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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헷 Jan 24. 2021

새 생명은 어디에서도 반드시.

 


 경북 산골에서의 마지막 밤입니다.

 

 나가서도 잘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꾸준히 실천할 수 있을까,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얼까, 그런 생각들로 잠이 오질 않습니다. 풍욕을 하며 닫아두었던 커튼을 열었습니다. 깊은 숲 속의 시커먼 밤하늘은 반쪽짜리 달로도 휘영청 환합니다. 오늘도 오리온자리가 반갑게 걸려있네요. 잠시 눈을 감고 이곳에서 만난 잊지 못할 순간들을 떠올려 봅니다.






 추운 날씨로 산책 금지령(?)이 풀린 지 하루인가 이틀째 되는 날이었을 겁니다. 국선도 사범님과 함께 명상의 숲으로 다 같이 산책을 떠났습니다. 명상의 숲은 제가 처음 어싱을 시도했던 길이기도 합니다. 해가 잘 드는 초입길을 지나 가파른 능선을 넘으면 평탄한 지대가 나오고, 거기서 가쁜 숨을 고르며 조금 더 걸어 들어가면 그곳에 명상의 숲이 있습니다.


 명상의 숲은 사방이 나무와 으로 둘러싸인 분지 같은 곳이어서 작은 숲 속 동물들이 부스럭 대는 소리 이외에는 고요 그 자체입니다. 과연 '명상의 숲'이라는 이름과 잘 어울립니다.


 저희를 이곳으로 안내해주신 사범님은 꼭 보여줄 게 있다면서 명상의 숲 한쪽 귀퉁이를 가르키셨습니다. 거기엔 큼지막한 바위 하나가 들어앉아 있었죠.



 "보이시나요?"


보이긴 뭐가... 하면서 게슴츠레 뜬 두 눈 사이로 바위 위, 꼿꼿하게 서있는 그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작은 나무 한 그루.


 하늘을 받치며 서있는 주변의 나무들과 비교하면 빈약한 모양새지만, 마치 그곳이 자기 터라는 듯 바위 중앙에 당당하게 서있는 나무 한 그루 말입니다.



 키는 저보다 작아보였지만 몇개월 전에 샀던 5년생 나무 묘목이 50센티도 안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바위 위 라는 척박한 환경에서 이만큼 자라기까지는 짧아도 10년은 넘는 시간이 필요했을 겁니다. 그 세월 동안 따듯한 햇볕과 촉촉한 봄비만 있었을까요. 견딜 수 없을 만큼 시린  바람과 사나운 돌풍이 분 날이 더 많았겠지요. 그 모든 시절을 지나고 이 딱딱한 바위 위에서 새 생명을 피워낸 모습이 경이로울 뿐이었습니다.


 두개천골요법 강의에서 이도규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강한 자극(ex항암)은 반드시 강한 저항(ex부작용)을 동반하게 습니다. 저희가 다루는 이런 치료방법들은 저항이 없는 대신 효과가 미미하고 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작은 노력이 쌓이고 쌓이면 얼마나 파워풀한 효과를 내는지, 사람들은 쉽게 간과합니다. 느리고 자극이 없는 것은 누적되었을 때 반드시 큰 효과를 불러옵니다."

 

 제가 자연치유를 한다면서 취했던 방법들은 아주 천천히 제 몸을 변화시키는 치료법들이었습니다. 그런 줄을 모르고 저는 단숨에, 한방에 무언가 변하기를 바라고 재촉해왔던 것이죠.  말씀을 듣고서야, 그동안 제가 자연치유를 하면서 저지른 가장 무지한 실수는 모든 방법에 너무 성급히 '이래 가지고 되겠어?'라는 조급한 마음을 먹었던 거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느리고 저항이 없는 것들이 두각을 드러내려면 그만큼의 누적이 필요합니다. 기다려줘야 합니다. 하지만 멈추지만 않는다면, 꾸준히만 한다면, 그 모든 노력은 선생님 말씀처럼 반드시 놀랄만한 결과를 가져올 겁니다. 지금 제 눈 앞에서 서있는 이 나무처럼요.


 요놈은 벚나무인데, 봄이면 혼자 이 외딴곳에서 벚꽃도 피운다고요. 신기한 것은 이 주변엔 벚나무가 한 그루도 없다고 합니다. 바람에 날려온 것인지 동물이 물어온 것인지 몰라도, 먼길 날아와 바위 위에 뿌리내린 이 벚나무는 하필 이곳 경주에서, 하필 제 눈 앞에, 하필 꾸준함의 힘을 깨달은 다음날 나타나 그런 이야기를 해주려는 것 같았습니다.


 새 생명은 어디에서도 반드시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을요. 어디에서도, 반드시.




 이 밤에도 벚나무는 깜깜한 하늘을 이불 삼고 바위를 벗 삼아 봄에 피울 꽃망울을 준비하고 있겠지요. 내일 날이 밝으면 집에 가기 전에 꼭 명상의 숲에 들러야겠습니다. 저도 전해주고 싶은 무언의 메시지가 있어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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