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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탄쟁이 Apr 02. 2024

무기력한 삶을 어떻게 극복할까

행복*위로*인생

마왕. 나 왜 사는지 모르겠어. 언제부터인진 몰라도 의욕도 없고, 사는 게 너무 재미없어. 내 정체성에 의문도 가고. 다 늦게 사춘기인가. 특별한 이유도 없이. 다 놔두고 어디 도망가고 싶어. 내 인생 무의미한 거 같애. 정말 두려운 거 아니야? 의미가 없는 인생을 산다는 것. 뭐 꼭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란 법은 없지만. 다른 사람이랑 똑같이 주어진 하루를 남보다 보람차고 즐거운 일로 꼭꼭 채워도 모자랄 판에 요렇게 멍하게 시간만 때우는 식으로 살아야 되면 너무 막막하잖아. 하루하루 숨만 쉬는 것 같애. ... 

그냥 예전의 나를 찾고 싶어. 요즘 시간되면 학교 가고 알바 가고 피곤하면 자고 하루 종일 멍하니 있고 멍청하게 있는 게 싫으면 학원도 끊어서 다니는데 의욕이 없으면 뭐가 머리에 들어오겠냐고. 열아홉 살 겨우 고3인데. 지나치고 밝고 명랑한 그런 아이였는데. 정말 하루라도 즐겁고 신나지 않은 날이 없었고 너무너무 재밌게 살았는데. 특별한 이유 없이 언젠가 이래. 친구를 만나도 신나지 않고 내가 젤 좋아하는 아이스크림도 별로고 게임도 하니깐 멍해지고 멍하게 있는 나 자신을 볼 때 바보 같고 한심하고 계속 이렇게 바보처럼 살아야 되나 싶어. 자꾸 밑바닥으로 꺼지는 느낌이 들고 그런 생각 들면 무서워. 병원 가봐야 되나. 내가 오버하는 건가. 

그리고 요즘 표정관리가 안되고. 큰일이야. 사람이 살면서 예의상의 표정은 있어야 되는데. 요즘은 남들이 조금만 싫은 소리 하면 표정 바로 변하고 싫은 티 팍팍 내고 나 진짜 안 그랬는데 접대용 표정 필수로 갖춘 천의 얼굴이었는데. 왜 이렇게 된 건지. 남들이 들으면 별 거 아닌 고민 같지만 나 심각해 마왕. 정말 다 늦게 사춘기야 뭐야. 무기력하고 진짜 사는 게 재미없어. 어떡하면 내 삶에 활력을 다시 돌려볼까. 여행이라도 갈까. 내가 뭘 어떻게 하면 될까. 너무 답답하고. 이렇게 마왕한테 상담을 요청해.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네 뭘 축하하는 거냐고요?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제 어른이 되는 천 개의 문 가운데에서 첫 번째 문을 이제야 여신 거예요. 그게 바로 어른이 되는 거고, 사춘기 때 생각하는 정체성의 의문하고 평생을 짊어지고 우리 인간이 가야 하는 그런 질문하고 뭐 이런 것들이 많이 다릅니다. 똑같은 고민 이래도. 언젠가 몰라도 의욕이 조금 더 사라져 가는 것 같기도 하고 난 뭔가, 나는 누구인가, 내가 지금 살아있다는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라는 이 질문은, 꾀꼬닥 할 때까지 짊어지고 갑니다 결국은. 나름대로의 해답을 얻긴 하지만 문제는 그 해답이 옆에서 옳은 답이다라고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는단 말입니다. 그리고 내가 내린 답에서 내가 옳다고 수긍해 버리면 그만이로구나. 하는 대답을 하고 그 대답 이외에는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면서도 꼭 또 계속해서 이 질문은 남습니다. 이거는 대답을 해도 남아있는 질문이고 답을 얻어내도 계속 궁금증은 항상 남아있는. 그런 쓰잘대기 없는 인간의 존재 근원에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그러한 고민이랄까. 하하. 


