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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움 Jan 22. 2024

얼굴에 복이 가득해요

타고남을 지켜나가는 건

"아가씨, 얼굴에 복이 가득해, 사람들을 하도 보다 보니 내가 준(準) 관상학자야, 인복이 많은 얼굴이야."

롯데백화점 식품관에서 제품을 고르던 내게, 판매원분이 말을 건넸다. 이십 대 초중반의 내게, 복이 많다는 게 얼마가 좋은 말인지 당시에는 썩 와닿지가 않았다. 솔직히 가득한 복보다는 예쁘다는 말이 훨씬 듣고 싶은 칭찬이었기에 '네, 감사합니다.'하고 흘려보냈다.


얼굴에 복이 가득하다니... 이제는 그 말의 진가를 아는 나이가 되었다. 아저씨의 말이 빈말이라고 해도 두고두고 간직하고 싶은 칭찬이다.






"OO 씨는 사랑 많이 받고 자란 티가 나요."

종종 들어왔다. 그때는 다들 이렇게 살고 있지 않나 생각했는데, 막상 자식을 낳아 길러보니, 엄마의 헌신, 조건 없는 사랑과 정성 가득한 돌봄이 얼마나 대단하고 힘든 일이었는지 매일 놀랄 뿐이다.



"우리 예쁜 딸, 절세미인, 예뻐요."

태어날 때부터 마흔두 살이 된 지금까지 아빠에게 매일 듣는 말이다. 어느 시기까지는 진짜 내가 절세 미녀인 줄 알고 살았었다. 다행인지, 2차 성징 발현 후에는 스스로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부모에게 듣는 말의 힘은 위대하다. 아빠의 주문이자 마법 같던 '예쁜 우리 딸' 덕분에 어느 정도는 예뻐질 수 있던 것 같다.


그러니 복 중의 최고봉이라는 인복, 그중에서도 부모복이라면 난 최고의 부모님을 만난 다이아몬드 수저이다. '자식 사랑의 아이콘'인 부모님의 사랑 덕에 나도 누군가를 마음껏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음에 더없이 감사드린다.



"엄마 고마워, 언니를 낳아줘서."

'최고의 동생, 최고의 이모'에게 주는 상이 있다면, 내 동생은 대상감이다. 나보다 우리 행복이를 더 아끼고 사랑해 주는 두 사람 중 한 명, 내 동생. 첫째 행복이 임신기간에도 나보다 내 몸을 더 챙기고 걱정해 주던 그녀, 출산 후 집에 왔을 때 삼일 밤을 내리 신생아를 돌봐주던 그녀였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첫 조카인 행복이를 향한 넘치는 사랑과 애정으로 호기롭게 도전한 신생아 돌보기는 육아 경험이 전혀 없는 싱글의 이모에게 난관과 충격의 연속이었을 듯싶다. 조카에 대한 사랑이 아무리 커도 수면욕을 이길 수는 없었을 터, 그래서 삼일 째 되던 날 그녀는 도망치듯 우리 집을 빠져나갔던 것이다.



코로나 투병시, 동생이 집 앞 현관에 매일 두고 가던 일용할 양식들





여기까지 읽다 보면, 일일 드라마 속 저녁 식사 장면이 떠오른다. 엄마는 따끈따끈하고 영양과 맛 모두를 잡은 음식을 준비하여 우아한 말투로 아이들을 부르고 오손도손 식사를 하는, 화목하고 다정함 가득한 전형적인 드라마 속 단골 씬.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처럼 삶 속으로 침투해 거쳐온 하루하루를 현미경으로 본다면, 엄마 아빠의 언쟁부터 살벌한 부부싸움도 목도했고, 할머니로 발발한 부모님의 큰 싸움에선 할머니에 대한 양가감정을 느꼈다. 죄책감도 함께. 손톱으로 꼬집고 놓지 않아 서로에게 피딱지를 안겨주던 치열한 자매 싸움도 있었고, 아끼는 목도리를 몰래 하고 나가 결국 잃어버렸다고 몇 시간을 찾아내라고 화내던 날도 있었다. 머리가 크면서 내 잣대로 엄마, 아빠의 삶을 평가하고 부모님의 걱정은 듣기 싫은 잔소리로 치부하며, 반항하고 대들고 상처 주던 시절도 있었다.

숱한 상처와 갈등, 싸움 속에서도 여전히 서로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았기에 우리 가족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서로가 발산하는 마음의 언어에 대한 참뜻을 이해하는 능력치도 세월만큼 상승했다.




내게는 타고난 복을 귀하게 여기고 감사하는 태도가 인복의 시작이었다. 상대의 애정과 호의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마워했고 미안해했다. 오늘도 감사하고 감탄한다. 타고남을 지켜나갈 수 있는 건,  고마움은 아낌없이 표현하고 미안함은 솔직하게 고백하는 하루를 보낼 때 찾아온다.


타고난 복이 다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를 믿고 스스로와 좋은 관계를 맺고 다져가는 일, 그 과정이야말로 인복이 시작되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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