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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이야기>
원영의 몸_정원영 40세 169cm 50kg 외동딸 맘, 프리랜서 번역가, 큐레이터
음식점을 하는 엄마와 주변 가게 사장님들이 주는 먹거리들로 인해 원영의 집에는 사시사철 음식들이 넘쳐 났다. 줄 서서 먹는 맛집의 양념 게장과 간장 게장, 각종 젓갈 및 장아찌류가 주를 이루었는데 엄마와 오빠들이 가장 좋아하는 반찬들이었다. 거기에 원영의 엄마는 수입 상가 건물에 점심을 배달하며 그곳 상점 주인들과도 친했다. 덕분에 원영의 집 주방 식탁과 거실 테이블에는 외국산 제품들이 즐비했다. 대부분은 엄청나게 짜고 단 비스킷과 초콜릿, 젤리들이었고 간간이 독일제 화장품과 미용 기구들이 엄마 손에 들려왔다. 화려한 포장지에 담긴 미제 초콜릿은 아찔할 만큼 달았다.
공부를 하며 틈틈이 한 조각 씩 먹다 보니 원영은 어느 날 허벅지에 살이 붙고 있음을 발견했다. 비상사태였다. 과식과 폭식으로 인한 살과의 전쟁에서 매번 지고 마는 엄마와 오빠들의 힘겨운 삶을 한평생 지켜봐 온 원영이기에, 절대로 살이 찌면 안 된 다는 생각이 강박적이리만큼 뿌리 깊이 박혀버린 그녀였다. 여리여리하고 마른 몸을 가진 원영이었지만 엄마를 닮아 언제든지 거대하게 커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자신의 몸과 몸무게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원영에게는 언제 어디서든 지금의 마른 몸을 유지하는 것이 최우선의 목표가 되어버렸다. 그 길로 원영은 미국산 과자와 초콜릿을 끊었고, 하부장에 가득한 그것들을 모조리 학교에 가져가 친구들에게 나눠 주었다. 수입 과자와 화장품들이 귀했던 시절, 원영의 주변에는 늘 친구가 많았다.
그중에서 원영은 지원과 함께 있을 때가 가장 좋았다. 특히, 지원이네 집에 놀러 가 함께 숙제를 하고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지원이네 집은 안락하고 포근해서 대화를 하다 보면 어느샌가 잠이 들기도 했다. 지원의 엄마는 원영이 방문할 때마다 따스한 미소로 반겨 주었고, 그녀가 직접 만든 담백하고 건강한 맛의 간식들을 내어 주셨다. 지원이네 거실에는 아주 높은 길이의 원목 책장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외국 원서들과 잡지가 가득 꽂혀 있었다. 지원의 엄마는 거실 소파에서 그 책들을 읽거나 책을 보며 무언가를 쓰곤 했다.
처음 보는 외국 책들은 원영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화려한 색감의 표지들은 신선했고, 회베이지 혹은 회갈색 빛의 도는 속지도 독특했다. 책을 넘기면 까끌하면서도 동시에 부드러운 질감이 손을 타고 내려왔고 특유의 내음도 매력적이었다. 원영은 그 향기와 촉감이 좋았다. 소란스럽고 시끄러운 뽕짝 대신 클래식이 흐르고 고상하고 세련된 엄마가 있는 지원의 집, 원영은 그녀의 집에서는 한 번도 느끼지 못한 우아한 향취가 스며 나오는 그 집이 좋았다.
원영은 언젠가부터 독립을 하고 싶었다. 그녀의 집이 아닌 다른 나라, 다른 도시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원영의 엄마는 예쁘고 날씬한 원영이 대학교 졸업 후 조신하게 회사 생활 하다가 자상하고 능력 있는 남자 만나 시집가기를 원했지만 원영은 아니었다. 원영은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가고 싶은 나라나 도시가 생길 때마다 그곳에서 하고 싶은 계획들을 다이어리에 적어 내려갔다. 학부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도 카페, 모델, 과외 등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차곡차곡 돈을 모았고 여행 자금으로 쓸 수 있을 정도가 모아지면 해외여행을 떠났다.
학창 시절 가장 친했던 지원이 살고 있는 미국으로의 여행을 준비 중이다. 지원은 미국 대학 순위 14위를 기록한 아이비리그의 명문인 브라운 대학교에 재학 중이다. 원영은 서울에서, 지원은 미국 로드아일랜드주에서 각자의 생활을 만끽하다 곧 함께 미국 남부와 멕시코를 여행하기로 했다. 둘이서 하는 첫 번째 해외여행을 앞두고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이 년여만에 만났지만 어제 만난 것 같았다. 매일 아침 조깅을 해서 그런지 지원은 서울에서 있을 때 보다 건강하고 탄탄해진 모습이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