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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YUNIQUE Sep 02. 2020

[밴쿠버] 이민 생활,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었다

캐나다 이민 10년 차의 회고

오랜만에 창고 정리를 했다.


평소에 쓰지 않는 물건들을 마구잡이로 쌓아뒀던 터라 박스 채 겹겹이 쌓인 문서들과 잡다한 물품들로 가득한 창고 속에는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가는 지난 추억들도 곁들여져 있었다.


박스 안을 하나하나 열어가며 버릴 것들과 간직할 것들을 분류해나가기 시작했다. 그 속에는 어렸을 때 찍은 사진, 초등학교 첫사랑과 찍은 사진, 중학교 수련회 갔을 때 찍은 사진들,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제주도에 갔던 사진들, 대학교 때 베프들과 유럽 여행 갔을 때의 사진으로 손수 제작한 앨범... 들이 잊혀 가던 나의 과거들을 강제로 소환해주었다.


또 다른 상자 속은 처음 이민 왔을 때의 달력과 일기, 메모장들로 가득 차 있었다. 밴쿠버로 이민을 오기로 결심하고 대학교 마지막 학기에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두었다가, 설레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라탄 게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그게 정확히 2010년 8월 28일이니, 이제 꽉 채 운 이민 10년 차가 됐다.


10년 전의 기록들은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자’라는 자기 위로적인 메시지로 가득했다. 낯선 땅, 낯선 사람들, 낯선 언어와 문화 속에서 자리 잡으려고 다분히 노력했던 흔적들이 노트북 곳곳에 묻어나 있었다.


10년이 지나와 다시 돌이켜보니, 그때의 내가 참 대견하면서도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렇게 힘든 줄 몰랐는데, 아무렇지 않은 척, 안 힘든 척, 견뎌 온 내 자신이,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면서도 조금의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고, 완벽하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하며 더 잘하라고 스스로를 더 채찍질하고, 닦달하면서 가학적으로 대해 온 나 자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타지에서 사는 이민 생활에 적응하느라 바빠 까마득히 잊고 살았는데, 포기하고 싶었을 때가 많았구나...’ 누구보다 나를 잘 안다고 자부했는데, 내가 나를 이렇게 막 대하고 있었다는 걸, 홀로 외로이 꿋꿋하게 버텨나가고 있는 나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지는 못할 망정, 나 자신을 괴롭히며 더 외롭게 가둬왔다는 것을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친한 친구에겐 입 밖에도 꺼내지 않을 말들을, 나 자신에겐 서슴없이 퍼붓고 있었다는 것도.


노트북 뒷 장에 자리한 영어 단어장을 발견했을 때는 눈물이 핑 돌며 그간 억누르고 있었던 감정이 북받쳐 오고야 말았다. 그때의 치열함이 단어 하나하나에 또렷하게 새겨져 있는 탓이었다. 하지만 이내 그 눈물은 그 단어장 속의 어휘들을 체화하고 습득하여 사용해오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뿌듯함으로 치환되었다.


브런치를 처음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누구나 이민을 할 수 있다는 글을 썼었는데, 이 아픈 기록들을 보고 나니 내가 감히 누구에게 이 고난의 길을 추천해도 되는 것인지 하는 현타가 왔다. 물론 시간이 무척이나 흐른 지금은 편안하고 여유로우며 자유롭게 생활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민이 없을 수는 없기에. 어떤 이에게는 더 힘든 길이 될 수도 있는 삶의 선택이자 도전일 것이기에.


어느 나라에 있든, 치열하게 고민하며 사는 것은 다 마찬가지일 게다. 너무나도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을 것이다. 그런 내게, 따뜻한 위로의 한 마디를 건네며, ‘잘하고 있다’고 응원해주는 내가 되어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 나에게 친절하기. 친한 친구를 대하듯 나를 대하기.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지 말고 내가 내 자신을 인정하기. 이민 10년 차에 주어진 숙제라 여기고 잘 수행해 나가 봐야겠다. 앞으로도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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