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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이탈리아에 가면 안 되는 이유

안 되는 이유들은 넘쳐나는데, 되돌리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by 콩딘이

세부 일정을 짜려고 12월의 이탈리아는 어떤지 유튜브를 검색했다. 처음에는 설레는 마음으로 검색하기 시작했는데 후기들을 보면 볼수록 종국에는 내가 지금 이 여행을 가는 게 맞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모두 큰 결심을 하고, 어렵게 시간을 쪼개서 가는 여행인데 이렇게 섣불리 결정하지 말았어야 했나, 하는 후회도 밀려왔다. 어쩌자고 내가 이탈리아를 여행지로 고른 것인지, 비행기 티켓은 왜 먼저 끊어버리고 만 것인지. 2024년 12월, 우리가 이탈리아로 떠나서는 안 됐을 몇 가지 이유들을 적어본다.


첫째, 12월은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우기다. 여행을 앞두고 그 나라의 날씨 체크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런데 그걸 놓쳤다. 나는 단순하게도 이탈리아가 한국과 비슷한 사계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이 겨울일 것이고, 한국보다 조금 따뜻한 정도일 거라고 쉽게 생각했다. 추운 데다가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는 이탈리아는 상상도 해본 적 없었다. 그런데 겨울이 우기라니.


돌아다니는 내내 날씨가 좋았으면 좋겠다는 욕심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내내 비가 오는 풍경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게다가 비 내리는 날씨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날씨다. 한국에서도 비가 오면 괜히 우울한 마음이 들어 외출을 삼갈 정도로 싫어하는데 여행 가서 내내 비를 맞고 있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저절로 심란해졌다. 하지만 이미 가기로 한 것을 어쩌겠는가. 눈물을 머금고 우산과 우비, 장화를 주섬주섬 챙길 수밖에.


둘째, 우리가 머무는 12월 25일과 26일은 이탈리아의 국경일이다. 내게 익숙한 크리스마스 풍경은 북적북적한 사람들과 늦은 시간까지 반짝이는 화려한 불빛이다. 그래서 이탈리아에서 맞는 크리스마스 역시 당연히 그럴 거라고 예상했다. 처음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할 때도 '유럽에서 맞는 크리스마스'라는 문장이 나를 얼마나 설레게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웬걸. 알고 보니 유럽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는 한국과는 조금 다른 의미의 휴일이었다. 가톨릭 신자가 많기 때문인지 그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연인들이 만나는 기념일보다는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명절에 더 가까웠다. 그 말인즉슨, 주요 관광지나 음식점들이 그 시기에는 대부분 문을 닫는다는 뜻이었다. 9일밖에 이탈리아에서 머물지 못하는데 하필이면 그중에 이틀이 국경절이라니. 크리스마스 시즌이라고 좋아할 이유가 전혀 없었던 거였다.


셋째, 휴가를 앞두고 회사에 일이 줄줄이 터지기 시작했다. 남편도 나도 호기롭게 회사에 2주간의 휴가를 내놓기는 했는데, 휴가 날이 다가올수록 끝나야 하는 프로젝트들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막판의 막판까지 가서 겨우 프로젝트를 끝낼 수 있었지만 남편은 막바지가 돼서도 계속 난항을 겪고 있었다. 어쩌면 현지에 가서도 일을 해야만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남편의 말을 듣자, 안 그래도 다른 상황들도 별로 좋지 않은데 이렇게까지 무리해서 정말 여행을 가야 하나 싶어졌다.


넷째, 로마의 주요 관광지들은 지금 희년 준비로 모두 수리 중이다. 이게 사실 가장 큰 패착이었다. 희년은 25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천주교의 대표적인 행사다. 천주교가 아니었던 나는 이 희년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 25년 만에 돌아온다는 희년이 하필이면 내년이었던 것이다. 희년을 맞아 바티칸을 방문하는 수많은 순례자들에 대비하기 위해 로마시는 지금 주요 관광 명소들을 대대적으로 손보고 있었다.


같은 해 10월, 11월 올라온 로마 현지 유튜브 영상들을 보니 수많은 관광 명소들이 수리와 보수 공사에 한창이었다. 각종 뉴스에서는 영광스러운 희년을 맞았다며 새해를 앞둔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내 눈은 오직 수리 중이라 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트레비 분수에 고정돼 있었다. 로마에 가면 트레비 분수에 가서 꼭 동전을 넣으리라 다짐했었는데... 나의 꿈이 산산이 물거품이 되는 소리가 들렸다. 비단 트레비 분수뿐만 아니라 로마에 있는 많은 유적지와 관광명소들이 대청소와 보수에 들어가 있는 상태라 관람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김이 절로 샜다.


희년 소식까지 접하자 온 세상이 나에게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이탈리아에 오겠다고?' 하는 시그널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정말 지금 이 시기에 이탈리아에 가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고민을 다시 할 수밖에 없는 시점이었다. 위약금을 물더라도 취소하고 이제라도 다른 여행지를 알아보는 게 모두를 위해서 더 나은 결정은 아닐까 싶었다. 고민만 하는 와중에 또 회사 일은 바쁘게 돌아가고, 눈코 뜰 새 없는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출발하기까지 겨우 10일 정도 남은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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