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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움 Mar 16. 2024

그녀가 내게 남기고 간 것

"애기 주방놀이 필요해요? 막내 쓰던 건데 필요하면 집사람한테 얘기해 둘게요."

"우와, 감사합니다."


새로운 지역으로 이사와 아이 둘과 적응 중이던 초장기, 오며 가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시던 이웃 아저씨의 막내가 놀던 주방놀이 장난감을 받으러 24층으로 올라갔다. 집 정리가 한창이라 바빠 보이셨다.


"아빠(언니의 남편, 형부를 언니는 아빠라 불렀다.)한테 얘기 들었어요. 부피가 좀 큰데 괜찮아요? 그리고 책이랑 옷도 많으니, 보고 필요하면 가져가요."

"네 감사합니다."

"이것도 괜찮으면 가져가요."

"와, 진짜 많은데요? 감사합니다.!!"


언니는 주방놀이를 비롯 장난감, 아이들 옷, 책이 한가득 담긴 자루와 쇼핑백을 우리 집까지 옮겨다 주었다.

그렇게 언니를 만났다.






언니의 셋째 딸과 나의 첫째 딸, 행복이는 같은 유치원에 다니며 우리의 만남은 인연이 되었고 올해로 7년 차가 되었다. 언니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인생 선배이자 육아 선배로 함께 한 세월 동안 배운 점이 정말 많다. 내 12년 육아 인생에서 4할은 그녀와 함께였거나 그녀의 모습에서 배우고 싶은 부분을 나와 우리 행복이, 사랑이에게 맞게 적용해 보는 데서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세 아이를 키우며 시행과 착오를 거듭하며 체득한 경험과 연륜에서 나오는 여유로움과 단단함, 주변 사람을 잘 챙기고 베푸는 모습, 소탐대실하지 않고 멀리 넓게 보는 안목, 가족에 대한 사랑(현대적 현모양처의 모습이랄까, 현명한 엄마와 어진 아내의 모습을 두루 갖추고 있다.), 중대한 일을 결정할 때 나오는 결단력과 실행력은 특히 본받고 싶은 모습이다. 언니와 긴 시간을 함께 하다 보니, 신기하게도 언니가 가진 부러운 모습들이 많은 영향을 주며 나도 그렇게 닮아가고 있었다.  



그런 언니가, 작년 봄 아이들과 함께 유학길에 올랐다. 소식을 듣던 날, 축하해 주기 바빠 못 느끼던 감정들이 점점 실감이 나며 한동안 무얼 하든 눈물이 났다.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어떤 날은 좀 웃기기도 했다. 남자친구와 헤어질 때도 이렇게 울지는 않았던 같은데 나도 모르게 언니에게 엄청 의지했었구나, 참 좋아했었구나 느끼며...


언니가 떠나던 그 맘 때 썼던 글을 보니, 마음이 뭉클하다. 출국 전, 눈코뜰새 없이 바쁘던 시간을 쪼개어 언니는 아이들이 쓰던 책장과 책상을 손수 분리해 우리 집까지 실어다 주었다.


언니가 주고 간 많은 것들 중 일부






이사 와서 처음 만난 첫째 친구네가 곧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요.
좋은 일이고 기쁘고 축하하는데 왜 자꾸 눈물이 날까요.
어제도 많이 울었는데 오늘 운동하는데 또 눈물이...
첫째 유치원 친구로 만나 올해 11살 되었으니 6년 친구예요.
새로운 동네로 이사 오면서 처음 만난 이웃이었는데 언니네한테 고마운 게 정말 너무 많거든요.

그래도 그렇지 왜 이렇게 슬픈가 했는데 함께한 추억이 정말 많네요.
놀이동산, 계곡, 동대문 문구거리도 같이 갔었고, 영화관, 박물관, 미술관, 유적지도 갔었고,
수업도 같이 듣고 우리 집에도 자주 오고 언니네도 참 많이 가고...

맛있는 거 먹으러도 많이 다니고 특히, 아이들 더 어릴 때는 어디 이동할 때면 항상 언니가 데려다주곤 했거든요. 그래서 운전을 다시 하면 언니네를 데려다주는 게 저의 로망? 중 하나였어요.  
저는 그 당시 둘째가 어려서 언니가 저희 첫째만 데리고 여기저기 놀러도 데리고 다녀줬어요.
저 회사 늦게 끝나는 날은 유치원에서 픽업해서 슬라임 카페도 데려가 주고요.

적다 보니 진짜 고마운 인연이네요.
언니가 주변 사람들한테 베풀고 배려하는 모습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해야지 많이 배웠거든요.
당연하게 생각했던 만남들이 정말 소중하고 행복했던 인연이었던 것 같아요.
생각보다 훨씬 더 정들었나 봐요.
울고 있는 엄마를 본 일곱 살 둘째가 위로해 줬어요. 괜찮다고요. ㅎㅎㅎ
 


박물관, 도서관, 놀이공원, 강과 산으로 함께 한 시간들







아이들 방학이라 언니가 한국에 잠시 들렸다. 밝아진 얼굴이다.

언니가 잘 지낼 거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역시나 언니는 그곳에서도 좋은 이웃들과 즐겁고 보람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제법 단단해지고 여유로워진 지금도,

아이들 키우며 고민거리가 생기거나 힘든 날은 문득 언니가 생각난다.

이럴 때 언니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행동했을까?

몸은 비록 멀리 있어도 그냥 든든한 마음이 드는 언니를 만나 참 행복했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기쁘고 빛나게, 되돌아보며 조금씩 성장하는 하루를 보내다 다시 만날 날을 그린다.



좋은 사람으로 만나
착한 사람으로 헤어져
그리운 사람으로 남아야 한다.

꼭 쥐고 있어야
내 것이 되는 인연은
진짜 내 인연이 아니다.

잠깐 놓았는데도
내 곁에 머무는 사람이
진짜 내 인연이다.

<젬마리더스 산소리>










출처: Un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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