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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움 Aug 20. 2024

[소설] 몸의 기쁨과 슬픔_경주의 몸 (1)

경주의 몸_나경주 38세 168cm 72kg 아이 셋 엄마, 전업주부





18일 차 식비 지출 88만 7천 원. 말일 되려면 아직 열흘도 더 남았는데 물가가 올라도 너무 올랐다. 외벌이에 아이도 셋이라 식비라도 아껴보고자 외식, 배달도 줄이고 반찬도 거의 만들어 먹고 있다. 오늘은 냉파(냉장고 파먹기)를 해야겠다. 아점은 냉동고에 얼려 놓은 나물들에 시어머니가 직접 짜서 보내주신 참기름 한 스푼 넣어 쓱싹 비벼 먹어야지. 거기에 얼마 전 집 근처 재래시장에서 떨이로 판매한다는 말에 덜컥 사와 38년 인생 처음으로 담가 본 열무김치를 먹어볼 참이다.

고사리와 숙주를 꺼내니 닭 북채가 보인다. 마음먹은 김에 닭다리들이 화석이 되기 전 치킨을 만들어야겠다. 한참 크는 아이들 덕에 세 마리는 시켜야 다섯 식구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데, 그럼 치킨 값만 6만 원 돈이다. 하교 전 밑반찬 세 가지에 닭까지 튀겼더니 얼굴부터 목까지 땀이 흥건하다. 그래도 만들어 놓은 음식들을 보니 뿌듯하다. 혼자 있으니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은 틀지 않는다. 세수를 하고 선풍기를 강으로 켠 뒤 겨우 한숨 돌리고 앉았다. 매콤하고 꼬수운 비빔밥 한 입 먹으며, 맘카페 글을 스크롤하고 있던 경주의 시선이 멈췄다. ‘무슨 글인데 댓글이 187개나 달렸지?’   



제목: 신혼인데 이 정도면 저희 리스인 거 맞죠? ㅜㅜ
본문: 저랑 남편은 33살 동갑내기예요. 결혼 2년 차고요. 신혼 조금 즐기다가 아기를 갖기로 해서 작년 10월부터 임신 준비 중이에요. 난임 병원에서 검사했는데 다행히 둘 다 특별한 문제는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요 진짜 문제는요, 남편이 성욕이 없어요. 전 남자 친구들은 하나같이 저랑 더 하려고 안달이었고 5년 사귄 남자 친구 하고는 특히 속궁합이 잘 맞았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남편이 저럴 때마다 자존심도 상하고 전 남자 친구 생각도 나고요. 저희 결혼하고는 한 달에 한 번? 진짜 심각하죠? 오죽하면 제가 했던 날을 다 적어 놨어요. 생각해 보니 연애할 때도 이러긴 했는데 그때는 자주 못 만나기도 하고 피곤한가 정도로만 여겼거든요.

이번에 제가 임신 준비하면서 살이 많이 찌긴 했어요. 5kg 정도. 그래서 지금은 55kg 정도 나가요. 키는 168cm이고요. 인생 최대의 몸무게이긴 한데 그래도 요즘도 지나다니면 연락처 물어보는 남자도 있고요. 대학 다닐 때는 홍보 모델도 했고요. 연애도 남편이 엄청 사귀자고 해서 사귀게 됐거든요. 살이 쪄서 자존감이 떨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못 봐줄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신혼인데 이렇게 안 하는 부부도 있나 이 생각만 들고 날이 갈수록 횟수에 집착하게 돼요. 안 그러고 싶은데 ㅜㅜ 남편이 먼저 원하지 않으니 제가 다가갈 때가 많은데 그 마저도 모른 척하거나 껴안고 있다 잠들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저러면 진짜 너무 자존심 상하고 이 결혼 유지하는 게 맞나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 어떡하지? 별 생각이 다 들어요.

이거 제외하면 다른 부분(집안일, 성격, 시댁)들은 잘 맞거든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혹시 진짜 내가 살쪄서 그런 건가 싶어 간헐적 단식하면 식단도 나름 하고 있어요. 매일 만보 이상 걷고요.


댓글:
- 저랑 같은 처지네요. 포기했어요. 이거 진짜 안 당해보면 몰라요. 힘들고 자괴감 엄청납니다.
- 아니, 글 보면 외모도 출중하신 것 같은데 너무 아까워요. 저런 남편 안 바뀝니다. 글쓴이님만 마음고생 할 거예요. 진지하게 날 잡고 얘기해 보세요.
- 부부관계가 얼마나 중요한데요, 한쪽만 노력하는 게 얼마나 힘든 건데요. 남편이랑 상담받아보세요.
- 저도요. 그 심정 완전 알아요. 이 거 막상 겪지 않으면 아무도 모릅니다. 다들 남자가 성욕이 넘친다고 생각하는데 아닌 놈들 많아요. 울 남편도 걔 중 하나고요. 전 세상에서 성욕 넘치는 남편 둔 부인이 제일 부럽습니다. 쓰니님 격하게 공감하고 위로합니다. 전 애 둘 딸린 주부라 이혼 생각도 못해요.
- 저희 남편이랑 완전 반대예요. 글 쓴 님도 괴로우셔서 썼겠지만 성욕이 넘치는 남편도 정말 힘들어요. 저한테는 완벽한 남편상이에요.
- 진짜 부럽습니다. 등치는 산만해서 힘들어 죽겠는데 매일 밤마다 달려드는 남편 ㅅㄲ 때문에 지옥 같아요. 저는 정말 부러운 상황입니다.
- 저희 만날까요?






