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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YUNIQUE Nov 30. 2018

[밴쿠버] 이민자로 살아남는 법

나의 밴쿠버 정착 8년 후와 다른 이민자들의 이야기


밴쿠버에 정착한 지도 어언 8년이 훌쩍 넘었다. '장강명' 작가 소설의 '계나'처럼 "한국이 싫어서"였던 것도 아닌데, 무작정 밴쿠버로 가는 비행기 길에 오른 것이 어느새 벌써 8년 전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한국에서의 삶 역시 크게 부족한 것 없이 만족스러웠던 나였기에, 밴쿠버에서의 삶이 시련을 던져줄 때면 늘 한국으로 돌아갈 꿈을 품기도 했다. 나를 이 먼 땅에 살아내게 한 것은 무엇일까. 가장 으뜸으로 꼽고 싶은 것은 밴쿠버의 '자유로움'일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옷을 고를 때, '남의 시선'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 그것은 타인의 시선을 크게 신경 쓰진 않지만 사회적 틀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한국에서의 나를 벗어나 크나큰 개인적 해방감과 만족감을 동시에 안겨 주었다. 물론 캐나다 안에서 질서 및 틀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외모적인 지적 및 몰개성적인 사회적 억압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활한다는 이점은 나를 지금껏 칠천만 리 고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아나게 하고 있는 원동력 중의 하나로 작용해왔다.



내가 이 먼 땅에서 억척같이 살아내고 있는 또 다른 이유 중의 하나는 '또래 집단의 압력(Peer Pressure)'이 한국보다 덜하다는 것이다. 한국보다 땅은 넓은데 인구가 적어서 그런지, 여러 문화가 상호 공존하는 다문화 시스템 때문인지는 몰라도, 실질적으로 느낄 수 있는 일괄적인 비교 대상이 상대적으로 적은 덕분이다. "반드시 대학을 나와야 한다"던지, "좋은 대학을 나와서 무조건 대기업에 취업해야 한다"는 공식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래 집단의 압박이 없이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자유롭게 디자인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어 있는 캐나다에서는, 개인의 성공 및 실패는 철저히 그 선택을 한 개인에게 책임이 달려있다. 이는 '집단주의'를 바탕으로 한 동양의 문화와 '개인주의'를 기반으로 한 서구 문화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으로, 어떤 것이 옳으며 그르다고 일방적인 판단을 내리기엔 까다로운 것이 사실이다. 단지 다른 사람의 삶의 방식 및 족적을 따르는 것이 아닌 '나만의 삶'을 창조하고자 했던 개인적인 욕구가 컸던 내게 더 잘 맞았을 뿐.





'Anh and Chi' Restaurant




오늘은 밴쿠버 플레이하우스 (우리나라로 치면 대학로 대극장 같은 곳)에서 열리는 'Pecha Kucha' 이벤트에 참석했다. 20장의 사진들을 20초간 설명하여 6분 40초 동안 강연하는 일종의 'TED' 같은 포럼으로, 강연자 중 한 명인 베트남 식당 'Ahn and Chi'의 주인인 친구가 초대해 준 덕분에 들를 수 있었던 이 이벤트는,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 번에 몰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게 중에는 영국에서 이민 온 도자기 공예가도 있었고, 네덜란드에서 이민 와서 '육류'에 빠져질 좋은 고기를 직구매할 수 있는 배달앱을 개발한 사람도 있었으며, 어릴 적 부모님이 중국에서 캐나다의 작은 외딴 도시로 이민을 와서 얼른 그 도시를 탈출하고자 제빵학교를 다니다가 자신만의 베이커리를 창업한 사람도 있었다. 물론 하이라이트는 나의 친구(여서가 아니라 스토리가 너무 감동적이었던) 아멜리와 그녀의 남동생 빈센트의 강연이었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때, 그들의 부모님은 뗏목을 타고 태평양을 건너 난민 신청을 하러 먼 길을 떠났고, 그 당시 임신한 엄마의 뱃속에 있던 내 친구 아멜리는 난민들이 잠시 거주하는 캠프장에서 태어났다. 밴쿠버에 정착하게 된 그녀의 부모님은 25년 동안 'Pho Hoang'이라는 베트남 음식점을 운영했는데, 갑작스레 아버지가 아프시다는 전화 한 통을 받고, 호주에서 의사 공부를 하고 있던 남동생 빈센트는 급히 캐나다로 돌아오게 된다. 결국 임종을 맞이하신 아버지, 그리고 홀로 남겨져 식당을 이끄시기 버거웠던 어머니를 보며 아멜리와 빈센트는 식당을 운영하는 데에 힘을 모으기로 하고 함께 레노베이션을 시작하여 지금의 'Ahn and Chi'를 오픈한다. 'Ahn and Chi'는 베트남어로 남동생과 여동생이라는 뜻으로, 그들이 한 뜻을 모은 마음이 이름에서부터 전해진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던한 인테리어와 정통 베트남 식의 음식에 대한 입소문을 타고 수많은 밴쿠버의 로컬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이 식당은 재개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줄을 서지 않으면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밴쿠버의 맛집 중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들의 이민 이야기에 비하면 나는 엄청나게 편하게 이민 생활을 해 온 케이스이다. 뗏목을 타고 수 십 시간 태평양을 건너오긴커녕 비행기 안에서 몸 편히 단 9시간 만에 서울에서 밴쿠버까지 날아왔고, 다른 누구의 희생 하나 없이 나의 목숨 하나만 부지하면 되는 인생이니. 아멜리와 빈센트의 삶을 보며, 나의 삶에 대한 태도를 다시 한번 반성하고 되짚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더불어, 밴쿠버에도 이렇게 모던한 스타일의 인테리어로 정통 한식의 맛을 내는 한국 식당을 오픈하고 싶다는 꿈을 피워보게도 해주었다.







밴쿠버에서 잘 살아내고 있지만 여전히 닿지 못한 곳으로 발돋움하고 싶은 꿈을 꾸고 있는 이민 8년 차. 여전히 고국이 그립고, 때로는 향수에 젖어 살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닌 나만의 꿈을 꾸며 때로는 그것을 이루어 내며 살 수 있어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요즘에 감사하며 살고 있는 이민자의 삶이 나쁘지 만은 않다. 앞으로도 겸손하게, 열린 마음을 가지고, 타인에게 배울 수 있는 자세를 가지면서도 나만의 꿈을 가지고 꾸준히 앞으로 전진하는 이민자의 한 사람으로 꿋꿋하게 살아남을 수 있길 다짐해 본다.





Anh and Chi

Location: 3388 Main St, Vancouver

Website: andandchi.com




Written & Photographed by BEYUNI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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