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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움 Mar 04. 2024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이 결혼이라면

#Scene 1

"장모님, 유산균 거의 다 드셨죠?"

"응."

"다음 주에 가져다 드릴게요."

"고마워."



#Scene 2

"장모님, 그럼 목요일로 예약해 둘게요."

"그래."

"2시 수업이니, 저희랑 가셔서 점심 드시고 들으시면 되겠어요."

"바쁜데, 이런 것까지 신경 써주고... 고마워."


의성어와 감탄사 하나 없는 대화였지만, 과묵하고 조용한 두 사람의 성격을 감안하니 서로를 향한 관심과 배려하는 고운 마음까지 들린다. 



엄마는 제부가 신청해 준 '장 담그기' 수업에 다녀오셨다. 수업 첫날, 신청자들은 1말에 해당하는 장독구좌를 배정받아 직접 장을 담근다. 이후 장독들은 장 담그기 전담팀의 관리를 받으며 1년여간의 숙성 기간을 거쳐 올 12월 말, 완성된 작품을 수령하는 과정이다. 공들여 담근 엄마의 작품은 바로 12kg의 된장과 3.6l의 간장이다. 동생이 보내온 장 담그기 체험장에서의 엄마 사진을 보니 꽤 만족스러우셨던 것 같다. 엄마의 표정에서 이 수업에 대한 열정과 진지함이 비쳤다. '비공식 주치의'이자 '우리 집 의학박사'로 불리는 엄마에게 안성맞춤인 수업이었겠다. 




둘째 사위는, 장모님께 귀하고 값진 경험을 선물해 드렸다.






"이번 금요일에 행복이 전시회 하는 거야?

"네." 

"우리도 가도 돼?"

"이모랑 이모부요?"

"응, 행복이 전시회 하는데 이모부도 가고 싶은데?"

"... 선생님이 백 명 초대해도 된다고 하시긴 했는데..."



첫째 행복이가 다니는 미술학원에서 작품 전시회가 있었다. 집 근처 스튜디오를 대관하여 여는 소규모 전시회이기도 했고, 정작 우리도 잠깐 들를 계획이라 동생네를 초대할 생각조차 못했었는데, 주말에 뭐 하는지 묻는 이모와 행복이의 대화를 지나가다 듣게 된 이모부의 질문에 행복이가 살짝 당황한 눈치다.


그렇게 8명의 대식구가 행복이의 미술학원 전시회장을 방문하였다. 꽃샘추위로 영하 10도까지 내려갔던 지난 금요일, 아침 일찍부터 이모부가 꽃집에 들러 포장해 온 어여쁜 장미 꽃다발과 함께. 꽃값이 금값인 시즌이긴 하지만, 왠지 아주 비싸게 주고 샀을 것 같은 예감에 묻고 또 물었지만 동생은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동생에게 비추어볼 때 처형도 분명 가격을 물어올 거라 예상했던 제부의 당부가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내가 가격을 오해하자 동생은 정정해 주며 가까스로 알게 된 꽃다발 가격은, 3월의 된바람만큼 나를 놀래키기에 충분했다. 아틀리에에 전시된 아름답고 근사한 미술 작품들을 감상하며 놀란 마음을 진정시켜 본다...    



행복이의 근사하고 멋진 작품들!





  



원래도 걱정이 많고 불안도가 높던 동생은 임신기간 내내 무척 조심하며 지내왔었다. 임신 중기 정기 검진에서 조산기가 보인다는 소견에 따라 그 길로 입원을 하게 되었고, 내리 4주 동안 누워 지내다 32주 차에 조카를 낳았다. 어린 나이에 임신하여 출산한 첫아기를, 태어나자마자 안아보지도 못한 채 니큐로 보내며, 동생은 하루도 편히 잠들지 못했다. '내가 더 조심했다면 괜찮지 않았을까', '몸 관리를 소홀해서였을까',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생각하지 않으려 할수록 떠올라버리는 갈피 잃은 마음들이 이내 자책으로 이어지는 긴긴밤을 보냈다. 불면의 밤들은 더 깊은 우울과 공포의 늪으로 동생을 서서히 잠식시켰다. 심적, 육체적으로 쇠약해진 동생을 다시 일으켜 준 건, 엄마도 출산 선배인 언니도 아닌, 한결같이 중심을 잡고 그녀 곁을 묵묵히 지켜준 남편이었다.



그는, 조용하다.

목소리도 크지 않고 말수도 많지 않다.

그저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을 통틀어 가장 침착하고 평온하다.

자기 주관이 뚜렷하지만 동시에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있다.

미리 걱정하지 않고 지금, 오늘, 현재에 집중한다. 

세심하고 다정하게 상대를 대한다. 절대 티 내지 않고. 

.  



언니, 난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이 남편을 만나 결혼한 거야.
내 선택에 후회가 있을 때도 참 많았는데, 
이 모든 게 그를 만나러 걸어온 길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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