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여섯 번째 지난주
따로 있지만, 같이 있다. 멀어졌으나, 분리할 수 없다. 우리를 매개하는 사태는 굳이 이편과 저편을 한 공간에 예속시키지 않아도, 그 작동에는 지장이 없는 모양이다. 그리하여 떨어져 있으나 동시간에 발현되는 지상의 온갖 지경을 전하기 위한 기법은 그 발전이 불가피했다. 특히 영상물이 우위를 점하는 시절에 이르자, 공간을 넘나드는 장면들을 연속적으로 배치함으로써 그 관계성을 보여주고자 했다. 영화는 이를 ‘교차편집(Cross cutting / montage alterné)’이라 이름한다. ‘교차편집’은 두 가지 이상의 사건을 서로 엇갈리게 편집하는 방법으로, 서로 다른 장소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일을 교대로 보여줄 때 사용된다. 관객에게 사건의 동시성을 느끼게 하면서, 대비를 통한 긴장감의 고조에 기여하는 기법으로 알려져 있다. ¹ 그런데 <지난주>, 우리를 둘러싼 무거운 현실이 마치 영화 속 교차편집처럼 전해져 왔다. 뉴스 화면은 서초동과 목포신항을 오갔다. 필시 영화적 시절이었다.
올라왔다. 그 배가 올라왔다. 가장 아래에 있어야 할 배의 어떤 부분이 가장 높이 치솟은 채, 그마저도 우리의 눈에서 사라져 간 이후로 줄곧 어둠이었던 바다에서, 드디어 희미한 형상이 떠올랐다. 울컥했다. 울컥하는 것은 아마도 감정의 작용일진데, 최초의 감응은 그저 꿈틀거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내 생명과 이어진 육체 속의 사고체계는 그 배의 귀환을 심리적 부채의 탕감으로 전환하고자 했다. 떠올랐으니 이제 시름을 놓자는 심보였다. 반성이 필요했다. 돌이켜 보니, 나는 생각할 수 있을 때만, 생각했다. 방관의 공범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발 더 나갈 수 있었던 그 모든 시도에서 딱 할 만치만 했다. 평균치와의 비교는 무의미하다. 슬픈 만치 슬퍼함은 제 감정에 충실한 것이었지, 정녕 그 배가 떠오름에는 어떤 기여도 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로 인해 하루라도 더 인양이 빨라지지는 않았을지라도, 그리할 수 있는 사람이나 사람들을 독려하거나 격려함에 조금은 더 기여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거나, 않았다. 모든 전개를 뒤로하고, 무엇보다 가장 먼저, 반성한다.
그리고 감사한다. 칠흑같이 어둡다는 그 바닷속을 나는 짐작조차 못 하겠다. 욕조에 빠진 휴대폰을 건지는 일과는 다를 것이다. 평안히 작업에 매진할만치 바다가 잔잔한 날도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더 빨리 보고 싶어 굴뚝같이 쌓아 올린 마음들이 있었지만, 그리고 그 마음을 채워주지 않는 현실을 의심하고 때로는 미워하였지만, 그럼에도 이제라도 세월호가 올라오고 무사히 항구에 다다랐음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우선 몇몇 이름자가 스친다. 뒷일을 부탁한다던 故김관홍 잠수사님, 언제나 유가족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박주민 의원님, - 온갖 논란은 잠시 젖혀두고 - 바닷속의 거대한 배를 올리기 위해 분투한 모든 작업자분들, 현장의 소식에 귀 기울여준 몇몇 언론들, 자원봉사에 참여한 시민 여러분, 돌아오는 세월호를 가슴으로 맞아주는 목포시민 여러분, 모진 시간을 견뎌준 유가족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공교롭다. 까마귀는 자리를 떴고, 배는 떨어졌다. 까마귀는 말이 없다. 마침 그자가 물러나자 세월호가 떠오른다. 역시 그자도 말이 없다. 사고가 발생했던 당시 존재하지 않던 컨트롤타워가, 침묵을 강요하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몇몇 정황들은 의혹된 마음을 부추긴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들이 의도적으로 세월호를 방치했다는 아무런 고급 정보가 없다. 의심은 거두기로 한다. 다만 가장 아픈 지점은 쏟아내어야겠다. 마치 그자가 이 배를 누르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 이 거대한 착시현상 - 이라고 믿고 싶다. - 에도 납득할만한 답변이 없음에 관함이다. 하기야 같지도 않던 변명이나 늘어놓던 자는 옥살이를 하게 되었으니, 이제는 법정이 아니고서는 들을 기회도 없다. 그러고 보면 사안의 주요 지점마다, 그자의 말도 안 되는 궤변이나 침묵이 있었다. 결국, 그자를 향한 모든 질문은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왔다. 벽 앞에 선 것과 같은 절망을 그자는 참 쉽게도 전해왔다. 그것이 이 비극의 가장 큰 고통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비극이 있다.
