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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탄쟁이 Apr 02. 2024

꿈이 직업이 되었을 때의 고충

진로*교육*미래

지금 하고 있는 일은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야. 정말 오랫동안 꿈꿔오던 일이었지. 난 아주 어릴 적부터 내 그림으로 밥 벌어먹고살고 싶단 목표가 있었고 드디어 그 목표를 이룬 거지. 마음껏 그림만 그리면 되는데 돈까지 준다잖아? 꿈만 같은 일이지. 

그런데 내가 가장 원하고 바라고 사랑하던 일인 그림이 지금 나를 가장 괴롭게 만들고 있어. 꿈과 현실은 다르다지만 그건 알고 있고 각오하고 있었지만 그게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할 줄 몰랐어. 처음 일을 받고 나서는 설레고 의욕에 넘쳐서 밤을 세서 자료를 찾고 스케치를 하고 나름대로 내가 가진 내 장점과 개성을 보여줬다고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했어. 그런데 돌아오는 평가는 냉정 하더군. 전면 수정, 또다시 수정. 또 다른 작가의 그림을 보여주면서 내 그림과 일일이 비교하기도 하고 대놓고 ‘이런 스타일로 그려봐라 이 기법 따라 해 봐라’ 일일이 말하기도 벅차다. 어쨌든 그 과정에서 내가 느낀 건 그들이 원한 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서 해석해서 그림을 그려줄 그림 작가가 아닌 자신들 머릿속에 들어있는 그림을 재현해 줄 인쇄기 같은 존재였단 거지. 그렇게 완성된 그림을 보고 그들은 ‘전보다 그림이 많이 좋아졌어요.’ 하는데 뭐 난 솔직히 그 그림들 쳐다보기도 싫었어. 아무리 봐도 그건 내 그림이 아니었거든. 거기다가 항상 내밀어지는 계약서는 번번이 내 그림에 모든 저작권을 그들에게 양도한다는 내용의 계약서. 물론 대부분 그 외의 내용도 전적으로 나에게 불리하고 계약 내용의 수정을 요구하면 ‘왜 너 혼자만 유난이냐’는 투의 반응. 일이 다 끝나고 나서 몇 달 후에나 돈을 결제해 주니 항상 주머니는 궁하고 집에서 명목은 안 서고. 물론 내 실력 좋아지면 이런 꼴 안 보겠지 이 악물고 그려진 내 그림에 내려지는 또다시 혹독한 평가들. 그림 그리는 사람에게 너무나 잔인한 입에 담는 사람들. 

뭐 부정적으로 썼지만 사실 다 이런 건 아냐. 내 그림을 존중해 주고 힘을 실어주는 좋은 것들도 많지만 내가 아직 신입이라 그런 것들만 일 할 수는 없는 거라 저런 일이 많이 생기는 거지. 여름이라 그런지 요즘은 너무나 지친다. 나 그림이 너무 그리기 싫어. 어릴 적부터 그림은 힘든 현실에서 유일한 내 도피처이자 미래에 대한 꿈이자 내 전부였는데 그림만 그리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힘들까. 다 때려치우고 그림과 상관없는 직장에 취업해 버릴까 생각했었는데 포기하기엔 너무 이른 거지? 그건 너무 비겁한 거지? 버텨야겠지? 이 악물고 버텨서 실력을 키워서 그런 것들 상관 안 하고 당당히 그리고 싶은 그림 그려야겠지? 잘 넘겨야지 그렇게 생각하는데 지금은 그림 그리는 게 너무 무섭고 힘들다. 그림이 즐겁지 않고 그냥 일로밖에 생각이 안 돼. 의무감밖에 남지 않았어. 이제 심지어 돈으로밖에 안 보여. 어떻게 해야 다시 그림을 즐길 수가 있을까?




아직 신입이라고 하셨는데 이렇게 불평하실 정도면 그만두시지 그래요? 아니 진정으로 그쪽을 위해서 하는 말인데. 그... 꿈과 열정이라는 것에 대해서 뭔가 사람들이 그러니까 옛날처럼 좋은 대학 나와서 취직해서 먹고사는 게 전부가 아니다, 뭐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그런 게 너무 상투적이라고 얘기해서 그다음에 이제 꿈과 어떤 뭐 이런 것들을 얘기하는데, 뭐 그런 꿈과 이런 것들 얘기하면서도 되게 상투적으로 얘기하시면서 착각하시는 게 있어요. 


