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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YUNIQUE Mar 19. 2017

[캐나다] 도깨비가 문을 열고 나타날 듯한 몬트리올

캐나다 퀘백 주의 대도시, 몬트리올

캐나다에 살고 있지만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 몇 가지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대표적인 이민의 어려움으로 음식 문화의 적응을 손꼽지만, 다양한 식문화를 즐기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김치를 포기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 한국 드라마나 예능을 끊는 것이다. 담배를 끊었을 때 만큼의 금단 증상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몇 날 며칠을 영어만 쓰고 지내다보면 한국의 정서가 잔뜩 담긴 드라마를 보거나 유투브에서 한국 관련 컨텐츠들을 보고 싶은 욕구가 나도 모르는 새 향수병처럼 스멀스멀 올라오고야 만다. 



그런 점에서 있어, 최근 시청한 드라마 '도깨비'는 캐나다 퀘백 시에서 촬영한 분량 덕분인지, 혹은 작가의 마약같은 필력인지, 혹은 단지 도깨비와 저승사자의 '브로맨스'를 보는 것이 좋았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매주 금, 토요일이 기다려질 정도로 푹 빠져들게 된 몇 안 되는 드라마 중의 하나였다. 드라마 시청을 마치고 가장 아쉬웠던 건 (이 멋지고 매력적인 남자들을 매주 볼 수 없겠구나 하는 아쉬움... 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재작년 퀘백 주를 방문했을 때 퀘백 시티를 들르지 않았던 것이다. '도깨비'의 배경이자 '단풍국'의 모습으로 수려하게 등장한 퀘백 시티는 내가 방문했던 '몬트리올'에서 차로 2시간 반 가량 달리면 도달할 수 있는 근처 도시이기 때문이다.



몬트리올에서 퀘백 시티까지의 가까워서 (안 간 게) 아까운 거리

  

몬트리올에서 퀘백 시티로 가는 기차 여행 Via Rail을 했어야했다는 후회 막심


몬트리올의 첫인상


뭔가 노랑노랑한 게 눈에 많이 띄였던 몬트리올



도깨비를 몰랐던 재작년 그 때로 돌아가보자. 면적으로 세계에서 2번째로 큰 나라인 캐나다에 살면서 동부 여행을 한 번도 못해봤던 것이 줄곧 마음에 걸렸던 당시의 나는, 드디어 캐나다의 퀘백 주에 위치한 '몬트리올'과 미국 남부의 '뉴올리언스'를 이어 여행하기로 마음 먹었다. 공식적으로는 영어와 불어가 공용어로 사용되는 캐나다지만, 사실 퀘백 주에서만 유일하게 불어가 주로 사용되고 있다. 여행하기 전 주워 들은 바로는 대도시인 몬트리올에서는 영어와 불어를 공용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은 반면, 그 이외 도시는 주로 불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가보니 몬트리올에서도 불어만 사용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아 의사 소통에 애를 먹기도 했다.



몬트리올에 오면 꼭 먹어줘야 하는 음식 1: 푸틴 (Poutine: 감자튀김에 치즈 커드cheese curd를 넣고 소고기를 졸여 만든 그래이비 gravy 소스를 위에 얹은 음식)
몬트리올에 오면 꼭 먹어줘야 하는 음식 2: 훈제 소고기 샌드위치 (Smoked Beef Sandwich) - Schwartz가 가장 유명하다 :)



프랑스의 지배를 받은 영향인지 캐나다 도시 중에서도 특유의 프랑스 식 식문화가 발달한 몬트리올 행은 그야말로 '먹기 위한' 여행 (먹방도 아니고 먹행)이었다. 몬트리올을 도착하여 가장 먼저 먹은 음식은 쌉쌀하게 매운 '초리소 (Chorizo)' 소세지를 얹은 '푸틴 (Poutine: 고기 육즙에 전분을 넣어 만든 걸쭉한 그레이비 소스와 말랑말랑한 치즈 커드를 얹은 감자튀김)'이었다. 패스트 푸드 음식점 비슷한 곳에서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쫄깃하고 매콤한 소세지와 쫀쫀한 치즈가 어우러진 푸틴의 맛은 밴쿠버의 여느 푸틴 음식점에 비할 게 못 될 정도로 일품이었다. 



