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데헷 Jan 21. 2021

두근두근, 집에 갈 준비



  방 이곳저곳에 빨래를 넣어놓은걸 보시고 청소하는 이모님이 천연 가습기 만드는 법을 알려주셨어요. "산에 솔방울을예, 깨끗하게 씻어 통에 넣어가, 머리맡에 두고 자면 그게 천연가습기라예. 냄새도 을매나 좋은지 몰라."


올커니. 산책하는 길에 솔방울을 몇 개 주워왔습니다. 작은 소나무 밑에서 주은 거라 호두알만 한 게 퍽 귀엽습니다.


 

 소다를 넣고 한소끔 끓여주면 좋다는데 저는 소다물에 한번 담갔다가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헹구고 나서 따듯한 물에 30분 정도 담가 두었습니다.


잠시 후 가보니 솔방울이 물을 머금어 길쭉해졌네요.



 역변한 솔방울을 수건 위에 가지런히 넣어놓고 오늘은 가습기 없이 자보려고 합니다. 손끝에 벤 솔 냄새가 너무나도 싱그러워 몇 번이고 킁킁대다 잠에 들었습니다.



 

 이제 하산할 날도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원래는 한 달을 더 있을 예정이었는데 사정이 생겨 예정보다 일찍 내려가게 되었어요. 먼 길 떠나온 김에 몸에 집중하는 시간을 좀 더 갖고 싶었는데, 퍽이나 아쉬웠지요. 느긋하게 생각하던 하산 준비를 서둘러야 했습니다.


 하산 준비란 이곳에서 배운 생활 원칙들을 집에서도 적용할 수 있도록 체계화하는 것입니다. 먼저 다이어리를 꺼내 반드시 지켜야 할 수칙들을 적어 내려 갑니다. 


1. 일어나자마자 음양탕 마시기

2. 명상음악 틀고 아침 명상 하기

3. 아침 풍욕 하기

4....


 아침이면 명상음악이 흘러나오고 때가 되면 밥이 나오고 해지기 전에 산책을 마쳐야 하는 이곳과 달리, 집에 가면 많은 것을 스스로 해야 할 거예요. 또 집에서는 그곳만의 루턴이 있기 문에 이곳에서 배운 것을 실천하려면 시행착오와 적응의 시간도 필요할 겁니다. 그 에너지와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한 사전작업을 하려는 거지요.


 일단 이곳 식당에서 쓰는 기본적인 양념들과 식자재를 잔뜩 집으로 주문해놨습니다. 엄마에게 이젠 부엌에서 은퇴하시라고 으름장도 놔두었지요. 못내 미더우신 눈치지만 제 머릿속에선 직접 만들어보고 싶은 음식들이 오르락내리락 회전목마를 탑니다.


 보고 싶은 책들도 엄선하고 엄선해서 주문해놨어요. 한 가지는 채식에 관한 책, 또 한 가지는 산속에 짓는 오두막에 관한 책이에요. 크리스마스보다 기다려지는, '저의 내일'을 위한 선물입니다.


 다른 머리 한편은 지금 책방으로 쓰고 있는 방을 명상을 위한 공간으로 바꿀 생각에 분주합니다. 벼르던 목공 수업도 올해는 꼭 받아보려 합니다. 나무를 다루고 나무에 쓰임새를 부여하는 작업은 상상만 해도 저 깊은 곳에서 아드레날린이 솟아오릅니다.


 그런데 선생님, 왜 이렇게 신이 나셨어요? 


°-°...


 그러게 말입니다. 속세가 이리도 좋았던가요. 이곳이 천국 같다고 했던 게 불과 며칠 전인데 이렇게 신이 나면 곤란한데요. 흘러나오는 어깨춤을 감출 방법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산속에 들어가 살 깜냥은 아닌가 봅니다. 


 왜 이렇게 신이 나는지 가만히 들여다보니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습니다. 문지방만 넘으면 웃음소리가 터지는 엄마, 내가 본가에 오고부터 퇴근하면 빨리 집에 들어오고 싶어 졌다는 아빠, 만날 날만 기다리고 있다는 언니, 동생, 친구들. 그 사람들과 함께 할 때 받았던 행복한 기운이 떠올라 만날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겁니다. 저는  유난히도 사람한테 에너지를 얻고 그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란 걸 다시 한번 깨우칩니다.


 기대되는 게 또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내가 주도적으로 만들어나갈 치유 생활입니다. 이 곳에 오기 전 1년 간의 시간은 자연치유에 대한 의구심과 회의, (나에 대한) 좌절과 실망으로 얼룩진 시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하지만 이곳에서 자연치유에 대한 확신과 방법을 넘치도록 수혈받았습니다. 이 확고한 '앎'과 '실천'을 통해 치유를 위한 여정을 이제 스스로의 힘으로, 이 두 다리로 뚜벅뚜벅 걸어보고 싶은 겁니다.


 내가 내 몸을 믿고, 내 몸에 귀를 기울여 주고, 내 몸에 가장 좋은 것들을 해줄 때, 내 몸이 어떤 놀라운 변화를 보여줄지 너무나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생각만큼 쉬운 여정은 아니겠지만 어려움보다는 그 여정이 선물할 찬란한 순간들에 초점을 맞추려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어젯밤 널어둔 솔방울들이 다시 둥글둥글해졌네요. 어디로 굴러갈지 모르는 모양새가 신난 가슴을 감출 길 없는 제 마음 같아요.



보고 싶습니다. 빨리 날아갈게요-!


커버 이미지

carolinafleissner.weebly.com

이전 07화 죽음을 생각하는 아름다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