조직은 분위기로 돌아간다. 직접적 지시와 이행 이외에도, 소위 ‘눈칫밥’으로 짱구를 굴려 ‘일이 되게 하는’ 그리하여 ‘말이 안 나오게’ 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아닌가? 선수들끼리 이러긴가? 하지만 나는 ‘알아서 처신’한 아래의 존재들을 너무 나무라고 싶지는 않다. 밥줄과 식솔들 앞에 올곧은 신념의 자리를 내어주어야 하는, 이른바 악의 평범성 속에 존재 가능할 내 모습이 떠올라서임을 부인하지 않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같은 생리를 알고 교묘히 이용한 자들을 비난의 화살이 향해야 할 과녁의 정중앙에 두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공식적 서류가 아닌 노려봄으로, 어깨를 툭툭 치며 미소를 흘리는 것으로, 그렇게 일상을 지배하는 강요의 분위기 속에서 보고서 하나, 대응 방안 하나가 모두 윗사람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는 방향으로 쓰였을 것에 더 큰 혐의를 부여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맨 위에 있던 자가 세월호를 누르고 있었다 함은, 직접 은폐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고급 정보라는 것은 필요치 않을지도 모른다. 그저 알아서 그 배를 누르고 있으라며, 무언의 겁박을 했다는 것이다. 밥줄을 쥐고서……. 이 비열함과 악랄함에 분노하는 것이다!
공교로움은 정교하게 짜인 계획만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더는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 때, 어떤 숨통이 트였을 때, 그리하여 엉켜있던 것을 푸는 속도를 조직의 평균치 수준으로 끌어올려도 될 때도 일어날 수 있음이다. 그래도 될 때는 그렇게 하니까……. 그렇게 이 공교로움을 설명하고자 한다. 지금으로써는 이 정도가 최선이다. 물론 더 이상의 진실을 나는 원한다. 간절히 원한다.
욕심일까? 앞으로 다시는 이 같은 비극이 없고자 하는 바람 말이다. 아닐 것이다. 아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질문의 방향을 범죄자와 그 일군으로만 향해서는 안 된다. 그리하여 나는 방향을 제도 정치권으로 돌려본다. 이 역시 전제로 해야 할 바는 그간 정치권이 세월호 사태의 진실을 규명하려는 노력이나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다거나,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고 단언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실지 노고를 아는 바도 있고, 놓쳐서 모르는 것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능한 질문만을 하고자 한다.
만약, 이화여대 학생들이 부조리에도 침묵했다면? 언론에 의해 태블릿 PC가 발견되지 않았다면? 낌새를 눈치챈 범죄 세력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면? 그리하여 그저 다소 낮은 지지율의 수준으로 정권이 무사히 임기를 마감하고, 정권교체의 동력마저 희미했다면? 다음 그 어떤 보수 정권의 후보도 그자에 비해 못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니, 정권이 유지된 채 또 그렇게 시간이 지났더라면? 그 과정에서 아예 촛불이 없었더라면? 그랬다면, 세월호는 어찌 되었을까?
누구에게 잘잘못을 캐묻자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이 영화와 같은 극적인 전개가 일어나지 않았을 때, 무엇을 할 수 있었고, 무엇을 할 계획이었는지 듣고 싶다는 것이다. 특히 앞다투어 무려 대통령씩이나 되겠다는 후보님들 모두에게 묻고 싶다. 아이들이 스스로 날아올랐다는 문학적 서사 말고, 정치인으로서 어떤 계획을 지니고 있었는지 알고 싶다. 설령 구체적 방안이 없었더라면, 부족했다고, 미안했다고, 혹은 고마웠다는 마음의 소리라도 듣고 싶다. 그런데 나는 아직 촛불 앞에 부끄러웠다는 정치인을 보지 못했다. 모든 토론을, 모든 기사를 챙겨보지 못한 내 게으름 탓이기 만을 바란다.
이게 마지막이 아니고, 이제 세월호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 미수습자 가족 허다운 양 아버지 인터뷰 중
그렇다. 세월호는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 당장 해야 할 일이 첩첩산중이다. 아직 배 위에 있는 세월호를 온전히 뭍으로 옮기는 일로부터, 모든 미수습자를 수습하고,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하며, 관련 책임자에 대한 처벌도 다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궁극적인 차원에서 국가의 재난대비 및 구호의 시스템을 정비하고, 안전한 사회를 건설하는 일까지 소명으로 이어진다. 이렇듯, 너무나도 막중하고 거대한 숙제들이 우리 앞에 놓여있음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져본다. 우리가 일련의 과제를 능히 수행하고 더 나은 사회를 이룬다면, 도리어 그러할수록, 세월호 희생자의 덕분이라는 사실은 더 자명해진다. 그렇다면 그분들에게 더 미안하고, 그렇기에 눈물로서 더 고마워해야 하는 지경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럴 수 있을까? 우리가 언제까지 세월호를 기억할 수 있을까? 더 나은 사회가 그분들이 겪은 비극으로부터 기인했다는 복잡한 감정이나마 언제까지나 안고 살아갈 수 있을까? 잊지 않을 수 있을까?
다시 반성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기억할 것이다. 세월호는 이제 시작이다.
참고
¹
- 경북대학교 불문학과 이경의 교수 홈페이지, “프랑스 영화의 이해” 게시판 중 “ 영화 기법에 관한 용어 : Langage cinématographique”
- moliere.pe.kr/page/cours.php?page=05
이미지 출처
커버 이미지
- 연합뉴스, 사진공동취재단, 2017년 3월 31일 자, “세월호 맞는 가족들”
- yonhapnews.co.kr/photos/1990000000.html?cid=PYH20170331371700013&from=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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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TBC 뉴스룸, 손석희 앵커, 2016년 12월 9일 자, 앵커 브리핑 “또다시…"뒷일을 부탁합니다"” 중 화면 캡처
- 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375191&pDate=2016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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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털 사이트 “다음” 모바일용 화면 캡처, 2017년 3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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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TBC 뉴스룸, 이지은 기자, 2017년 3월 23일 자, “처참한 모습에 또다시 절규…"선체와 함께 올라와 주길""” 중 화면 캡처
- 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442679&pDate=2017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