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brunch.co.kr/@beyonce1983/223
“아…네. 안녕하세요.”
“저는 지호 엄마예요. 지호가 재윤이랑 놀고 싶다고 여러 번 이야기를 했어요. 아까 보니 둘이 잘 놀더라고요.”
“아 재윤이 앞자리 앉은 친구가 지호죠?”
“맞아요. 지호가 재윤이한테 전화번호를 물어봤는데 재윤이가 휴대폰이 없다고 그러더라고요.”
“네. 아직 없어요. 5학년 되면 사주기로 했거든요.”
“어머나, 기특해라. 지호 말로는 재윤이가 그림도 잘 그리고 축구도 잘한다고요.”
“축구를 좋아해요. 아빠랑 동생들이랑 자주 하러 나가요. 지호도 축구 좋아하나요?”
“네, 엄청요. 시간 맞는 날 같이 축구하러 만나도 좋겠어요.”
“아… 네.”
“혹시, 시간 되시면 커피 마시러 가시겠어요?”
‘둘이 마시는 건가? 다른 사람들도 가는 건가?’
아이 친구 엄마와 오랜만에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 반, 집에 가서 편히 쉬고 싶은 마음 반이었다. 삼삼오오 무리 지어 이야기를 나누던 엄마들도 함께였다.
‘다들 친해 보이는데 나 혼자 낙동강 오리 알 신세가 되는 건 아닐까? 지금이라도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할 것 같다고 할까?’
찰나에 수많이 생각들이 스쳤다. 웃고 있지만 왠지 이것저것 계산 중인 복잡한 속내를 들킬 것만 같았다. 51:49로 카페에 가기로 결정했다.
6명의 엄마들과 학교 근처 카페에 도착했다. 이런 단체 모임은 처음이라 주문은 어떻게 해야 하나부터 고민하고 있었는데, 한 엄마가 각자 마실 음료수를 메모장에 받아 적었고 함께 먹을 디저트까지 골라 주문을 했다. 자리에 앉아 누구 엄마인지 간단히 소개를 했다.
“저는 임서진 엄마예요. 저희 반 담임 선생님이 첫째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셨는데 정말 좋으시거든요. 열정이 넘치셔서 학기 말에 아이들 활동지와 사진 모아서 책도 만들어 주시고, 특히 아이들을 정말 예뻐하세요. 서진이가 낯가림도 있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거에 힘들어하는 편인데 지금 우리 반 좋다고 하더라고요.”
오며 가며 눈인사만 하던 엄마였다. 인상이 세 보였는데 말하는 걸 들어보니 사람이 훨씬 괜찮아 보였다. 서진이 엄마 옆에 앉은 경주의 차례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이재윤 엄마입니다. 반갑습니다. 재윤이가 말수도 적고 학교 이야기는 거의 안 해서 궁금한 게 많았거든요.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태윤이가 재윤이 이야기 많이 했어요. 얼마 전에 태윤이가 체육 시간에 다리를 다쳤는데 자기 보건실 갈 때도 재윤이가 데려다주고 색연필도 잘 빌려 준다고요.”
어색하기는 했지만 재윤이의 담임 선생님에 대한 정보와 학교 생활, 친구 관계에 대해서 좋은 이야기도 듣게 되어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온 경주는 재윤이가 제일 좋아하는 진미채, 어묵 볶음과 불고기를 만들었다. 깨까지 솔솔 뿌려 식혀 둔 반찬들을 보니 마음이 든든했다.
‘벌써 아이들 하교 시간이네. 아 맞다, 이불 사야지.’
아토피와 알레르기가 있는 둘째 아이의 이불을 바꾸려던 참이었다. 자주 가는 인터넷 카페의 사고팔고 게시판을 클릭했다.
제목: 알러지케어 알레르망 차렵이불(아동용) 새 상품 판매
본문: 새 상품/직거래 선호/같은 제품을 선물 받아 새 상품 그대로 팝니다.
인터넷 최저가보다 5만 원이나 저렴하다. 이전 글을 보니 사기꾼도 아닌 것 같아 채팅을 보낸다.
“안녕하세요. 카페 글 보고 연락 드려요. 알레르망 이불 살 수 있나요?”
“네. 가능해요. 집 정리 중이라 내일 오전 중으로 오실 수 있으면 합니다.”
“청담 역 근처로 표시되어 있는데 역에서 만나면 될까요?”
“차 가지고 오시나요?”
“네.”
“혹시, 아이가 몇 살일까요? 초등용 문제집이랑 영어 책이 있어서 나이대가 맞으면 함께 드릴 수 있어요.”
“아 진짜요? 3학년, 1학년이에요.”
“딱이네요. 챙겨 놓을게요.”
“감사해요.”
“문자로 주소 보내 드리겠습니다.”
“띵동”
주소: 삼성동 87 아이파크삼성
오전 10시, 흰색 원피스를 입은 그녀가 차에서 나온다. 판매자인 것 같다.
아이디: bluesky
청명한 파란 하늘처럼 맑고 투명한 피부, 집 앞에 잠시 나온 차림인 것 같은데 빛이 난다. 강남 여자들은 생얼에 티셔츠만 입어도 부티가 난다더니 진짜였다. 상냥한 미소로 인사를 건네며 내 차 뒤로 물건들을 가져와 실어준다. 포장박스까지 있는 이불과 학년별, 과목별 문제집, 그리고 비싸서 빌려 보기만 했던 영어 원서들까지. 문제집과 영어 책들도 이불처럼 정갈하게 포장까지 된 상태였다. 흰색 원피스의 그녀는 잠시만 기다리라며 차로 다시 돌아가 베이지 색 쇼핑백과 아이스커피를 가져왔다.
“여기까지 와 주셔서 고마워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동네 빵집인데 베이글이랑 소금빵이 유명해요. 아침에 저희 거 사는 길에 같이 샀어요.”
“와 감사합니다. 책도 이렇게 많이 주셨는데 빵까지… 정말 감사합니다.”
반짝거리는 흰색 실루엣이 멀어져 간다. 경주는 그녀가 건넨 베이지 색 봉투와 커피를 들고 서 있다.
‘저 여자는 고민이 있을까? 예쁘고 부자인데 친절하기까지...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여유로워서 그런가. 부럽다... 언제 이런 아파트에서 살아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