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영의 몸_정원영 40세 169cm 50kg 외동딸 맘, 프리랜서 번역가, 큐레이터
아이디 bluesky를 사용 중인 원영은 방금 만난 아이디 세아이맘123에게 건넨 베이글과 소금 빵을 먹지 않는다. 원영이 정제 탄수화물을 끊은 지는 아주 오래되었다. 누가 봐도 마른 체형이지만, 그녀는 이 몸을 유지해야 한다. 그녀의 주식은 콤부차, 히비스커스, 카뮤트 효소, 차전자피, 레몬수, 애플사이다비니거, 다이어트 유산균, 콜라겐, 글루타치온, 비오틴과 같은 각종 다이어트 차와 영양제, 그리고 드레싱 없는 샐러드이다. 영양제마다 복용법과 섭취 시간이 있기 때문에 약통에 시간별, 요일별로 담아 둔다. 과일도 그녀에게는 금지 대상이다. 체중 조절에 효과적이라는 레몬과 자몽만 먹는다.
꾸덕하고 크리미 한 로제 떡볶이, 감칠맛 일품인 짜장면, 바삭한 치킨, 쫀득하고 고소한 족발, 매콤 달콤해서 자꾸 손이 가는 닭 발, 얼큰하고 매력적인 감자 탕, 돼지고기 가득 품은 매콤 새콤한 김치찌개 앞에서도 그녀는 단호하다. 아무리 피곤해도 하루치 운동량은 꼭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드는 그녀였다. 이렇게 자기 관리에 철두철미한 원영이 그녀 자신에게 허락한 유일한 길티플레저(Guilty Pleasure, 어떤 일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좋아하고 즐기게 되는 심리 혹은 행위)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하겐다스 피넛버터 크런치. 대학교 때 모델일을 하면서 알게 된 동료와 살을 빼겠다고 시작한 담배도 끊고, 그렇게 좋아하던 맥주도 끊었지만 하겐다즈는 그럴 수가 없었다.
새벽 5시, 운동방으로 간 원영은 인바디 측정 후 운동을 시작한다. 워킹, 러닝, 계단 오르기, 타바타 등 그날의 몸 상태에 맞춰 공복 유산소 운동을 마친 후 코어, 상하체 근력 운동과 스트레칭까지 완료하면 오전 운동은 끝이 난다. 샤워까지 하고 나오니 6시 30분, 아침 식사 준비를 마치고 남편과 딸을 깨운다.
그릭 요거트 위에 그린 키위, 레드 키위, 블루베리, 라즈베리, 아몬드, 캐슈너트에 호두까지 올린 뒤 꿀을 살짝 뿌린다. 발사믹 식초와 올리브 오일을 뿌린 샐러드, 삶은 달걀과 어니언 베이글도 함께 내어 놓는다. 단탄지(단백질, 탄수화물, 지방)에 비타민과 미네랄까지 5대 영양소를 고루 갖춘 완벽한 식단이다. 원영의 아침은 달걀흰자, 방울토마토, 유산균 한 알, 콜라겐 한 포와 유기농 히비스커스 차이다. 남편과 딸이 나가고 원영도 서재 방으로 가 일을 시작한다.
남대문에서 생선조림 장사를 하던 원영의 친정 엄마는 전통적인 미인이었다. 불 앞에서 하루 종일 서 있고 식재료 손질을 일일이 하다 보니 겨울에도 피부가 빨개졌고 하루 종일 땀을 한 바가지씩 흘리며 일했던 탓에 그 곱던 피부는 현무암처럼 거칠어졌다. 손, 팔, 목 할 거 없이 온몸에 덴 상처는 하나둘씩 늘어갔으며 손 마디마디는 두툼해졌다. 능력 없는 남편 대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원영 엄마의 일은 참 고되고 힘들었다.
원영의 엄마 가게의 영업시간은 오전 7시에서 밤 9시. 남대문 시장에서 남들에게 손수 밥을 해줄 때 정작 그녀의 자식들은 엄마 밥 대신 다른 사람이 해 준 밥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아침은 그래도 손수 차려 주고 싶어, 가게에서 가지고 온 반찬과 갓 지은 밥으로 내어 놓았다. 곤히 자고 있는 세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머리 위에 저녁 식사를 위한 현금을 두고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하루치 장사를 마치고 한숨을 돌린 후 거실에 앉을라 치면 밤 12시가 다 되었다. 익숙해진 생활이었지만 유독 몸과 마음이 피로한 날은 오히려 잠이 오질 않았다. 식탁에는 주변 가게 사장님들이 준 각종 떡과 약과를 비롯해 수입상가에서 사 온 미국산 과자와 치즈, 독일에서 온 화장품들이 즐비했다. 연자(원영의 엄마)는 그 밤들을 막거리 한 병과 약과나 떡, 과자 한 봉지를 먹으며 버티곤 했다. 거기에 맵고 짠 생선 조림을 만들고 맛보다 보니 원영의 엄마는 점점 살이 쪘다. 살이 찌니 무릎이 망가졌고 장사가 힘들어졌다. 장사를 그만 둘 순 없었다. 원영의 엄마는 열심히 살을 뺐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뺀 것보다 더 많이 쪘다.
스물한 살에 남의 가게 설거지부터 시작해 연자가 자신의 가게를 꾸린 지는 30년이 다 되어간다. 오랜 장사로 돌보지 않은 연자의 관절 곳곳에는 염증이 생겼다. 불규칙한 식사 시간과 맵고 짜고 뜨거운 음식 섭취로 인해 그녀는 당뇨와 고혈압에 이어 최근에는 심장과 신장에도 이상이 생겼다. 원영의 엄마가 하루에 먹어야 하는 약만 한 움큼이었다. 그럼에도 오래도록 자리 잡은 식습관을 고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하나뿐인 막내딸에게만큼은 절대 물려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연자는 그녀의 딸 원영이 날씬하고 예쁜 모습으로 불 앞에서 고생하는 일은 하며 살지 않기를, 자신과는 다른 팔자로 살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모처럼 원영은 엄마와 오빠들과 함께 점심을 먹는다. 돌솥비빔밥도 아닌 일반 비빔밥을 먹는데도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흘려 내기기 직전이었고 귀를 타고 목까지 축축해진 엄마와 오빠들을 볼 때면 원영은 밥맛이 뚝 떨어졌다. 엄마와 오빠들은 뚝배기 불고기와 된장찌개를 추가로 주문했다.
“원영이 너는 엄마처럼 이렇게 살찌면 안 돼. 큰일 난다. 엄마는 이미 이렇게 된 몸이라 어쩔 수 없지만 원영이 너는 건강하게 먹어야 해. 살 안 찌게.” 엄마는 뚝배기 불고기에 오징어 젓갈과 갈치 속젓을 번갈아 비비며 대야 같은 한 그릇을 또 뚝딱 비웠다. 첫째 오빠는 비빔 냉면을, 둘째 오빠는 김치말이 국수로 입가심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