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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YUNIQUE Jun 22. 2017

[캐나다] 서부 오카나간 밸리의 휴양 도시, 켈로나

4시간을 달려 도착한 여유로운 도시 켈로나의 모습

면적으로 따졌을 때 러시아 다음으로 가장 큰 나라인 캐나다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방대하며, 각 도 (province) 마다 저마다의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캐나다'를 떠올리면 추운 북쪽의 나라로 생각하지만, 사실 내가 살고 있는 '브리티쉬 컬럼비아 (British Columbia)' 주의 겨울은 한국보다 춥지 않을 정도로 따뜻하다. 작년은 예외적으로 춥고 눈이 많이 내렸지만 보통은 한 겨울이라고 해도 비가 많이 내리며 7도 정도를 유지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보통 4월 경 봄이 오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후, 운이 좋으면 청량하고 맑은, 건조해서 후덥지 않은 구름 한 점 없는 25도 안팎의 날씨가 10월까지 지속되거나, 반짝 세일(?)처럼 7월 말부터 9월 초까지 여름이 짧게 다녀가기도 한다.



여행을 많이 한다고 했는데도 브리티쉬 콜럼비아 주에 속한 모든 도시들을 다 가 보진 못했다. 브리티쉬 컬럼비아 주 안에도 엄청나게 많은 도시들이 분포하는, 한 마디로 땅덩어리가 '겁나게' 큰 탓일게다. 기회가 되면 근교로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내게, 날씨가 급격하게 좋아진 이번 5월 말 경, 로드트립으로 오카나간 밸리 (Okanagan Valley)에 위치한 도시, '켈로나 (Kelowna)'에 다녀올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는 캐나다의 서부 브리티쉬 콜럼비아 주(오죽하면 주의 슬로건이 뷰티풀 브리티쉬 콜럼비아라는)의 위엄을 뽐내는, 30도를 웃도는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굳건함을 유지하고 있는 빙하들이 켜켜히 쌓인 산맥 줄기들을 거쳐 약 네 시간 정도를 북동쪽으로 열심히 달린 결과, 밴쿠버와는 다르게 아기자기하면서도 여유로운 모습을 갖추고 있는 휴양 도시 켈로나의 모습이 나타났다.




켈로나 다운타운에 들어서니, 브리티쉬 컬럼비아 주의 대도시이자 유리벽으로 만들어진 고층 아파트들이 밀집해 있어 글래스 시티 (Glass City) 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밴쿠버와는 다르게, 오목조목 모여있는 빌딩들과 낮은 층수의 아파트들이 확연히 눈에 띄었다. 오래 된 느낌이지만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는 다운타운의 Water St.을 따라 몇 분 달려 북적북적한 시내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짐을 내동댕이(?)치듯 던져놓고 저녁식사를 하러 나섰다.


숙소 전경의 모습
숙소 앞 호수에 유유히 떠나니는 오리 한 마리


원래 가려고 했던 식당은 운전을 15분 정도 더 해야했던 터라 네 시간의 장기 운전의 피로가 남은 탓에 포기하고, 켈로나 다운타운에 위치한, 밴쿠버에서 만난 친구가 추천해준 식당 Raudz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침 식사 시간이라 그런지 15~20분 정도의 웨이팅 시간이 주어졌다. 잠깐의 짬도 낭비할 수 없었기에 옆 가게에서 (밴쿠버에서 온) 수제 맥주를 마시고, 2번째 잔을 시키려고 할 즈음, Raudz에서 테이블이 마련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어두컴컴한 느낌의 인테리어가 전반적이었던 이 식당에 도착하니, 운이 좋게도 창가 바로 옆 자리 (자연스러운 빛이 스며들어 사진이 잘 나오므로 언제나 선호하는 자리인)를 내어주었다. 이 곳, Raudz의 메뉴는 여느 다른 레스토랑에서도 못 본 독특한 메뉴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는데, 일단 직접 짠 블랙베리로 만든 마티니와 덧나무(Elderflower)에서 추출한 향을 입힌 칵테일로 입가심을 다진 후, 애피타이저로 '게살 카푸치노(Crab Cappuccino)'와 홍합 요리를 시켰다.



이 레스토랑만의 특별한 메뉴인, 게살 크림 스프를 카푸치노 형식으로 내어 온 게살 카푸치노는 여태껏 먹은 게살 스프 중 최고일 정도였다. 원래 해산물과 크림이 들어간 크램 챠우더 (Clam Chowder)와 랍스터 비스크 (Lobster Bisque: 버터, 양파와 크림에 랍스터가 들어간 스프)를 좋아하는 나에게, 이 게살 카푸치노는 환상적이었다. 한 스푼 한 스푼 마다 느껴지는 게살의 풍미와 깊은 버터와 크림의 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더할 나위 없이 찬란하게 맛있는 스프를 이 조그마한 도시에서 경험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이 레스토랑을 추천해 준 친구에게 경의를 표하며, 앞으로 나올 메인 음식들을 더욱더 기대하기 시작했다.



