았다.



대화방은 오늘 점심 메뉴에 대해 의견 조합 중이다. ‘저는 아무거나 상관없어요. 다수가 원하는 걸로!’라고 입력하고 업무 관련 메일들을 확인했다. 옆자리의 O사원이 오늘 아침 출근해서부터 틈만 나면 인상을 찌푸리며 엎드리기를 반복한다. 원래도 하얀 얼굴이 오늘은 더 창백하다.

- 왜 그래? 어디 아파요?

- 아, 네... 체한 건지 어젯밤부터 계속 속이 너무 안 좋아요. 울렁거려서 앉아있기가 힘들어서요.

- 어떡해. 약은?

- 아직 안 먹었어요. 점심시간에 약국 갔다 올까 하고 있어요.

- 응. 정 안 좋으면 일찍 들어가 쉬든가 해야지 뭐.

- 네. 일단 이따가 약 먹어보구요.



O사원은 내 업무를 분담하고 있다. 만약을 대비해 O사원이 오늘 처리해야 할 업무까지 확인해본다. 하... 오늘은 야근을 해야지 싶다. 점심시간을 기다리며 일하는 동안 몇 번이나 아침에 본 죽은 새가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어쩐지 아침에 조짐이 안 좋았다. 벗어둔 신발을 들어 올려 밑바닥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아침에 확인했을 때와 같이 별로 묻은 건 없지만 왠지 찝찝한 마음에 물티슈를 한 장 꺼내 눈에 띄는 부분들을 닦아냈다. 거뭇거뭇 해진 물티슈를 인상을 구기며 O사원과 내 사이에 놓인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하나둘씩 주섬주섬 코트를 챙겨 입으며 나갈 준비를 했다. 엎드려 있던 O사원을 톡톡 치며 불렀다.

- 우리 지금 나갈 건데 점심 못 먹겠지? 뭐 좀 사다 줄까?

- 아뇨. 괜찮아요. 음식이 넘어갈 것 같진 않아요. 전 약국 다녀올게요.

O사원의 등을 쓸어내려주며 지갑과 코트를 챙겼다.



K2과장은 고추기름이 둥둥 뜬 순두부찌개를 입맛이 없다는 투로 숟가락으로 잘게 휘적이며 말했다. 남편 회사 동료분의 와이프가 하는 신경정신과 병원이 있다고 해서 오늘 퇴근 후 예약을 잡아 놓았다고.

- 아니, 나는 괜찮은 것 같은데 오히려 우리 신랑이 걱정을 하는 거야. 당신 요새 짜증도 많아지고 별로 웃지도 않고 그러지 않았냐고. 우울증 같은 건 초기에 치료하는 게 좋다대? 나도 뭐 우울증 까지겠냐 싶긴 한데 혹시 모르니까 가보는 게 낫지 싶어서.



너도나도 아는 말 하나씩을 보탰다. 우울증이 아니더라도 스스로 자기 마음의 짐을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기 때문에 상담치료 같은 게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구요. 우울증이 꼭 우울감을 느낀다고 해서 우울증은 아니래요. 본인도 모르는 마음의 병이 누구나 하나씩 있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렇게 우리는 동지애를 가지고 점심을 먹는 내내 희망적인 얘기들을 나눴다.



- 그러고 보니 아까 O사원 아파서 점심 못 먹는다고 하지 않았어? 뭐라도 좀 사서 들어가야 되지 않아?

- 그럴까요? 죽이라도 좀 사서 갈까요? 제가 포장해서 갈 테니 먼저들 올라가세요.

K2과장의 말에 나는 회사 뒤 편 빌딩 사이 회오리가 휘몰아치는 사거리까지 걸어가 소고기 야채죽을 포장해 올라갔다. O사원은 아직 약국에서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O사원 자리 위에 포장된 죽을 올려두고 노트북을 챙겨 회사 건물 1층의 카페로 다시 내려왔다. 한두 시간 정도 커피를 마시며 작업을 할 생각이었다.



컵이 미어지도록 크림이 올라앉은 음료를 옆에 두고 30분 정도는 집중했던 것 같다. K2과장의 말을 곱씹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잡생각이 많아졌다. 나 역시 신대리가 그렇게 되기 전부터 심리 상담에 대해 알아본 적이 있었다. 회사에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매사에 너무 의욕이 없었기 때문이다. 퇴근해서 텅 비어있는 작은 나의 공간으로 돌아가면 그럴싸한 끼니를 만드는 일도, 요즘 이슈가 되는 책을 읽는 일도, 좋아하는 장르의 음악을 듣는 일도 무기력한 나 자신을 이기지 못했다. 오랜 시간을 들여 미적미적 샤워를 하고 잠들 때까지 침대에 누운 듯 기대앉아 다른 사람들의 SNS를 끝도 없이 아래로 아래로 스크롤을 내리며 구경하는 게 전부였다.



한심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몇 년 전 입사 초기에 가졌던 나 자신에 대한 열정이 모두 달아나버린 기분이라 뭘 어떻게 해볼 방법을 혼자서는 찾을 수 없었다. 흔히들 말하는 번아웃 증후군이 온 것인지, 혹은 우울증인지. 전문가의 진단을 받고 병의 타이틀을 얻지 않으면 나는 그 어떤 것에도 속할 수 없는 그저 무기력한 인간일 뿐인 것이다.



