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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헷 Jan 10. 2021

몸짓치유; 희안한 경험


 몸짓치유가 뭘까요. 프로그램 표를 보면서도 큰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소개받은 몸짓치유 선생님의 인상은 환갑은 지나셨을 나이에 짧은 몸뚱아리. 맺음이 쫀쫀한 경상도 어투가 경쾌한 인상을 주었지만 딱 그 정도였습니다. 이 선생님 덕분에 30년 인생에 잊지못할 희안한 경험을 할거라곤 예상치 못했죠.

 

 "우리가 일평생 하는 동작이라는 게 다 고만고만 비슷비슷합니다. 밥을 먹나, 설겆이를 하나, 버스를 타나... 항상 예측가능한, 관절의 쓰임이 일정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근데 우리 몸이 그렇게만 움직이도록 태어났을까요. 아이들을 봅시다. 떼를 쓰는 아이, 자기들끼리 까부리며(?) 노는 아이들, 아주 기괴한 몸동작을 합니다. 누구의 시선도 신경쓰지 않는 동작, 몸짓을 합니다. 우리가 다 그랬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우리의 동작을 다른 사람의 시선에 따라 제한하죠."


 마지막 문장을 말씀하시며 선생님은 손날로 팔과 다리를 잘라내는 제스처를 하셨습니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두팔 두다리가 멀쩡하게 붙어있지만 이게 진짜 내 팔다리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꽁꽁 묶어둔 팔다리는 절단당한것이나 마찬가지일테죠.


 "어느새 우리는 혼자 있을때조차 자유로운 몸동작을 취하지 않습니다. 이 시간에는 누구의 시선도 신경쓰지 말고 내 몸의 움직임에만 집중합니다. 노래를 틀겠지만 박자에 맞출 필요도 없습니다. 관절이 움직이면 이렇게, 마음이 가는대로."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생님의 몸짓은 우습고 망측했습니다. 엉덩이는 씰룩씰룩, 손가락은 왜 그렇게 꼬으신건가요. 나이지긋하신 아주머니들은 참지못하고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선생님도 바라던 바였을 겁니다. 선보이신 동작의 우스꽝스러움은 초보자가 아무리 용을 쓴대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라 우리의 자기검열과 봉인을 해제하는데 톡톡한 효과를 발휘했을 겁니다.


 한번도 본적없는 기괴한 동작에 박자감도 상실한 몸짓이었지만 어떤지 모든게 선생님의 몸과 찰떡같이 잘어울렸습니다. '저런게 바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순전한 몸짓이라는 거구나.'


 "설명보다는 해보는게 중요하겠죠. 자, 지금부터 우리는 바람이 됩니다."


"뮤직 큐-."


 바람이라고라. 제주에서 지겹게 맞던 바람을 떠올렸습니다. 저 먼 바다 끝에서 불어오는 바람, 무서운 속도로 달려와서는 정작 코앞에선 양 볼을 부드럽게 감싸는 손짓으로 변하곤 했던, 그 바람에 나를 맡겨보았습니다.  




바람에 몸을 맡기고 나는 풀잎이 되었다.

풀잎이 심심해지면 갈대가 되었다가

갈대가 지면 사시나무가 되었다가

가로수 아래 뒹구는 낙엽이 되었다가.


이내 나는 바람이 되었다.

한만하게,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바람이 되어

갈대를 쓰다듬고

산줄기를 넘실넘실

바다 위를 미끄러져나갔다.


새가 될 필요도 없었다.

나는 창공을 날아다니는

자유 그 자체였다.

(2021.01.09 일기에서)



 

 온 몸의 근육과 관절을 오로지 내 마음에만 맞춰 움직인다는 게 이토록 자유로운 느낌인지 몰랐습니다. 어쩐지 눈물이 났어요. 기쁘고 행복할 때 나오는 그런 눈물이요. 이 뜬금없는 눈물이 저만의 사정은 아니었나 봅니다. 훌쩍훌쩍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오더라고요. 그 울음의 의미를 저는 알 것만 같았습니다.


 마음을 몸으로 옮기는 몸짓치유 작업은 30여 분간 지속됐습니다. 노래와 선생님의 리드에 따라 나는 바람도 되었다가, 굴러 떨어지는 바위도 되었다가, 지구에 쏟아지는 하얀 빛이 되기도 했습니다. 덩실덩실 어깨춤이 절로 나오는, 완치판정을 받은 미래에도 다녀왔지요.


 모든 움직임을 마치고 명상을 위해 바닥에 눕는데, 제 날숨에서 휘발유 냄새 비슷한 것이 느껴졌습니다. 숨이 가쁜것도 아닌데 물주전자에서 김이 끓어오르는 것처럼 쉬익쉬익 소리를 내며 숨이 내몰아졌죠. 몸 안의 탁기와 사기가 들숨에 희석되어 날숨에 녹아나가는 느낌이었습니다. 나올것이 아주 많아보였어요. 한참 숨을 쉬고 나니 정말 시-원했습니다.


 입에 연필을 물고만 있어도(웃을때처럼 입꼬리가 올라감) 암세포을 잡아먹는 NK세포 수치가 올라간다고 합니다. 신체의 변화를 신경계(뇌)가 인지하고, 신경계는 면역계를 움직이는 거지요. 몸짓치유 시간에 저는 30년만에 처음으로 몸과 마음, 정신이 동시에 자유로워지는 경험을 했어요. 이건 제 신경계, 면역계는 물론 에너지장에도 작지 않은 변화를 일으켰을거에요.


 이 느낌, 이 기분을 기억하고 싶어 글로 적어보지만 말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네요. 몸짓치유 시간이 지나고도 혼자있을 때면 종종 몸의 일부를 마음이 가는대로 움직여봅니다. 이 글을 읽으며 어딘가 좀이 쑤시는 듯한 기분에 손가락을 꼼지락거려 보셨다면, 이 글의 목적 반은 달성된 것 같네요.


 평화로운 주말 아침입니다. 오늘은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마음가는대로 흔들흔들, 몸에 자유를 허락해주세요. 저는 이만 밥을 먹으러 가야겠어요.




 ⓒ커버이미지 goodtherap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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