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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부꾸미 Feb 03. 2020

잠이 오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RE:

잠이 쉽게 오지 않으신다고요. 불 꺼진 캄캄한 방에 누워 한참을 뒤척이는 일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습니다. 다음 날 오전에 스케줄이 있는 평범한 생활 패턴을 가진 분이라면 더 괴로운 상황이 되겠군요. 이런 현상은 스트레스나 컨디션의 변화로 인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오래 지속되어 고치기 힘든 병이 되기도 합니다. 제 경우에도 오랜 시간 고생했었죠. 그러고 보니 2년이 넘었네요. 저는 의사도, 관련 전문가도 아닙니다. 하지만 어쩌면. 제가 시행착오를 겪으며 찾아낸 방법들이 조금은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몇 자 남깁니다.



1. 환경 만들기


먼저 몸이 수면을 받아들일 만한 상태로 만들어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볼까요?


침실은 어두울수록 좋습니다. 방에 창이 있다면 빛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는 암막 커튼이 도움을 줄 수 있죠. 창의 높이보다 약간 길게 커튼을 설치해 아랫부분에 스며드는 빛까지 차단해야 합니다. 하지만 암막 커튼도 약간의 멋을 부려보겠다고 밝은 컬러를 선택하면 빛을 백 퍼센트 차단하지는 못합니다. 요즘엔 아무리 싸구려 암막 커튼이라도 빛 차단율이 몇 퍼센트인지 정도는 대략의 지표로 명시해 두었으니 꼭 확인하세요. 저렴한 가격에 모양까지 내고 싶었던 저는 베이지 컬러의 암막 커튼을 선택했는데, 완벽하게 빛을 차단하지 못해 옆자리 누운 사람 입 벌리고 자는 모습까지 다 보입니다.


소음의 상태도 빛 차단만큼 중요합니다. 대부분은 어수선한 소음 속에서는 잠을 이루기 힘들지만, 종종 약간의 백색 소음에 더 쉽게 잠이 드는 사람도 있긴 합니다. 약간의 소음이 있는 곳과 소음이 완벽히 차단된 곳, 어느 곳에서 더 몸이 긴장도가 낮아지는지 자신의 타입을 알아야 하겠죠. 제 경우에는 닫힌 창문 밖으로 들려오는 자동차 달리는 소음에 긴장도가 낮아집니다. 저와 함께 사는 사람은 볼륨 3 정도로 낮춰진 TV 소음에 가장 빨리 잠들더군요. 소음의 종류나 크기에 따른 개인차가 꽤 큽니다. 완벽한 고요를 선호하시는 분이라면 귓구멍에 꼭 맞는 크기의 귀마개도 추천합니다. 다만 귀마개를 착용하고 잠을 잘 경우 알람 볼륨만큼은 크게 키워두시는 것이 좋겠죠.


핸드폰 어플 중 숙면에 도움을 주는 소리를 재생하는 것들이 있는데 이것은 별로 추천하지 않습니다. 자연의 소리, 백색 소음 등 원하는 소음의 타입을 재생할 수 있지만 오랜 시간 동안 잠이 들지 못하는 사람은 오히려 재생되는 소리의 패턴이 파악되어 소리 자체에 집중하게 됩니다. 6만 마리의 양을 또렷한 정신으로 세 보신 분이라면 이해하실 겁니다.


잘 때 머리 쪽이 서늘한 것이 좋다고 알려져 있는데, 발의 온도도 그만큼 중요합니다. 경험에 의하면 발은 열이 후끈후끈한 상태인 것보다 약간 서늘함이 느껴지는 정도에서 잠이 더 잘 왔습니다. 물론 이것도 수족냉증으로 고생하시는 분이거나 겨울에 방 온도가 아주 낮으신 분들은 해당 없습니다. 얇은 양말 등으로 온도를 적절히 맞춰주셔야 합니다.


베개 또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부분입니다. 잠을 제대로 못 자는 분들의 경우 몸의 긴장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 목 부분이 뻣뻣해진 경우가 많습니다. 아주 푹신한 베개보다는 작은 사이즈의 중상 정도의 강도를 가진 베개를 추천합니다. 베개가 최대한 목의 커브에 맞는 높이어야 하고, 베개의 윗부분이 뒷목 헤어라인이 시작하는 부분보다 약간 위쪽에서 끝나는 크기여야 하며, 강도는 뒷목이 푹 주저앉지 않을 정도입니다. 목의 각도는 뒷목이 약간 젖혀진 형태를 일부러 만들지 마시고 코끝이 천장을 찌르고 있는 느낌의 각도로 맞추시는 것이 좋습니다. 흔히 알려진 경추 베개는 매우 딱딱한 편이어서 옆으로 눕는 등 자세를 변경할 때 어려움이 많지만 약간 단단한 정도의 베개는 뒷목을 뻣뻣하게 만드는 주요 근육인 후두하근을 적당히 눌러주면서 자세 변경도 쉽도록 도와줍니다.