이렇게 촐싹대면서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게 거의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가지고 있는 그런 고민이기 때문이죠 어차피. 우리가 어릴 때 아무런 고민도 없고 또 고민 같은 게 있어도 어린아이의 수준 그 안쪽에서 이렇게 하는 고민이라면 우리 인간 자체의 어떤 신화 안에서 그런 이야기들이 있지 않아요? 에덴동산 안에서 인간은 영생의 수명을 가지고 있었고 모든 것을 신과의 직접적인 대화를 통해서 그건 해라 하지 말아라 선악과는 먹어라 먹지 말아라, 다 얘기해 주는 데로 고통도 없고 병도 없고 그러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결국 그 에덴동산에 남아있는 길을 택하지는 않았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순진한 아이들처럼 그저 누리는, 누리기만 할 뿐인, 그것보다는 고통을 받고 느끼고 궁금해하고 찾아 나서고 결국 그 길을 택했기 때문에 우리 인류는 몽땅 다 오늘밤 이렇게 꿀꿀한 이야기를 해 가면서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누군가가 해줄 수 없으면 나 자신이 내려야 한다라는 것. 그리고 이 질문은 평생 자기가 가지고 가지만 결국 내가 그래서 뭘 해야 될 것이냐, 여기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 또 지금 당장 나는 어떻게 생각하고 어디로 생각해야 하느냐는 라는 것을 옆에서 누가 얘기해 주는 게 아니라 이제 내가, 엄마 아버지가 아니라 내가, 선생님이 아니라 내가, 바로 이 우주의 중심이 내가 돼서 이제 뭔가를 시작해야 된다, 그게 어른이 된다 라는 의미죠. 남이 하는 말을 따라가면 되거나, 책임을 남이 져주면 되거나, 그런 시절을 이미 벗어나는 것이니까요. 


일단 축하드려요. 그리고 그 고민을 해답이 없다는 그 공포 때문에 잊어버리거나 잊어버린 것으로 가장하거나, 대답이 딴 데 있다고 부르짖거나, 뭐 이러면서 무의미를 메꾸기 위해서 끊임없이 다른 것들을 물어보기 시작하잖아요. 