꿈과 이런 것들 이루고 뭐 이런 것들을 모든 것들을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고 그리고 꿈과 희망을 품고 미래를 설계하고 일시적으로 몇 년 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세상에 많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평생 밀고 나가거나 의지력을 가지고 나가서, 말하자면 100m 달리기를 할 수는 있고 500m 달리기도 할 수는 있는데, 인생 마라톤이잖아요. 이 마라톤을 할 수 있는 재능은 사실 없었단 사람이 많단 얘기죠. 미술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고, 음악으로 치면 가창력도 있고, 외모도 괜찮고 작사작곡력도 있고 쇼맨십도 있고 스타성도 있는데 끈기가 없으면, 땡~~~ 그걸로 끝이거든요? 1,2년 음악 하다 끝나게 되겠죠 뭐. 


불평 있는 건 좋습니다. 불평 없으면 모든 것을 순응하는 인간도 예술가 되기 힘든 거겠고 음악 하는 사람들 욱하는 성질 요만큼씩은 다 있죠 뭐, 그런데 신인 때 내 그림을 그리지 못할 때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에도 의미가 있다.’라고 의미를 부여해 주고, 그래야 그것도 내 손에서 나간 그림인데. 저작권이니 뭐니 계약서에다 넘겨가지고 홀라당 넘겨주는 그림이지만 그래도 걔들이 내 새끼인 건 분명하잖아요. 내손에서 나간 그림인데 걔네들을 사랑해주지 않으면 불쌍하죠. 저도 초창기에 두 장 세장 앨범을 낼 때까지, 두 세장 연속으로 히트하고 나니까 그다음부터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밀어붙이는 걸 회사에서 막을 수가 없더라고요. 근데 그전까지는 어쨌든 히트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왜 음악을 하면서도 이거 뭐 히트하려고 만든 노래 이게 뭐 음악이야 돈 벌자고 하는 짓이야 이게 뭐야 아유 창피해 이건 내가 쓴 곡 아니야. 이러면서 음악 할 이유 없잖아요. 저는 그때 기억을 되돌아보면 사람들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음악 그리고 사람들 귀에 이런 음악이 들렸으면 좋겠다 하는 걸 내가 한 번 잡아내보겠다 하는 그런 꿈을 가지고 있었어요. 


물론 그런 꿈이 궁극의 꿈은 아니었죠. 꿈도 단계가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궁극의 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싶다라고 하는 꿈을 이루고 싶다 라면 그전에 여러 가지 단계를 밟아 나가야 하는데 그 단계들도 꿈이라는 이름이 붙을 만한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일이라면 아끼고 사랑해 줘야 된다라는 거죠. 짜증 내고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 이럴게 아니라. 점점 좋아지고 있다면서요 상황이. 그들이 원한 걸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해석해서 그림을 그려줄 그림 작가가 아닌 자기들 머릿속에 있는 그림을 재현해 줄 인쇄기 같은 존재. 


그 인쇄기 아무나 하는 줄 아십니까? 그렇다고 그 인쇄기 될 수 없었던 사람들이 모두 다 작가가 되는 줄 아십니까? 인쇄기도 못되고 작가도 못 되는 인간들도 있어요. 인쇄기는 아무나 하냐구요. 그 영화음악 같은 게 그래요. 영화를 보면서 이 장면에서 사람들 머릿속에 들려올 것 같은 음악, 이 필름을 만든 감독의 머리에서 천둥 칠 것 같은 음악은 ‘요거지롱~!’ 하면서 잡아내서 남의 머릿속에 있는 걸 잡아내는 작업도, 그것도 나름대로의 즐거움이 있고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자기 것이 있어야 남의 속에 있는 것도 잡아낼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너무 이건 이거고 저건 저가다 하고 칼같이 흑백론으로 잘라서 이건 내 그림이 아니고 이건 내가 할 일이 아니고 이러면서 불평불만 할 시간에 왜 내가 클라이언트들이 요구하는 그 그림을 ‘이겁니다~ 바로 이거예요! 바로 내가 말한 게 이거예요!’라고 나는 왜 그 사람들 머릿속에 들어있는 게 정확하게 뭔지를 잡아주지 못할까. 대중이 원하는 건 뭘까. 그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게 뭔가. 철저하게 그런 것을 잡아주고 기반이 잡히면 내 것으로 가고 틈틈이 시간 날 때 '사실 내 스타일 내가 하고 싶었던 건 요건데' 하면서 끊임없이 한편으론 그 생각을 잃지 말고 추구하면서 가는 거죠 뭐, 불평 불만할 게 아니라.



@ 2008.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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