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훈련 기구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스트레스를 만납니다.
일터에서, 관계 속에서, 일상의 예기치 못한 순간마다.
스트레스는 종종 고통스럽고, 피하고 싶은 대상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면,
그 스트레스는 오히려 우리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훈련 기구가 될 수 있습니다.
운동을 생각해 봅시다.
근육은 ‘부하’라는 외부 자극, 즉 스트레스를 받으며 자라납니다.
너무 가벼운 자극에는 변화가 없고,
적절한 무게와 긴장 속에서 비로소 근섬유는 찢어지고 회복되며 성장합니다.
마음도 똑같습니다.
고통스러운 감정, 갈등 상황, 비판의 말들...
이 모든 것은 마음의 훈련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심리학자 리처드 테데스키(Richard Tedeschi)와 로렌스 캘훈(Lawrence Calhoun)은
이러한 현상을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이라 불렀습니다.
고통을 겪은 사람들이 오히려 더 큰 내면의 성장과 인간 이해, 관계의 깊이를 얻는 현상입니다.
스트레스와 상처가 단지 상처로 끝나지 않고,
우리의 인식과 존재 방식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죠.
심리학의 인지적 재평가(Cognitive Reappraisal) 이론 또한 같은 맥락을 지닙니다.
스트레스를 단지 고통이 아니라 ‘성장 자극’으로 해석할 때,
뇌는 스트레스를 덜 위협적으로 받아들이고,
우리의 정서 반응과 행동 방식도 더 유연하고 회복탄력적으로 변합니다.
해석이 경험을 바꾼다는 것입니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말했습니다.
“당신을 죽이지 못한 것은 당신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이는 단순한 극복 의지를 넘어,
고통의 통합을 통한 존재의 심화를 말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스트레스를 통해 더 깊어지고, 더 넓어집니다.
우리는 흔히 “마음이 바다 같다”는 표현을 씁니다.
그 뜻은 단순히 착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넓고 깊으며, 작은 자극에 쉽게 흐려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작은 잉크 한 방울은 컵의 물을 쉽게 더럽힙니다.
그러나 같은 잉크를 바다에 떨어뜨리면,
그 바다는 흐려지지 않습니다.
그만큼의 크기와 여유, 포용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철학자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은 말합니다.
“삶은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피할 수 없다면,
그 의미를 스스로 재정의함으로써
우리는 피해자가 아닌 창조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생각합니다.
스트레스는 마음의 피트니스입니다.
누군가의 말, 감정의 소용돌이, 좌절감과 오해들…
그 모든 상황은
나의 정서적 지구력과 자기 인식의 근육을 키우는 장입니다.
마치 반복되는 푸시업과 스쿼트가 육체를 만들 듯,
반복되는 감정 훈련은 나를 더 깊은 인간으로 만듭니다.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은 긍정심리학에서 강조합니다.
“회복탄력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되는 것이다.”
우리가 겪는 스트레스의 순간들은
바로 그 훈련의 장이자,
의식적으로 회복탄력성과 자기 효능감을 키워가는 기회입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마음의 피트니스에 갑니다.
피할 수 없는 상황들을 마주하고,
그 안에서 나의 감정을 바라보고, 받아들이고, 정리합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더 넓어지고, 더 단단해집니다.
언젠가 누군가가 나에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당신, 마음이 참 깊고 넓네요. 마치 바다처럼.”
그때 나는 조용히 미소 지을 겁니다.
왜냐하면 나는 알고 있으니까요.
그 바다는 그냥 생긴 게 아니라,
매일의 스트레스를 마주한 훈련과 사유의 결과였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