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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쌤 Sep 06. 2023

청년들은 왜 ROTC를 기피할까?

개인 중심 사회에서 국방의 의무

 학기 초가 되면 약간의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업무가 생긴다. 시간표를 짜는 일이다. 그게 무슨 스트레스냐 반문하겠지만 정말이지 상상 이상으로 골머리를 앓는 경우가 다반사다.

 시간표에 바늘구멍 하나 들어갈 틈 없이 철저하게 짜 맞추었는데 난데없이 변경 요청 공문이 들어온다. 그 원인 중 하나는 '학군사관후보생' 명단이다. 그렇다. 다들 아시겠지만 업계 용어로 이른바 '알티'라고도 한다. 정확히는 ROTC(Reserve Officer Training Corps)이며 대학에서 장교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이다.


 학생이 ROTC 후보생으로 최종 선발이 되면 그 학생에 맞게 시간표를 조정해야 한다. 웅석을 부리자는 게 아니다. 앞서 언급했지만 이미 물 한 방울 셀 틈 없이 빽빽하게 시간표를 편성했다. 거기에 선발된 학생의 전공 수업과 군사학 수업이 겹치지 않게 조정해야 하는데 이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그럼에도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자 ROTC에 지원하는 학생을 보면 나의 사소한 번거로움은 씨익 웃고 넘길 정도로 가상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그런 영광의 모습도 최근에는 눈에 띄게 줄고 있다. 해마다 줄던 ROTC 후보생이 올해 한 명도 없는 상황이다. 이토록 저조한 현상은 비단 우리 학교의 문제가 아니었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ROTC 지원자 수가 최저를 기록해 육군 창설 이래 가장 적었으며 추가 모집에도 모집 인원을 채우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는 병사의 복무 기간이 18개월로 짧아진 것과 대비해 장교의 복무 기간이 길고 병사의 월급이 격상해 최대 100만 원까지 받게 된 점, 장교의 근무 조건이나 처우가 떨어져 관심이 줄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


 나의 작은 외삼촌의 손에도 ROTC 임관 반지가 끼워져 있다. 가족들이 회고하길 작은 외삼촌은 어릴 적부터 성실하고 공부를 잘하셨다고 했다. 때문에 고등학교 시절에는 담임 선생님이 가정 방문을 세 번이나 하시며 외할아버지와 할머니께 "야는 공부시키소."라는 당부를 전하곤 했다. 그런데 불행한 사실은 당시 작은 외삼촌 못지않게 공부를 잘하셨던 큰 외삼촌이 이미 영국의 명문 대학교로 유학을 떠나 있었다. 큰 외삼촌은 영국에서 박사 과정까지 무난히 밟으며 9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고 현재 교육계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당시 경제 사정은 궁핍하고 살림이 팍팍하던 시절이었다. 간신히 입에 풀칠이나 하던 집안에서 차남에게 배정된 대학 등록금이 있을 리 만무했다. 때문에 작은 외삼촌은 서울대를 외면한 채 눈물을 머금고 지역거점국립대학교에 진학했다.


 그 시절 외삼촌의 사진을 보면 눈에 독기가 뿜어져 나온다. 외삼촌은 등록금을 비롯한 금전적 지원을 일절 받지 않고 거부했다. 다만 ROTC에 자원하여 4년 전액 장학금 혜택을 받았다. 더불어 군 복무 당시 1원도 쓰지 않고 모아 꽤 큰돈을 쥐고 사회에 나와 집을 사고 결혼도 했다. 전해 듣는 이야기만으로 빛났다. 지금은 작은 외삼촌도 교육계에 헌신하고 있다. 한 때는 성적 우수자의 전유물이었던 제도가 지금은 모두가 기피하는 현상에 씁쓸한 맛을 느낀다.


 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내가 느끼는 것은 병역문제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가치관의 변화이다. 시대마다 가치와 중요성은 당연히 변화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겪는 이런 변화는 단순한 시대적 흐름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과거 ROTC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며 국가에 대한 헌신과 동시에 전역하면 한몫 단단히 모아 올 수 있다는 미래에 대한 투자이기도 했다. 당시의 사회적 배경과 환경 속에서 그런 선택은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는 또 다른 경로와 기회가 넘쳐나고 있다. 국가와 개인의 관계도 예전과는 크게 달라졌다. 나조차 변했다. 어린 시절에 태극기에 대한 경례를 하면 뭔가 벅차는 감정을 느끼곤 했지만, 최근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사회는 더욱 개인화되고 있다. 개인의 권리와 자유,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다. 개인의 선택에 대한 존중도 크다. 이러한 변화 속에 ROTC와 같은 제도도 재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국방의 가치를 만들어 나가야 할 시점이다.


 ROTC가 가진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김질하게 된다. 후보생들은 나라를 위해 그리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거룩한 선택을 했다. 우리는 그들의 선택과 헌신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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