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우리는 쫄깃하고 탱글한 밀떡볶이 가게로 간다. 떡볶이집을 고르는 단계의 대화는 당연히 없다. N은 확신의 밀떡파니까. 고추장에 물엿을 넣고 푹 졸여, 저녁 즈음에는 팅팅 불기까지 했던, 학교 옆 시장의 두툼한 쌀떡볶이를 좋아했던 소녀는 유독 그 쌀떡볶이가 당기던 날에도 N을 따라갔다. 관계 의존적인, 타인 지향적인, 모두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기를 갈망하던 소녀는 갈등 회피에 탁월했고 호불호 없이 '호(好)'만 있었다. 그러니 같이 다니기 참 편하고 좋았겠지.
N과의 수많은 이벤트들은 차고 넘쳐 종국에는 인생 첫 절연이라는 무섭고 두려운 선택을 하게 되었고, 어느덧 8년이 지났다. 관계를 중요시하다 못해 철저히 의존형이었던 내가 20년 지기와 절교한다는 건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나의 수많은 인연들과도 얽히고설켜 있기에 N을 끊어내는 건 단순히 한 명과의 이별이 아니었다. 오랜 인연을 잘라내고 겪게 될 시나리오는 점점 확대되어 결정적인 순간에도 발목을 붙잡는 고리가 되었다. 그래, 대화로 풀어보자, 며 혼자 다잡아도 보고,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던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또 다시 망설이고 주저하며 꽤 오랜 시간을 지체했던이유이기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내야 했다. 1%의 미련, 아쉬움, 두려움 때문에, 남는 것 하나 없는 소모적인 관계를 질질 끌고 있는 건, 실체도 없는 눈앞의 그 무언가를 지연시키는 용도로만 쓰일 뿐 정작 삶에서 중요한 걸 놓치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인생의 귀중한 진리를 몸소 겪으며 나는 울고 있었지만 결국 벗어날 수 있었다.
세상에 나쁘기만 한 일은 없어.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는 거야.
숨도 안 쉬어질 만큼 고통스러운 순간도 있었는데 말이야... 세상에 진짜 나쁘기만 한 일은 없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왜 그런 애와 엮여서, 왜 나에게... 자책도 남 탓도 하며 내 인생 이십 년이 다 날아갔다고, 남는 게 없다고, 허무하고 슬프고 비참한 날들을 보냈었는데... 긴긴 터널을 어찌 됐던 기어와 악연을 싹둑 잘라내니, 귀한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질릴 대로 질리게 만들어준 N 덕분에 나는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게 행복한지, 누구와 잘 맞는지, 어떤 사람과 함께 해야 하는지 명확해졌다. 사람 보는 눈이 생겼다.
진정한 우정은, 상대의 기쁨을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는 관계라는 생각이 더욱 분명해졌다. 언뜻 보면 친구의 행복과 번영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기도해 줄 수 있는 게 쉬워 보이지만 슬픔을 위로해 주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상대를 진정으로 아끼고 위하는 마음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이제 나는 그녀(그)의 행복과 안녕, 평온을 기원하고 좋을 일이 생겼을 때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 한다. 이 소중한 이들과의 만남만으로도 귀한 시간이 꽉 찬다. 소모적이고 기쁘지 않은 관계에 신경을 쓸 여력도 에너지도 없다.
썩 내키지는 않지만 빠지면 찝찝하니 무리를 해서 나간 모임에서, 역시나 에너지가 쭉쭉 빨리고 돌아와 정작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고 죄책감까지 들던 날, 매일 같은 레퍼토리에 무슨 이야기를 해도 결국은 자기 합리화와 남 비하로 이어지는 그녀와의 찝찝한 대화들, 밑도 끝도 없는 자기 자랑으로 혈안이 되어 주위에는 참고 들어주는 겨우 몇 명만 남은 그녀와의 안타깝지만 아까운 시간들, 나는 되고 남은 안 되는, 내로남불의 전형으로 듣고 있으면 정신이 아득해지는 덧없고 헛헛한 말들...
나는, 서서히 그리고 과감히 끊어내었다.
내 곁에 누가 있는지는 내 삶에 강력한 영향을 준다. 그러니 내게 힘이 되고 내가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건 축복이다.
나의 바람, 사랑하고 아끼는 나의 사람들에게,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이고 밝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