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조용히 보내는 롱위켄드 (Long Weekend)
어느덧 8월에 접어들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다시 오지 않을 전무후무할 듯한 한 해를 보내고 있는 요즘이지만, 시간은 이런 사회 분위기와는 상관이 없다는 듯 물처럼 유유히 흐르는 모양새다.
내가 살고 있는 밴쿠버가 속해 있는 주, 브리티쉬 컬럼비아 (British Columbia, 줄여서 BC 주라고 부름)에는 일 년에 3, 6월만 빼고 매달 쉴 수 있는 공휴일이 있다. 7월 1일 캐나다 데이, 캐나다의 현충일 개념인 메모리얼 데이가 11월 11일, 그리고 크리스마스만 빼면, 공휴일이 대부분 월요일 아니면 금요일로 해마다 바뀌기 때문에 합쳐서 4일 휴가를 낼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이를 롱위켄드 (Long Weekend)로 부르고, 이때를 이용하여 여행을 가는 것이 보통 캐나다 사람들의 흔한 휴가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주말은 '브리티쉬 컬럼비아 주의 날'인 'BC Day'가 있는 롱위켄드로, 평소 같았으면 밴쿠버에서 다양한 페스티벌로 가장 바쁜 주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시작한 4월 초부터 페스티벌이 하나둘씩 취소되기 시작했고, 그 결과 본의치 않게 밴쿠버로 이민 온 이후로 가장 조용한 여름 주말을 보내게 되어 버렸다. 원래대로라면 8월 초 토요일에 열렸을 불꽃놀이 축제, 다양한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개성을 뽐내는 것을 구경할 수 있는 프라이드 (Pride) 페스티벌이 이번 주말에 펼쳐져서 도시 전체가 활력을 띄고 북적북적했을 텐데, 어딜 가든 너무나도 조용해서 적응이 안 될 정도이다.
캐나다는 현재 116,884명의 확진자와 8,945명의 사망자가 속출했고, 내가 거주하고 있는 BC 주에서는 3,641명의 확진자와 195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마스크를 쓰는 것이 강제적이진 않지만 3월에 비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고, 사회적 거리두기도 나름 잘 지켜지고 있는 편이다.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는데 굉장히 나름 선방하고 있는 터라, 6월 말부터 경제 재개 3단계로 접어들었고 공원, 캠핑, 바닷가를 가는 것이 허용되고 있으며, 9월에는 학교도 재개할 것이라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날씨가 좋았던 이번 롱위켄드. 왠지 집에서만 보내기는 아쉬웠던 탓에 부랴부랴 짐을 챙겨 도시에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칠리왁 (Chilliwack) 호수에 다녀왔다. 다들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호숫가는 부지런히 일찍 도착하여 자리를 잡은 사람들로 가득 차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였다. 도로 포장이 덜 되어 인적이 드문 길을 따라 드라이빙을 하다 약간의 운과 매의 눈을 이용하여 사람들이 북적북적한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프라이빗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을 발견하게 되었다.
구름 한 점 없는 완연한 여름 날씨, 28도의 햇볕이 살갗을 뜨겁게 데워올 때면 호숫가에 첨벙 몸을 담갔다가 나올 수 있는 시원한 곳. 16시간 운전을 해서 록키 산맥까지 가지 않아도 아름다운 뷰를 즐길 수 있다는 것에 대해, 평소에 가까이 있어서, 익숙해져서 당연시 여겼던 주위에 대한 감사함이 느껴졌다. 비록 페스티벌들은 취소됐지만, 이렇게 조용하게 보내는 여름도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