‘꽃들에게 희망을’인가요. 책 참 좋잖아요. 애벌레가 있는데 높이 가고 싶다는 그런 꿈을 가지게 되죠. 사랑하는 애벌레를 만나지만 하늘 그득히 쌓아 올려진 애벌레들의 무더기 탑 꼭대기에는 무엇이 존재하는가. 그것을 위해서 이 밟고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애인하고 작별하고요. 그 위로 밟고 밟고 짓밟고 그 정상에는 아무것도 없는 공허와 텅 빈 것만이 있는 것이, 슬 알게 되죠. 그리고 거기서 보니까 이 세상에는 그런 식으로 쌓아 올려진 탑들이 끝도 없이 늘어서있는 것이었어요. 내려오면서 다른 애벌레들에게 ‘야 내가 저 위를 올라갔다 왔어, 저 위는 아무것도 없었어’라고 이야기하지만, ‘웃기지 마. 저놈은 못 올라갔으면서도 올라갔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뭔가 좋은 게 있으니까 우리한테 숨기나 보다’ 그리고 그날 허탈하게 내려오는데 한편 그에게 차인 그의 애인은 놀라운 존재, 날개를 달고 있는 완전히 다른 세상의 존재를 만나서 그가 인도하는 곳으로 끌려가죠. 그래서 나무 위로 올라가서 고치를 짓고 거기서 탈바꿈을 해서 날개를 달고 나비가 되어서 다시 태어납니다. 그리고 좌절한 그 남자친구 앞에 나타나는데, 바로 이 날개를 달고 있는 천연한 그런 존재가 예전의 자신의 그녀였음을 직감한 따라가서 결국은 자신도 날개를 달고 세상의 모든 벌레들이 이제 나무로 올라가서 날개를 달고 태어나서 하늘이 나비로 가득 차게 되는. 그러한 동화이면서도 그림책이죠. 정말로 심오한 그런 내용을 담고 있는. 그런데 우리가 나비가 되고 날개가 되어서 이 이상의 무슨 존재가 되는 것인지. 벌레가 돼서 인생을 마감하는 것이 가장 얼마나 벌레답게 살 수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인지, 무엇인지, 대답은 아무도 어제든 모르는 그런 얘기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렇게만 되지 않으면 좋지 않겠어요? 날개를 달고 날아 올라가야 된다 라는 상상조차라도 머릿속에서 할 수 없는 사람들. 그러한 욕구조차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밟고 위로 위로 올라가듯이, 우리 사회가 바로 그런 식으로 출세 출세, 남하고 경쟁해서 이겨라라고 얘기 합니다. 그리고 쓸모도 없는 물건들을 끊임없이 집에다가 물고 들어와서 그득 쌓아놓을 것을 요구하면서 살잖아요. 그래서 사실 어른들 가운데서 사실 나이 상으로만 어른이 되어서 끊임없이 출세야 뭐야 돈이야 뭐야 그런 가치들이 꼭 나쁜 것은 아닌데, 출세나 돈이나 그런 것이 자신에게 있어서는 나비의 날개에 해당하는, 그런 사람들이 정말 세상에 있어요. 그 사람은 굉장히 소수거든요. 가령 저 같은 사람은 뭐를 만들고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니까 저한테 날개는 음악을 해서 돈을 천억 원을 벌었다는 것은 결코 날개가 될 수 없겠죠. 날개를 달기 위한 그래서 나무 가지 위로 올라가기 위한 수단으로써 도움이 될 순 있을지 몰라도. 저에게는 돈 자체가 날개는 아니잖아요. 뭐 그러니까 나한테 의미 있는 것이 무엇이고 무의미한 건 무엇인지 판단해 가며 사시게 되겠죠. 


그 질문하고 두려움은요, 절대 안 없어지고, 없어지면 인생 꽈당 되는 거고, 그 인생 되게 비참해지는 거니까 그 두려움을 짊어진 채로 그리고 참 그 가슴 깝깝한 그 느낌, 나는 뭐냐, 이거 진짜 꿀꿀하지 않아요 느낌? 내 인생 내가 태어났다 죽는다라는 건 무슨 의미지라고 생각할 때 가슴 부근이 허 하면서 기분 이상해지는 날 있지 않습니까? 자, 그 선악과를 이제 삼키신 거란 말이에요. 그 삼킨 선악과가 목 요기에 걸려서 올라오지도 않고 내려오지도 않고 요기에 딱 걸리는데, 그거를 죽는 날까지 거기다가 달고 갑니다. 그리고 죽는 순간에 그게 꼴딱하고 넘어갈 텐데 그때 우리 입에서 무슨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지, 뭐 그거를 생각을 해봐야겠죠.


일단 행동보다는 꿈을 꾸는 게 먼저인 것 같아요. 꿈을 꾸고 그 꿈을 위한 행동을 해야 되는데, 우리는 이유 없이 걸으라고 그러니까, 꿈 없이 걸으면 지쳐요. 매일매일 보람찰 수 없어요. 매일매일 하루를 보람차게 지내겠다는 거짓말 같은 얘기는 하지 말아 주세요. 어떤 날은 날리는 거고, 어떤 날은 쳐져있기도 하고 그런 거지. 24시간 중에 며칠을 날리는 거 일 년 중에 한 절반은 솔직히 말해서 날리고 보는 거지 인간이. 기계냐? 신경 쓰덜 마세요. 그리고 꿈을 꾸기 위해서는 남의 꿈을 자기의 꿈으로 만들 순 없지만 남이 어떻게 꿈을 꾸었나에 대한 것들을 보면 많은 도움이 되니까 내가 영웅시하는 사람들의 삶이라든가 내가 좋아하는 어떤 사람들의 생각이라든가, 이런 것을 찾아보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어요. 너무 처지지 마시고요.



@ 2003.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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