인터넷 창을 켜고 집에서 멀지 않은 거리의 신경정신과를 두 군데 찾았다. 한 군데는 평은 좋았으나 복작복작한 상가 건물에 위치한 허름한 곳이다. 한 군데는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라 그렇다 할 평은 없었으나 큰 건물 2층에 있고 깨끗하다. 가격은 당연히 명시되어 있지 않았고, 아직 인터넷으로 예약은 불가한지 홈페이지에도 전화번호 안내만 되어있었다. 조금 망설이다 일단은 전화번호만 내 핸드폰에 옮겨 저장해두었다.



O사원의 자리는 아직 비어있었다. 노트북을 책상에 내려두는 나를 보고 K2과장이 ‘O사원 반차 쓰고 갔어. 몸이 영 안 좋대.’하고 묻기도 전에 알려주었다. 이로써 야근이 확정되었다. 창밖의 구름이 수백 개는 지나가고, 짧은 겨울 해가 빌딩 사이로 순식간에 사라지는 동안 나는 내 몫의 일과 O사원 몫의 일까지 야금야금 쳐 냈다.



병원 예약에 늦기 싫다며 조금 일찍 일어선 K2과장을 시작으로 하나 둘 퇴근 준비를 했다. 안 가냐는 눈짓의 사람들에게 비어있는 O사원의 자리를 턱을 들어 가리키며 쓴웃음을 웃었다. 앉은 자세로 인사를 하다 보니 어느덧 넓은 사무실에 혼자 남았다. 어제 탕비실 냉장고에 넣어 둔 요거트나 먹고 잔업을 할 생각이었다. 작은 냉장고 안에는 아까 내가 사온 O사원의 죽이 포장도 뜯기지 않은 쇼핑백 채로 고스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신경질적으로 죽을 옆으로 치우고 구석에 밀려난 요거트를 찾았다.



조용한 사무실에는 마우스와 키보드 소리만 간헐적으로 울렸다. 예상했던 것보다 일은 빨리 끝날 것 같았지만 이왕 늦은 거 가장 붐비는 퇴근 시간이 다 지나고 나서 가야지 싶었다. 문득 아침에 본 죽은 새를 다시 떠올렸다. 비둘기 같지는 않았고 참새보다는 큰 새였다. 차에 치여 죽었는지 죽고 나서 차에 치인 건지는 알 수 없지만 펼쳐진 날개 부분과 몸통 일부가 납작하게 눌러 터져 있었다.



어릴 때 아파트 단지 안에서 놀다가 날아가던 비둘기 한 마리가 ‘퉁’ 소리를 내며 아파트 벽면에 부딪혀 내 발 바로 앞에 떨어졌던 기억이 났다. 너무 놀라서 며칠 동안은 피를 흘리며 경련을 일으키던 그 비둘기를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눈을 감을 때마다 선명하게 떠올라 잠들기가 힘들었다. 아침에 그 새를 밟았더라면 나는 아마 출근도 못할 만큼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간신히 밟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고, 한편으로는 밟을 가능성도 그만큼 높았다는 생각에 겪지도 않은 일인데 짜증과 화가 밀려왔다.



돌아가는 길에 그 새가 그대로 있다면 어떡하나. 정류장에서 멀지 않은 그 길은 가로등 사이의 거리도 멀고 유난히 조도가 낮아 밤에는 길바닥까지 환히 보이지 않는다. 주변에 상점도 적고 다가구 주택이 대부분이라 길의 위생상태를 적극적으로 신경 쓰는 이도 별로 없다. 행여나 환경미화원의 눈에 띄지 못해 아침에 본 그대로 새가 죽어있다면 무신경한 누군가에 의해 몇 번 더 밟혀 상태가 더 나빠졌을 수도 있다. 내 기분을 망치지 않기 위해 이런 것까지 생각해야 하다니 기가 찼다. 애초에 왜 그곳에 그 새가 그렇게 죽어있어서.



겨울은 한복판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코트 위에 두툼한 목도리를 둘둘 말아 얼굴의 반을 가렸는데도 틈새 틈새로 스며드는 날카로운 바람에 얼굴이 찢어지는 듯했다. 버스에서 내려 어두운 길에 들어서자 한기는 더욱 심해졌다. 나는 장갑도 끼지 않은 손으로 가방을 뒤적여 잊지 않고 핸드폰을 꺼내 내장된 손전등을 켰다. 잠깐 들고 있었을 뿐인데도 손가락은 굽은 채로 감각이 없이 얼어버렸다.



천천히 깜깜한 길을 이리저리 비췄다. 아침에는 없었던 차들이 길 양옆으로 길게 주차되어 있어 새가 죽어있는 곳이 어디쯤이었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손전등 불빛을 받아 두드러지게 보이는 구겨진 빈 담뱃갑, 휴지조각, 아무렇게나 던져진 빨대 꽂힌 일회용 컵 같은 것들 사이로 인내심을 가지고 얼어버린 걸음을 옮겼다. 이 길이 이렇게 더러웠나 싶다.



몇 발짝만 더 가면 집이다. 그 새는 집에서 이렇게 가까운 곳에 죽어있지는 않았다. 아마도 누군가 치웠거나 내가 지나친 것 같다. 다행이다. 손전등을 끈 나는 주머니에 손을 깊게 찔러 넣고 목도리에 얼굴을 파묻은 채 집까지 한달음에 뛰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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