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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속한 결정, 빠른 후회

이탈리아 자유 여행을 결정하고, 후회가 태산같이 밀려왔다

by 콩딘이

언제나 나의 성격이 문제다. 중요한 일을 섣불리 결정해 버린 후 얼마 안 가 곧바로 후회하고 마는 성미. 누군가에게는 이런 내 모습이 추진력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신중하지 못한 결정들로 인해 후회 막심한 결과를 초래하곤 한다. 이번 이탈리아 여행처럼.


이탈리아로 떠나기로 결정하니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자유 여행이었으니 비행기부터 렌터카, 보험, 호텔, 관광 일정까지 하나하나 직접 알아보지 않으면 안 됐다. 이번 여행의 물주인 부모님을 제외하고 그나마 도움을 구할 수 있는 남편에게마저도 내가 다 준비하겠다고 호언장담해 둔 터라 울며 겨자 먹기로 정말 혼자서 모든 것을 끌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탈리아는 나도 처음인데, 어디서 뭐부터 알아봐야 할지 막막했다. 혼자 다 알아서 하겠다고 큰 소리는 쳐 놨는데 막상 준비하려고 보니 귀찮아지기도 했고. 부모님도 남편도, 그리고 나까지 세대를 불문하고 모두가 만족스러운 여행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주사위는 던져졌고, 힘들고 외로울지라도 이제 할 일을 해야만 했다. 휴가를 떠나기까지 당장 20일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진짜 후회할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일단 이탈리아 여행 책부터 한 권 주문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가장 최신 버전의 이탈리아 여행 가이드북이었다. 인터넷에 올라와있는 파편화된 정보들을 일일이 조합하는데 시간을 쏟느니 최신 정보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한 권의 책을 사는 게 비용은 들어도 시간은 훨씬 줄여줄 거라고 생각했다.


예상대로 가이드 책은 상당히 많은 도움이 됐다. 책에서는 이탈리아의 핵심 도시들을 둘러보는 일주 코스로 7박 9일을 추천했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기간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코스였다. 그렇게 전체 일정은 7박 9일로 확정! 이제 가격 변동이 심한 비행기표부터 알아볼 차례였다.


밀라노 인 - 로마 아웃을 할 것인가, 로마 인 - 밀라노 아웃을 할 것인가. 이건 사실 선택지가 없었다. 우리가 원하는 날짜에 갈 수 있는 비행기 표 중 국적기이며 직항으로 가는 항공권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의 밀라노인-로마아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가이드북에서는 로마에서 밀라노로 이동하는 걸 추천했는데, 막상 여행을 떠나보니 밀라노인-로마아웃을 하길 잘한 것 같았다. 밀라노에서는 시차 적응이 안돼 제대로 관광을 즐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메인 도시인 로마에 도착할 즈음에는 모두 시차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된 상태였다.)


비행기표부터 빠르게 예매하기로 했다. 그런데 엄마가 비즈니스 클래스 가격은 어떤지, 편도는 얼마고 왕복은 얼마인지 세세하게 물어오기 시작했다. 막상 알아보니 비즈니스 좌석의 업그레이드는 온라인에서는 바로 할 수 없고, 티켓을 판매하고 있는 개별 여행사를 통해 따로 문의해야 했다. 게다가 이 여행사들의 CS 대기 시간은 얼마나 긴지. 상담원 연결까지 평균 10분씩을 기다려가며 일일이 티켓 값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들여 가격을 알아봤더니 엄마는 생각보다 너무 비싸다며 본인들 마일리지를 이용해 좌석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으로 다시 알아봐 달라고 했다.


나는 그때 대한항공 마일리지 사용이 그렇게 어렵고 복잡한지 처음 알았다. 이걸 완료하는 데 장장 이틀이나 꼬박 소요됐기 때문이다. 가족 마일리지 등록과 합산, 결제 등 전 과정을 거치면서 진이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출발하기도 전부터 이미 짧은 여행을 한 번 다녀온 것 같다고나 할까. 알아보는 중간에도 자꾸 이것저것 물어오는 엄마 때문에 약간의 다툼이 있을 뻔도 했지만, 그래도 이번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물주이시니 가기 전부터 벌써 싸우면 안 된다는 생각에 참고 또 참았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비행기 표는 모두 예매를 완료했다. 큰 산 하나를 넘었다고 생각하며 한결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이제는 세부 일정 짜기에 돌입할 차례였다. 그런데 아뿔싸. 구체적인 일정을 정하기 위해 이탈리아 관련 세부 정보들을 찾아보면서 12월의 이탈리아는 여행하기에 매우 좋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이미 비행기표를 모두 결제해 버린 상태에서 말이다. 역시나 이번에도 성급한 내 성격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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