'몬트리올에 오면 꼭 가봐야 할 맛집'으로 늘 손꼽히는 "Schwartz"에서의 얇게 썰어 층층이 쌓아 올린 훈제 쇠고기 샌드위치 (Smoked Beef Sandwich)는 지금 당장 비행기 티켓을 끊어서 다시 먹고 싶을 정도로 입에 군침이 절로 도는 음식 중 하나다. 유대인의 영향이 큰 몬트리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던 베이글 역시 뉴욕의 연어 크림 치즈 베이글 못지 않게 맛났으나 가장 큰 수확은 캐나다에서 가장 유명한 맛집 중의 하나인 "조 비프 (Joe Beef)"에서의 저녁 식사였다. 몇 주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인기 있다는 이 식당에서 먹은 베이컨을 두른 토끼 고기는 평생 생각날 것이다.






먹으러 떠난 여행이라 그런지 여행 사진의 팔할이 음식 사진이지만, 밴쿠버에서 볼 수 없는 프랑스 식 건축 양식을 보는 재미도 나름 쏠쏠했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올드 몬트리올(Old Montreal)"은 특히 캐나다 내 퀘백 시티의 뒤를 이은 오래된 도시의 유래를 뽐내듯 유럽식의 정취가 묻어나는 건물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중 입이 자동으로 쩍 벌어질 정도의 웅장함에 매료되었던 곳은 '노트르담 대성당(Basilique de Notre-Dame de Montreal)' 내부였는데, 개인적으로는 프랑스 파리에 있는 노트르담 성당 보다 더 화려하고 유려했다. 5불의 입장료가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로.



몬트리올 여행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노트르담 대 성당



가톨릭 영향을 받은 '성 요셉 대성당 (St. Joseph's Oratory of Mount Royal)' 은 노트르담 대성당과 다르게 웅장하면서도 오목조목 아기자기한 모습이었다. 언덕 위에 위치에 있어 한참을 올라가다 만난 전망은 껄떡거리던 저질 체력을 가진 한 인간의 숨통이 확 트이게 할 정도로 상쾌했다. 로즈마리와 각종 과일들을 발효시켜 만든 시큼상큼한 콤부차(Kombucha)로 목을 축이고, 몬트리올 시에서 대여할 수 있는 공용 자전거 빅시(Bixi)를 타고 몬트리올 도시 곳곳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하러 나섰다.



성요셉 대성당 계단에 오른 후 마신 콤부차 (Kombucha: 컬쳐 효모에 차를 우려 내어 발효시킨 음료) 
몬트리올 곳곳을 다닐 수 있는 발이 되어 준 빅시 (Bixi)
인스타그래머와 함께 한 부자 동네 웨스트 마운트 (Westmount) 워킹 투어



하나라도 더 많이 보겠다고 평소와 달리 엄청나게 걷고 무리하게 자전거를 달린 탓일까, 여행 일 수로 5일째에 들어서자 다리가 철방망이 마냥 뭉쳐버렸다. 결국 이렇게 열심히 여행해 온 나에게 하루 쯤은 '쉬는 날'을 선물로 주어도 괜찮을거라 자위하며 올드 몬트리올에 위치한 수상 스파 '보타 보타 (Bota Bota)'에서의 마사지를 한 시간 받기로 했다. 마사지를 받은 사람에게는 워터 서킷 (Water Curcuit)까지 할인 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는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스웨덴 식의 마사지를 받은 후 냉, 온탕, 사우나 및 야외 자쿠지를 왔다 갔다 하며 물에 몸을 담그니, 그간 누적되어 왔던 피로가 어디갔냐 싶게 녹아버렸다.



보타보타 선상에서 마사지 후 즐기는 해질녘 


시간이 남아 용감무쌍하게 홀로 들른 놀이공원, 라 롱드
시간이 남아 용감무쌍하게 홀로 들른 놀이공원, 라 롱드



딱 일주일 동안 머물기로 한 몬트리올에서의 여정은 6일 째 쯤 되자 여행 하기 전 먹고, 가고, 하고 싶은 모든 것을 총망라한 것 같은 여유로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결국 나는 근교에 위치한 놀이 공원인 '라 롱드 (La Ronde)'까지 섭렵하는 대담함까지 보였다. 혼자 한 여행이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캐나다에서 가장 길고 빠르다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어지럼증과 약간의 구토 및 탈진 증세를 느낀 후에야 나는 이제 몬트리올 여행이 막바지에 다다름을 깨달았다. 어느 순간 도깨비가 문을 열고 나타날 것 같은 마법 같은 도시에 흠뻑 매료된 여행은 이렇게 끝이 났다. 이 여행의 순간 순간 (퀘백 시를 안 간 것 이외에는) "모두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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