잠드는 시도를 하기 두어 시간 전부터는 내 몸에게 나는 곧 잠자리에 들 것이다-라는 힌트를 주는 것이 좋습니다. 컴퓨터나 핸드폰 TV와 같은 블루 라이트를 멀리하고, 야식은 금물입니다. 샤워도 끝내둡시다. 시나몬 파우더를 털어 넣은 따뜻한 우유나 캐모마일 같은 허브티가 숙면에 도움을 준다고는 하나, 마신 후 양치질을 하면 다시 잠이 달아나버리므로 이것은 신중하게 시도합시다. 종종 저는 양치질을 포기하고 다음날 입을 뗄 수도 없을 텁텁함으로 깨어나기도 합니다.



2. 힘을 뺀다


누운 자세에서의 명상을 해 보신 분들이라면 온몸의 힘을 빼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이해하시겠지만, 처음에는 영 쉽지 않습니다. 배의 긴장을 풀면 뒷목이 당겨오고 뒷목의 힘을 풀면 발끝을 세우고 있습니다. 몸 전체에 힘이 빠진 것 같아도 미간에는 잔뜩 힘이 들어가 인상을 쓰고 있기도 합니다.


약간의 팁을 드리자면 가장 먼저 잇몸의 힘을 풀어보는 것입니다. 입술에 힘을 주어 굳이 입을 다물려 하지 않고 누워있는 잇몸을 중력에 맡겨봅니다. 윗잇몸이 베개 쪽으로 내려앉고 아랫잇몸도 천천히 가라앉는다는 느낌에 집중하면 딱딱하게 굳어있던 하관은 금세 긴장이 풀립니다. 관자놀이에 작은 구멍이 있어 그곳으로 신선한 공기가 들락날락한다고 상상해보세요. 찌뿌둥하던 머릿속이 개운해지면서 힘이 들어간 미간도 서서히 부드러워집니다.


몸의 힘을 빼는 과정도 비슷합니다. 간혹 명상할 때에는 고요한 물 위에 아무 힘을 받지 않고 떠 있는 자신을 상상하라는 지시를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처럼 물을 무서워하시는 분이라면 몸이 오히려 굳어버리겠죠.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편안한 장소를 상상해봅니다. 새벽녘 축축한 풀밭일 수도 있고, 큰 나무 아래 낙엽이 가득한 그늘도 가능합니다. 아니면 으리으리한 호텔의 최상급 침대 위 일 수도 있겠고요. 저는 항상 물기를 머금은 해 질 녘 바닷가 모래사장을 떠올립니다. 낮 동안 따뜻하게 데워진 모래 위에 누워 파도가 한 번 지나갈 때마다 몸이 점점 모래 속으로 가라앉는 상상을 합니다. 나는 지금 너저분한 내 방 침대가 아니라 혼자여도 무섭지 않고 내 마음이 가장 편안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곳에 누워있는 겁니다.


그렇게 온몸의 힘을 빼는 데에 성공한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 볼까요?



3. 어둠을 직시하라


눈을 감아 보세요. 어떤 색이 느껴지나요? 작은 점들이 무수히 눈앞을 왔다 갔다 하거나 컴퓨터의 화면보호기처럼 알 수 없는 문양들이 어지럽게 움직이진 않나요? 혹은 내 미래가, 때론 과거의 일이 누군가가 촬영이라도 한 듯 보이진 않나요?


생각이 많으면 감은 눈꺼풀은 스크린처럼 내 생각을 영상으로 쉴 새 없이 재생합니다. 때로는 누군가의 얼굴이기도 하고 때로는 상황이기도 하죠. 애써 생각을 지워도 눈앞에 떠오르는 아주 작은 점 하나로도 금세 다시 생각을 만들어 냅니다. 이때 미쳐 날뛰는 생각들을 제어하지 않으면 잠이 들기는 글렀다고 보시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감긴 눈앞의 어둠을 집중해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상하좌우에서 날아드는 색이라든가 얼굴, 장면 같은 것들이 저편으로 날아가 버릴 수 있도록 어둠만을 바라봅니다.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어둠은 때로 두렵습니다. 어린 시절의 우리는 열려있는 장롱의 어두운 한구석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은 더 많은 두려움을 안겨줍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어둠 속에서는 보이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그려 마음속 얄팍한 방패를 만들어 냅니다. 보통 사람의 경우 그 과정을 인식하기도 전에 스르륵 잠이 들겠지만, 잠을 잘 수 없는 사람의 경우에는 꺼려지더라도 그 과정을 인지하고 어둠을 똑바로 바라보는 수고를 견뎌야 합니다.


