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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움 Aug 27. 2024

[소설] 몸의 기억_원영의 몸 (3)

<원영의 첫 번째 이야기>

https://brunch.co.kr/@beyonce1983/225




<원영의 두 번째 이야기>

https://brunch.co.kr/@beyonce1983/226





<세 번째 이야기>

원영의 몸_정원영 40세 169cm 50kg 외동딸 맘, 프리랜서 번역가, 큐레이터





지원과 함께 한 이번 미국 여행에서 원영은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데 어떤 질문이 필요한가에 대한 생각들을 하기 시작했다. 특히 재즈와 낭만으로 유명한 루이지애나 주의 최대 도시인 뉴올리언스를 여행하며 철저하게 낯선 이국적 장소가 주는 자유로움에서 일종의 해방감 같은 것이 그녀의 가슴 가득 차 올랐다. 한국에서 살면서 그녀 스스로 부과했던 혹은 사회적으로 부과된 완벽주의에 대한 부담감과 억압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여건이 될 때마다 원영은 체중을 확인하곤 했지만 적어도 한국에서처럼 매끼 칼로리를 계산하며 음식을 먹던 행위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었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는 것처럼 춤출 때와 같은 이 홀가분한 기분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미국과 근접하여 여행 일정에 추가한 멕시코였는데, 멕시코 여행은 그녀의 예상보다 훨씬 더 만족스러웠다. 역사적 문화유산이 풍부한 멕시코 시티는 다양한 문화적, 예술적 가치를 품고 있는 명소들로 가득했다. 거기에 아름다운 날씨와 길거리 타코부터 파인다이닝까지 오감을 자극하는 어마어마한 매력의 음식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하루하루가 더없이 소중했다. 멕시코 시티 여행 중 알게 된 이탈리아 출신 현지인의 추천으로 과달라하라라는 도시도 방문했다. 관광 도시로 유명한 멕시코시티와는 다르게 치안도 청결도 낙후되었지만 전통 음식과 현지 분위기를 느끼기에는 안성맞춤인 장소였다. 우연히 들어간 음식점에서 원영은 그녀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맛있는 타코까지 만나게 되었다. 테킬라까지 곁들이니 황홀함 그 자체였다. 무언가를 이렇게 아무런 죄책감 없이 먹는 게 얼마만인지. 원영은 문득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했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 제2 외국어를 선택할 때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원영은 프랑스어를 선택했다. 원영에게 가장 매력적인 외국어는 당연히 영어였고, 그다음은 프랑스어였다. 스페인어가 그녀의 머릿속을 차지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멕시코를 여행하면서 원영은 스페인어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원영은 지금껏 그녀 특유의 저음에 차분한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스페인어를 말할 때면 자신의 목소리와 묘하게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기초 회화 정도 실력의 원영이었지만 스페인어로 인사를 하고 말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상당히 매혹적이었다.   



원영에게 버킷 리스트의 한 줄이 추가되었다. 아주 강력하게 이루고 싶은 목표. 한국으로 돌아온 원영은 본격적으로 스페인어 공부를 시작했다. ‘이제 3학년이면 취업 준비도 슬슬 해야 하는데 뭐를 하려고 저러나.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선을 보고 해야 조건 좋은 남자를 만날 기회가 높아진다고 하던데…’ 주변 상인들에게 요즘 결혼 풍조에 대해 듣는 이야기가 많은 원영의 엄마는 전공과도 관련 없는 스페인어에 푹 빠진 원영의 모습이 왠지 걱정스러웠다.



스페인어 학원을 다니며 아침저녁으로 스페인어 공부에 매진하던 원영은 스페인으로 어학연수를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스페인 유학에 대한 정보는 생각보다 많지 않아 유학원뿐만 아니라 직접 해외 사이트를 검색하여 알아낸 정보를 일일이 기록하였다. 원영의 결혼이 가장 큰 관심사이자 목표인 엄마가 그녀의 스페인행 계획에 대해 찬성하지 않으리라는 건 너무나 당연했기에 원영은 스스로 유학 비용을 마련해야 했다. 시급이 가장 높은 피팅 모델 구인구직 사이트부터 들어갔다. 조건이 맞는 몇 곳에 지원을 하고 눈바디를 체크했다. 묘하게 퉁퉁해 보였다. 몸무게를 재니 4kg가 쪄 있었다. 미국과 멕시코 여행을 다녀온 후 학교 공부와 스페인어 공부에 매진하다 보니 몸무게에 신경을 예전만큼 쓰지 못했다. 그리고 지난 여행을 통해서 스스로에게 조금이라도 너그러워지고 싶은 마음도 한편에 있어 스멀스멀 붙기 시작하는 군살들을 외면해 왔었는데. 4kg이라니...! 긴급상황이었다. 막상 살이 쪄 보니 그녀는 이 몸에 너그러워질 수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모델 일을 시작하면서 알게 된 나리는 원영의 다이어트 메이트이다. 나리와 원영 모두 충분히 날씬했지만 식욕 감퇴와 억제를 위해 담배도 함께 배워 피우기 시작한 그녀들이었다. 원영이 학업과 여행, 어학 공부에 매진하던 사이 나리는 잘 나가는 피팅 모델로 성장하였다. 이제는 이름도 제법 알려진 모델이라 유명 쇼핑몰에서 서로 모시려고 하는 귀한 몸이 되어 있었다. 원영의 이야기를 듣던 나리는 알약 하나를 건넸다.

 

“나도 추천받아서 먹기 시작했는데 직빵이야. 식욕이 안 생겨.”

“진짜?”

“더 신기한 건, 에너지는 넘쳐서 촬영을 하루종일 해도 하나도 안 피곤해.”

“무슨 그런 약이 있어?”

“미국 FDA 알지?

“응. 미국 식품의약국.”

“미국이 이런 거 엄청 까다롭다며, 그런데 거기에서 승인받아 50년 동안 사용되고 있는 약 이래. 부작용도 거의 없고.”

"......"

"급찐급빠 알지? 나 5일 만에 3kg 빠졌어. 술도 마셨는데."







to be continued










[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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