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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움 Mar 25. 2024

힘들어요.

몸이 이상하게 처지고 기분도 찝지름하더라니, 역시 생리 시작이다.

호르몬의 노예답다.

그래도 그렇지, 축축한 공기처럼 푹 가라앉은 마음이 좀처럼 돌아오질 않는다. 원래도 이렇게 흐린 날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사라져서 행복했던 생리통까지 도져 약을 두 알이나 털어 넣었는데도 배 근처가 살살 아프니 모든 의욕의 정지된 느낌이다. 전에도 느꼈는데 외면해 왔던 건지 알 길은 없지만 이 무기력한 기분, 매우 불쾌하다. 장염에 걸렸을 때도 식욕은 살아있어 주변 사람들의 놀라움을 자아냈었는데, 그 한 움큼의 위트마저 사라진 것 같아 슬펐다.



얼마 전까지의 나였으면, 기분이 이리도 다운되는 날에도 평상시의 모습을 유지하려고 무진장 애썼을 거다. 사람들을 만나도 우울한 모습보다는 밝고 긍정적인 면을 보여주길 원했다. 힘든 일이 생겼다는 친구의 전화에 너만이 아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며 공감과 위로를 해주는 친구였고, 그런 사람이길 바랐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멘토가 되기도, 고민이 생기면 생각나는 사람이었지만 정작 나의 깊은 슬픔과 힘듦을 속시원히 말해본 적은 별로 없다. 일단, 엄마는 나보다 훨씬 더 속상해하고 마음 아파해서 슬픔 공유자로서는 일 순위로 탈락, 그나마 남편이나 동생에게 하지만 남편도 안쓰럽고 동생도 본인 생활이 힘겨울 때가 있는데 언니인 내가 중심을 잘 잡아야지,라는 생각에 주저하게 된다. 베프에게도 마찬가지. 그래서 책을 읽기 시작했고 목욕탕에 다니게 되었고 운동을 시작했다. 이렇게 된 데에는 굳이 다른 사람 기분까지 다운시킬 필요가 있냐,는 마음과 함께 나를 아는 이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은 욕심이 깔려 있다.







오늘은 누군가에게 힘들다고 말하고 싶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고.

굽은 등 펴는 것도, 십수 년간 매일 하던 스트레칭도, 혼자라도 꼭 지키고 싶은 연재일도, 너무 귀찮다고.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면서 가장 사랑하는 행복이, 사랑이에게 다그치고 모진 말 퍼부은 내가 너무 부족한 엄마이자 인간인 것 같다고.


말할까 말까 할 때는 말하지 말라고 배웠는데... 망설이다 말해버렸다. 힘들고 슬프다고.

열정 넘치고 적극적이고 온화하고 너그럽고 멋지고 부럽고 본받고 싶은 그녀들이, 한 입으로 괜찮다고 말해준다.

나도 그렇다고, 당신만 겪는 고단한 하루가 아니라고.

어제의 나도 그랬고, 오늘의 그녀도 후회하고 반성하고 다짐하고 또 반복한다고.

루쯤 건너뛰어도 정말 괜찮다고,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흐린 날이 있어야 또 맑은 날이 있는 법이라고.




작가님의 충분한 사랑을 받고자란 첫째 아이도
엄마의 진심이 무엇인지 다 알 거 같아요.
너무 걱정 마시고, 오늘은 푹 쉬어가는 날로 생각하셔요.


  






말하길 잘했다.

힘들다 고백하면 나약해질 것 같아 삼켰었는데 단단하고 온화해 보이는 그녀들도 나와 같은 실수를 하고 슬퍼하고 또 반복한다니...

좋은 이야기만 말하려고 만나는 것이 아니기에, 나의 참담함과 후회 그녀의 외로움과 설움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조금은 힘이 나기 시작했다.

역시, 사람이었다.




고마워요,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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