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나가면 꼭 들르는 장소가 있다. 로컬마트, 시장, 편의점이다. 현지에서 보고 듣고 먹고 음미하는, 이국적이고 새로운 먹거리와의 만남은 해외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짜릿하고 반가운 경험 중 하나이다.
지난 10월, 마흔한 살 인생 처음으로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가고 싶은 여행지 리스트에 일본은 한 번도 포함된 적이 없었다. 남편은 그 사이 일본을 몇 번 다녀왔고, 일본 특유의 깔끔함과 예의바름, 식도락 경험에 좋은 인상을 받았다. 디즈니랜드와 쌍벽을 이루는 세계적인 테마 파크인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다녀온 뒤에는 놀이동산 마니아인 행복이와 사랑이를 꼭 데려가고 싶다고 했다. 마침 날씨도, 환율도 일본여행을 가기에 딱 좋은 시기라며 여러 번 물어왔다. 오사카에 간다면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방문하는 것이 여행의 주목적이 될 거기에 이번 여행은 부녀 지간에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이겠다 싶어, 셋이서(남편과 아이들만, 나를 제외하고) 다녀오기를 넌지시 추천해 보았다. 덧붙이자면, 나는 놀이동산, 테마파크, 만화 캐릭터, 그 외 귀엽고 앙증맞은 굿즈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나는 서울에서 글을 쓰고, 행복이와 사랑이는 아빠와 마음껏 굿즈를 사는. 그게 진정 서로를 위한 윈윈(win-win)일 수 있기에.) 결국, 둘째 사랑이의 강력한 반대로 나까지 합류한 완전체로 오사카행 비행기에 올랐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디저트 예찬론자로서 오사카는 아주 매력적인 여행지였다. 꼭 디저트가 아니더라도 재방문 의사가 생겼을만큼 일본에 대한 나의 관점을 아주 살짝 변환시켜준 도시이기도 했다.
도착 후, 호텔 앞 편의점부터 들려보았다.
빵, 푸딩, 과자, 젤리, 아이스크림 등 한국과 비슷한 듯 다른, 새로운 제품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고, 편의점 강자답게 어묵꼬치, 닭튀김, 삼각김밥, 과일 생크림 샌드위치, 타마고산도(일본식 부드러운 달걀말이 샌드위치) 및 가츠산도(돈가스 샌드위치) 등 식사가 될 만한 음식들도 아주 많았다.
우리는 나흘 내내 매일 적어도 한 번씩은 편의점에 들려 먹거리 구경과 쇼핑의 재미를 누렸다. 식사보다 편의점 먹거리 구매 비용이 더 나오기도 한 건 기분 탓이겠지.
성공한 아이스크림 vs 한 번 경험한 걸로 만족인 푸딩
왼쪽의 아이스크림은 재구매했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풍미의 치즈와 찐하고 고소한 우유 아이스크림으로 겉을 감싸고 있는 와플 같은 콘도 맛을 배가시켰다. 마지막 한 입까지 바삭한 식감이 유지되었다.
일본 편의점 디저트에 푸딩이 유명하데서 샀는데 뭐든 잘 먹는 둘째 사랑이도 한 입 먹고 남겨서 남은 건 내가 다 먹었다. 에그타르트 맛인데 조금 더 느끼하며 살짝 밋밋한 맛이라 한 번 경험한 것으로 만족한 제품이다.(희한하게 내가 고른 건 전부 맛있는데, 남편이 고른 건 이런 결말이 많다.)
왼쪽이 첫 날 편의점 싹쓸이 샷 vs 둘째날 부터는 노하우가 덧붙여져 실패가 줄었다.
왼쪽 사진의 맨 위에 있는 감자칩과 아래에 있는 팥 도리야끼와 초콜릿 비스킷도 재구매했다. 감자칩은 스윙칩과, 초콜릿 비스킷은 다이제스티브와 같은 맛이다. 거기에 편의점 PB(자체브랜드) 상품인지 가격도 매우 저렴했다.(과자류 천 원대)
오른쪽 사진의 샌드위치는 종류 별로는 다 맛있어서 그다음 날도 똑같이 구매했고 제일 유명한 생크림 과일 샌드위치는 다 판매돼서 못 산 적도 있었다. 가츠산도는 차가운 상태에서도 부드럽고 맛있었는데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으니 훨씬 맛있었다. 아래 줄의 참치마요 삼각김밥은 아이들이 정말 좋아했고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가는 날 아침에도 저 삼각김밥을 먹고 출발했다. 커피는 내 입에는 너무 진했고 남편한테는 딱이었다.
두 번, 세 번 재구매했던 과자들이다.
저 브랜드 과자를 네 종류 사보았는데 전부 다 맛있었다. 그중 고구마스틱 과자와 초콜릿 비스킷은 10봉지 정도 구매해서 한국에도 가져왔다. 가격은 100엔 정도로 아주 합리적이라 더 맛있게 느껴졌다.
관점, 시각, 각도, 시선, 태도, 견해, 관념... 나이가 들수록 바뀌기 쉽지 않은 것들이다.
어느덧 내가 마흔이 넘었다. 삼십이 오는 건 참 반가웠는데 마흔은 아니었다. 무엇을 해도 예전처럼 기쁘거나 즐겁지 않았고,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이 물처럼 절실했다. 그 시간도 역시 나답게 자기 계발 강의를 듣고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틈틈이 교류하며 보냈지만 부족했다. 채워지지가 않았다. 그렇게 몇 달을 방황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답지 않은 것을 해봐야겠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지금껏 고수해 온 익숙하고 편안한 것들로부터 속 시원하게 결별까지는 못하더라도.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해보지 못한 것, 안 해본 것을 시도하기로 했다.
일본 여행도 그중 하나다. 내가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 선호하지 않았던 것, 계획하지 않았던 것, 꿈꾸지 않았던 것.
오사카 편의점 먹거리 쇼핑을 쓰면서 말하기에는 거창하지만, 새로운 나를 발견하기에 딱 좋은 장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