메인으로는 태평양 연안에서 이름을 좀 날리는 하얀 생선 중 하나인 하얀 속살이 매력적인 Halibut (넙치)와 꽃등심 스테이크 (Rib-eye Steak)를 시켰다. 구운 아스파라거스와 이탈리아의 만두 격인  '뇨끼(Gnocci)'를 깔고 정사각형 모양으로 바삭하게 구워 낸 넙치는 물론이고, 폴렌타 (Polenta: 옥수수를 끓여서 죽처럼 만든 것)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세지 중 하나인 초리소 (Chorizo: 약간 매콤한 돼지고기 소세지)를 추출하여 끓여낸 즙(au jus)을 얹고, 자연산 버섯을 구워 낸 후 얇고 길게 잘라 내 온 꽃등심 둘 다 애피타이저 만큼이나 훌륭했다. 내가 만약 요리 프로그램의 심사관이라면, 프리젠테이션과 맛, 창의성 모두에 만점을 주고 싶을 정도였다. 밴쿠버는 물론이고 미주 곳곳의 맛있다는 스테이크 집이나 맛집을 여러 곳에 다녀보았지만, 켈로나에 위치한 Raudz는 그 어느 레스토랑에 견주어도 밀리지 않을 정도의 퀄리티를 가진 최상의 맛집으로, 앞으로도 두고 두고 생각날 듯 하다.



생각지도 못한 대박을 터뜨린 첫날 밤이 지나고, 다음 날은 호텔 내의 수영 시설을 즐긴 후 와인 양조장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와인으로 유명한 오카나간 밸리에는 '오소유스 (Osoyoos)' 등 와인으로 유명한 도시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켈로나에서는 '미션 힐 와이너리 (Mission Hill Winery)'가 가장 유명한데, 그 곳 말고도 '그레이 몽크 (Grey Monk)'라는 와인 양조장도 잠깐 들러서 선물로 할 와인도 구입했다. 사진이 찍기 좋은 곳에 위치한 그레이 몽크에 가면서도, 셀 수 없이 많은 와인 양조장들이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와인을 좋아하지만, 화이트 와인이나 스파클링 와인을 마시면 늘 필름이 끊겨버리는 안습 DNA를 타고 난 나는, 눈물을 감추고 나 자신을 절제할 수 밖에 없었다.


호텔 수영장


미션 힐 와이너리는 가기 전 미리 와인 및 치즈 투어를 예약했다. 가격은 일인 당 40불에 세금을 더 하는 정도로, 중간에 사진을 찍느라 늦게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친절한 직원들의 안내를 받아 투어에 조인할 수 있었다. 시작할 때부터 역시 와인투어 답게 묘한 핑크빛 기류가 도는 로제 와인과 함께 드 넓은 와인 양조장의 역사와 시설을 살펴볼 수 있었다. 지하에 묵혀 둔 와인 숙성 저장고에는 떡갈나무로 만든 통에서 익어 가는 와인의 향으로 가득했고, 곳곳에 스며든 유구한 역사가 엿보였다. 투어는 세 가지의 와인과 세 가지의 치즈를 함께 맛 보는 걸로 끝이 났다. 투어 가이드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한 번쯤은 해 봐도 손해 볼 것 없을 것 같다. 물론 와인이 잘 받는 DNA를 타고 났다면 더더욱 좋을 것이다.


미션 힐 와이너리 (Mission Hill Winery)
그레이 몽크 와이너리 (Grey Monk Winery)


그렇게 많은 기대치를 안고 떠난 여행이 아니어서 그런지, 켈로나로 떠난 여행은 생각보다 만족도가 높았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영화를 보면 늘 어느 부분에서 실망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 다반사다. 예전에는 여행을 가기 전에 계획을 빡빡하게 해서 떠났지만, 요즘은 나의 여행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100% 알 수는 없다는 신조를 가지고 조금 여유로이 여행하려고 한다. 그런 여유가 있고 기대치가 그다지 높지 않을 때, 인생은 나에게 계획하지도 않았고 할 수도 없었던, 평생 동안 기억날 만한 레스토랑을 선물처럼 내려주기도 한다. 짧다면 짧은 2박 3일 동안의 밴쿠버 근교로 떠난 로드 트립이 또 하나의 좋은 추억으로 기억될 것 같아서 마음이 따뜻해진다. 앞으로 떠나는 여행에서도 또 어떤 새로움과 내가 계획하지 않은 즐거움을 발견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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