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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온뒤하늘 Sep 14. 2016

변화 없이, 변함없이

사람은 변한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어쩔 수 없이 닥쳐오는 사람의 숙명이다. 키가 자라고 손톱이 자라는 그런 변화도 물론 있겠지만, 사람의 마음과 감정, 가치관과 방향성, 그 모든 것은 시간과 함께 변해간다. 그것은 나이를 먹고 더 많은 것을 경험하며 자연스레 겪게 되는 성장일 수도, 인생의 풍파 속에 무릎 꿇어야 했던 타협일 수도 있다. 혹 때로는 스스로가 높이 쌓은 마음의 벽 속에 변질돼버린 어떤 하나의 감정의 지배일 수도 있다.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사람은 변한다. 와인처럼 시간과 함께 숙성이 될지, 혹은 유통기한이 지난 유기농 채소처럼 썩어서 갖다 버려야 할지를 내가 결정해야 할 때도 있겠지만, 가끔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버릴 때도 있다. 아니, 대부분의 경우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순간들 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무의식적인 선택들로 나의 변화를 이끌어간다.


사람이 변하다 보니, 관계도 변한다. 세상에 없어선 안 될 사랑의 대상이 눈길도 주기 싫은 짜증 나는 대상이 되어버리는 500일의 섬머 같은 흔한 러브 스토리부터 학생에서 연인이 되고, 친구에서 원수가 되는 닥터스의 이상한 관계들까지. 시간이 흐르며 관계가 변한다. 사람이 그렇듯, 관계의 변화 역시 의도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에 있어 안타까운 것은 한 사람의 변화의 방향이 다른 사람의 변화의 방향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이다. 그것이 친구에서 연인으로든, 연인에서 이별로든, 보통은 더 애정하는 쪽이 힘들게 인내해야 하는 관계로 변해간다. 그 인내의 끝에서 상대의 마음도 끝내 같은 곳을 바라볼지, 아니면 끝끝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 마을에서 나 혼자 떨다가 나와야 할지는 인내의 정도와 애정의 크기, 또 상대의 마음과 같이 복잡하고 복합적인 요소들에 좌우된다. 어쩌면 평생을 기다려도 되지 않을 일에 쓸데 없는 마음과 감정을 쏟는 일이 될지도 모를 일에, 바보처럼 뛰어든다. 그게 사랑이라며.


황경신 시인의 '사랑을 믿지 못하여'라는 시에서 말했다. 사랑은 저 깊고 아득한 낭떠러지로 뛰어내리는 일이라고. 그리고 애석하게도 사랑을 믿지 못하여, 목숨을 걸지 못하여 뛰어내리지 못한 채 슬픔도 없는 눈물만 흘리는 모습을 그린다. 그게 꼭 나의 과거 모습 같았다. 목숨을 걸지 못한 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속였던 많은 감정들 속에, 나는 그렇게 슬프지도 않은 마음으로 이별을 겪어댔다. 목숨을 건 사랑, 기꺼이 희생하는 사랑을 배우고 나니, 그 곳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사랑은 변할지언정 변함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사랑다운 사랑 앞에 그 말은 머리로 이해하기 전에 마음으로 느껴졌다. 사람은 변한다. 그렇게 사랑도 변한다. 때로는 표현하는 방식일수도 있고, 때로는 그 사랑의 색깔이나 재질이 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랑은 여전히 사랑이어서, 변함 없이 상대에게 사랑 받고 있다는 확신과 믿음을 던져 준다. 현상은 변하지만, 본질은 변함이 없다.


사랑을 한다는 것, 그것은 변함없이 상대를 향하는 것이다. 때때로 변할지언정 상대를 향한 인내와 희생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나의 방법으로, 나만의 방법으로 당신을 향한 나의 마음과 의지를, 사랑과 희생을 결심하고 또 보여주는 것이다. 사랑을 하겠다고 결단한 그 순간부터, 사랑을 받든 외면을 받든 묵묵하게 사랑하는 것이다. '주는 것 만으로 벅찼던 내가 또 사랑을 받고, 그 모든 건 기적이었음을' 이라는 이선희의 노래 가사처럼 그저 주는 것으로 벅찬 감격으로 가득한 것이다.


변함 없이 사랑하기 위해, 끊임 없이 변해가는 것이다.

사람도, 관계도, 사랑도, 그렇게 변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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