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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온뒤하늘 May 30. 2016

가족

세상의 무게를 견디는 힘

누군가 내게 나의 가장 큰 장점이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나는 주저 없이 나의 가족이라 대답한다. 나의 부모님과 같은 분들이 나의 부모님이라는 것, 나의 형과 같은 사람이 나의 형이라는 것은 내가 가진 어떤 것보다도 나를 빛나게, 또 강하게 만들어준다. 아마 우리 부모님이나 형을 만나 본 사람이라면 이게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프랑스에서 돌아 온 초등학교 4학년 즈음, 부모님은 처음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셨다. IMF의 풍파 속에 힘겨운 나날들을 지나는 가운데 교회를 찾으신 듯하다 - 아버지는 이와 같은 사람들을 IMF 세대라 부르신다. 그렇게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신 부모님이 어느 날 가정에 대한 사역을 하시는 어떤 장로님의 설교를 듣고 오셨다. 설교를 통해 깨달은 게 많으셨던 아버지는 나와 형을 세워두고는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사과하셨다. 너희를 인격적으로 대하지 못하고, 사람 취급도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사과하시며, 앞으로 다시는 무언가를 강요하거나, 매를 들거나, 심지어 소리도 지르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30살이 된 지금까지 그 약속을 단 한번도 어기신 적이 없다.


그 날 이후, 나의 삶은 누군가는 방임, 혹은 방치라고 이야기할지 모를만큼 자유로워졌다. 중학교 3학년, 프랑스 유학생 시절 방학을 맞아 한국에 들어올 때면 매일 새벽까지 게임을 하거나 밖에 나가 놀다가 새벽 3, 4시에 들어오기 일쑤였고, 새벽에 귀가하는 내가 술에 취해 있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부모님은 그런 나에게 소리 한번 지르지 않으셨다. 그저 나의 건강을 걱정하시며 콩나물국을 끓여주시던 어머니와 내가 어질러 놓은 방을 치우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볼 뿐이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부모님은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공부하는 모습을 단 한번도 보신 적이 없었고, 내가 대학에 아예 들어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공항에 나를 내려주고 돌아오실 때면 눈물흘리며 기도하셨다고 한다. 우리 아이가 대학에 가지 못하더라도 지금처럼 자랑스러워하고 사랑하자고.


하지만 부모님의 나를 향한 인격적인 존중, 그것은 단순한 자유함 이상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 속에서도 내가 무너질 때면 돌아가 기댈 곳이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내 잘못으로 모두가 날 손가락질 할 때, 혹은 나의 실패로 주저 앉아 나아갈 수 없을 때에도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고 나를 지지해 줄 누군가가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자녀들을 향한 방목형 교육을 지향하는 많은 부모님들이 있지만, 대부분이 실수하시는 것은 공부하라 말을 안할 뿐 뒤에서 얘가 공부를 하는지 안하는지 지켜보는 눈빛은 여전하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그 눈빛과 속에 숨겨진 마음들을 고스란히 다 느끼게 된다. 나 역시 부모님의 속마음을 다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공부를 하든, 성적이 나오든, 혹 그렇지 않든 나를 그저 있는 그대로, 조건 없이 온전히 사랑해주시는 부모님의 마음을 중, 고등학교 유학생 시절, 아니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느끼곤 한다.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나의 청소년기, 거칠 것 없이 my way를 달리던, 때로는 고집스런 나의 중, 고등학교 시절. 자유로운 영혼과 자유로운 생각, 남과 다른 가치관과 확신 넘치는 자아를 가질 수 있던 것, 그리고 누구의 간섭도 통제도 받지 않는 프랑스 - 중, 고등학교 문화부터 마약과 섹스가 난무하는 - 에서의 자유로운 삶 속에서도 엇나가거나 탈선하지 않고 성공적인 유학생활을 할 수 있었던 건 그 중심에 있던 부모님의 지지와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라 확신한다.



- 자서전/에세이 <그냥 살아, 그거면 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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