이것은 인지하기 시작하면 꽤나 어려운 부분이 되어버립니다. 행복한 미래를 상상하는 것도, 오늘의 사소한 에피소드를 떠올리는 것도, 심지어 과거의 나쁜 기억마저도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어둠을 직시하는 것보다는 쉽기 때문입니다. 본능적으로 번져오는 내 생각들을 잠재우고 가장 두려운 어둠과 홀로 싸워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 부분에서 포기할 거라 생각합니다. 굳이 이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잠들 수도 있다고 믿어버리죠. 실제로 그렇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이 과정을 중요하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어둠을 직시하지 못해 떠올린 수많은 생각들이 얼마나 나를 좀먹게 되는지 결국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눈앞의 어둠을 이겨내지 못한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들은 잠깐의 생각과 다짐으로 이겨낼 수 있거나 누군가의 다독거림, 자장가로 잠재워지는 두려움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4. 내려놓아라


오랜 시간 동안 어둠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에 성공했다면 다음은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가장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직장 상사? 엄지발톱을 짓누르는 딱딱한 새 구두?

과거의 잘못? 그것들 중 내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은 내일 중 망설임 없이 해결하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주변의 눈치를 보거나 금전적 손해에 아까워하거나 미루는 일 없이. 구체적 계획을 세울 필요도 없습니다. 가장 간단하고 직접적인 방법을 택할 것입니다. 하지만 내일 일이므로 지금은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내 노력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것들 또한 과감히 마음에서 내려둡시다. 의외로 내 마음을 괴롭히는 것들 중 많은 부분은 내가 컨트롤할 수 없어 괴로운 부분입니다. 심사숙고한다 해서 결과를 바꿀 수 있거나 답을 구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닙니다. 큰 지우개가 있다고 생각하고 하루에 하나씩 원래 없던 것처럼 그것을 지워냅니다. 상황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의 고통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우주에서 관망하듯이 나를 봅시다. 그저 일어나는 현상처럼 그 자체로 받아들이면 나의 정신에는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흔히 머리만 대면 잠드는 사람들은 고민이 짧다고들 합니다. 고민이 없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것에 빠져 생각하는 시간은 짧다는 얘기겠죠. 정말로 그것은 숙면에 도움이 됩니다. 그런 성향은 대부분 타고납니다. 하지만 고민이 길게 타고난 사람들도 훈련을 할 필요는 있습니다. 비단 잠이 빨리 드는 것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내 정신을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깨닫지 못하는 동안 쉴 새 없이 스스로를 갉아먹고 다시 북돋우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어쩌면 그 과정에서 자신의 취약한 부분을 발견하고 더 단단한 형태로 다지고자 일부러 일어나는 현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같은 공부일지라도 개개인에 따라 소화할 만하기도 하고 버겁기도 한 것처럼 누군가는 북돋우는 과정이 버거워 갉아 먹힌 그대로 스스로를 내버려 둘 수밖에 없습니다.


살면서 느낀 부분 중 하나인데, 무뎌진다는 것은 둥글어지는 게 아니라 딱딱해지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딱딱한 채로라면 뭐 어떤가요. 설령 거칠어지고 날이 섰다 한들 또 어떤가요. 이대로도 괜찮으니 나를 괴롭히는 것들을 저 아래에 내려두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아마 내려두는 것들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나 자신일 겁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시계는 새벽 3시 26분을 지나고 있습니다. 2년 동안 제가 제대로 잠을 잔 날은 다 합쳐도 한 달이 되지 않을 겁니다. 보통은 동트기 직전에 지친 채로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눈을 뜹니다. 그렇게 밝아지는 커튼을 가만히 모로 누운 채 바라보다 하루를 시작하러 나가는 이웃들의 현관문 여닫는 소리가 차츰 잦아들면 한 번 더 짧은 잠을 잡니다.


처음에는 약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2년 전 그 어느 날 이후로 주변 사람들은 제게 병원에 가기를 권유했지만, 저는 불면증 이외의 그 어떤 것도 입 밖에 낼 수 없었습니다. 차도가 없는 저에게 의사는 원인에 대해 함께 고민하지 않으면 자신도 적절한 도움을 주기 어렵다 말했고, 저는 풀 수 없는 숙제를 받은 학생이 된 기분으로 더 이상 병원에 가지 않았습니다.


제 친구도 그런 기분이었을까요. 영원히 답을 알 수 없는 숙제를 받은 그런 기분. 기분은 전염된다고들 하죠. 제 친구는 저에게 꼬깃꼬깃한 쪽지 하나로 그렇게 어마어마한 고통을 남겨 두었습니다. ‘너라도 견뎌 줘’라는 잔뜩 번진 글씨로 말이에요. 별것도 아닌 그 한 마디로요.


말하자면 저는 4단계에서 실패했습니다. 몇 시간이고 어둠을 바라볼 수는 있지만 아직 그 한 마디에 사로잡혀 있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제 어떤 노력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걸 잘 알지만, 아주 잠깐이면 다시 그 작은 쪽지를 받아들던 절망적이고도 무기력한 순간으로 되돌아갑니다. 아마도 제게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때까지는 우선 아무리 마주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이 쓸쓸한 새벽을 저만의 방식으로 견뎌야 하겠죠. 그리고 나면 그다음엔 무엇을 견뎌야 할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제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쪼록 모두들 깊은 잠에 들어 아름다운 무의식을 만났으면 합니다. 견디지 않아도 되는 밤과 새벽, 아침을 맞길 바랍니다.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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