글도 글이지만 댓글들을 읽느라 중간에 끊을 수가 없었다. 결국 허겁지겁 먹던 비빔밥까지 내려놓았다. 경주도 댓글을 작성한다.


‘일단 글쓴이님 몸무게 정말 부럽네요. 살찌신 게 55kg라니요. 지나가다 남자가 연락처를 물어볼 정도면 얼굴도 예쁘실 것 같아요. 저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거든요. ㅎㅎ 저랑 키도 같은데 몸무게는 거의 20kg나 차이 나요. 저는 아이들 출산하고 피부도 예민해져서 한 달에 한 번은 뒤집어져요. 외모로만 보면 남편이 저와 안 자고 싶어 해야 하는데요. 저희 남편은 엄청 원해요. 오늘 아침에도 아침 준비하려고 일어나는 저를 붙잡더니 너무 하고 싶다고 해서 애들 깨기 전에 후딱? 했어요… ㅎㅎㅎ 원래도 살집이 있었는데 애들 낳고는 살이 더 쪄서 저도 제 몸을 보는 게 너무 싫거든요. 그런데도 남편은 항상 예쁘대요. (물론 믿지는 않습니다. ^^) 아무튼 이렇게 뚱뚱하고 피부도 안 좋은데도 남편 사랑받고 사는 아주미가 있다는 건, 남편이 님을 안? 원하는 이유가 살쪄서는 아니라는 걸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는 글쓴이님 외모가 너무나 부러운 걸요.’


쓰다 보니 장문의 글이 되어 버렸다. 몸무게는 60kg 대로 바꿀까? (앞자리가 7이라니 거대한 느낌이다.) 너무 솔직했나? 올리지 말까? 잠시 고민하다 어차피 누구인지도 모를 텐데, 경주는 등록 버튼을 꾹 눌렀다. 댓글을 올리자마자 알람이 울렸다. 경주가 쓴 댓글에 부럽다는 대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사랑받는 아내인 것 같다며 어떡하면 그렇게 되느냐고 비법을 묻는 회원들도 있었다. 댓글은 그새 259개가 되었다. 회원 수 4백만 명, 임신, 출산, 육아 분야 1위 카페에서 인기 글의 위력이란 이런 것이었다. 경주는 자신이 올린 댓글과 대 댓글을 번갈아 가며 천천히 다시 읽어 내려갔고 어느샌가 그녀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셋째 출산 이후로는 BMI(체질량지수, 자신의 몸무게(kg)를 키의 제곱(m)으로 나눈 값) 지수가 25.5로 수치상으로도 엄연한 비만인이 되었다. 경주라고 지금의 모습이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었다. 샤워를 하고 나와 수건으로 몸을 닦는 그 찰나의 순간에도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몸을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거울 앞에 서 있는 여자는 우울하고 슬픈 거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구부정하고 말린 어깨, 겨드랑이에서 가슴으로 이어지는 부위에 불룩 튀어나온 부유방, 앞에서도 보이는 삼두근 부위의 팔뚝 살, 발과 손에까지 살이 붙어 누가 봐도 뚱뚱한 여자의 표본이 된 몸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건 정말 끔찍했다. 이게 내 몸이라고? 보고 싶지 않아 눈을 질끈 감아버린 적도 많았다. 막내도 이제 두 돌이 지나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했다. 본격적으로 살을 뺄 계획이다. 8번째 다이어트. 아니 중간중간의 다이어트들까지 합치면 다이어트를 안 한 기간을 세는 게 더 빠를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단 한번도 말랐던 적은 없던 경주의 몸. 주말에 엄마가 사 주신 흰 스타킹에 레이스가 풍성하게 달린 멜빵 치마를 입고 기분 좋게 학교로 가는 길이었다.

 

“다리가 왜 저렇게 두꺼워?”

골목길에 등교하는 아이들이 많았지만 경주는 직감했다. 저 말을 한 남자아이가 지칭하는 다리의 주인은 자신이라는 걸. 경주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귀까지 빨개졌다. 그 모습까지 들킬까 봐 경주는 앞만 보며 잰걸음으로 걸었다. 어떻게 교실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그날 이후 흰 스타킹은 신지 않는다. 지나가던 남자아이가 뱉은 그 한 문장은 30여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또렷이 기억한다. 그날의 온도와 그 길의 냄새까지도.






to be continued










[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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