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높이와 속도의 반작용이다.
낙하에서 생기는 충격의 크기는 높이에 비례한다.
속도를 가진 충돌에서 생기는 상처는 속력에 비례한다.
즉, 우리가 입은 상처는 결코 무의미하게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 상처는 어쩌면,
우리가 얼마나 높이 올라갔는지,
얼마나 빠르게 달려왔는지,
그 결과로 생긴 존재의 반작용일지 모른다.
우리는 상처를 피하고 싶어 한다.
고통을 실패의 징표로, 아픔을 부끄러움으로 여긴다.
그러나 뉴턴의 제3법칙처럼,
모든 작용에는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인 반작용이 있다.
내가 높이 도약할수록, 내가 강하게 달릴수록,
그 반대편에는 더 큰 충격이 존재한다.
그러니 지금의 상처는,
나의 게으름이나 무능의 결과가 아니라,
높이 오르려 했던 의지,
빠르게 살아내려 했던 노력의 그림자일 수 있다.
임상심리학에서는 삶의 고통을 회피가 아닌 수용의 대상으로 본다.
ACT(Acceptance and Commitment Therapy) 이론에 따르면,
고통은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감수해야 할 불편함이다.
즉, 내가 느끼는 상처의 크기는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을 추구했는가’와 정비례한다.
의미 없이 산 사람은 상처도 없다.
상처가 크다는 것은,
그만큼 가슴 깊이 원하는 어떤 삶이 있었다는 뜻이다.
“누구든 살아가는 이유를 가진 사람은,
거의 모든 고통을 견딜 수 있다.”
삶이 던지는 충격은
방향 없는 고통이 아니라
의미 있는 시련일 수 있다.
그 상처가 크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의미 있는
무언가를 향해 살았다는
증거일 수 있다.
그러니 오늘 당신이 입은 상처가 크다면,
그만큼 어제의 당신이 용기 있었고,
뜨겁게 살아내고자 애썼다는 뜻이다.
그 상처는 패배의 낙인이 아닌,
시도하고 살아냈던 흔적이다.
당신은 쓰러졌지만,
그건 달려왔다는 반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