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면은 있어도 신은 없다.

노예의 시대

by 파레시아스트

부부의사는 고용했던 간호사의 독극물이 든 생일 음식을 먹고

고통속에 몸부림 치면서 죽어갔다.


법정을 떠나며 벌때처럼 둘러싼체

"남겨진 아들의 입장을 생각해 봤냐"는 어느 여기자의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 부모는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야. 부모 잘못 만난 죄야.

너도 그 벌을 받는 거구'


- 넷플릭스 '자백의 대가'의 모은(김고은) 대사로 부터 -





법의 나라에서는

죄를 지었으면 걸맞는 대가를 치뤄야 한다.


그러나 이 세상은 여전히 노예 시대다. 신노예 시대.

가난한 죄, 그곳에 태어난 죄, 그렇게 태어난 죄, 거기에 있었던 죄

나로 비롯되지 않았고 원치도 않았던 것이 죄가 되고 족쇄가 되는 세상이다.

잡혀온 노비에게처럼 인두자국을 내지 않았을 뿐.


한민족은 반도라는 이유로 외세에게 그토록 유린되었고

우리 부모는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죄로 평생 흙만 파먹고 살았다.

곱추로 태어난 죄로 평생 병신 대접을 받는다.

대신 위로의 장애수당을 손에 쥐어준다.


같은 하느님을 섬기는데 한쪽은 교주에게 갖다 바치느라 바쁘고

한쪽은 미사일 파편에 맞아 죽어 나가기 바쁘다.

그런데도 인간은 뭉개진 개미집의 개미처럼 꾸역꾸역 산다.

어쩌면 개미보다 못하다.


신은 없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과 예수가 있다면

그렇게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본인 때문에, 종교 하나로 죽이고 죽어나가는 걸 저렇게 지켜봐서는 안 될 것이다.

궤변이 논리가 되고, 흙먼지 같은 시간들이 거대한 역사가 되어 버리는

이 희한한 세상에서


부자, 가난한 자, 젊은자, 늙은자, 남자, 여자로

각자의 족쇄를 주렁주렁 달고 산다.


고단하고 배고팠던 오늘하루 살아온 나에게

힘을 주는 것은

신에 대한 귀의와 조건없은 믿음이 아니라.

한사발의 신라면이다.


만약 신이 있다면, 신! 너는 신라면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차가운 육지로 내려오너라.

그리고 영겁의 세월동안 인간의 무릎 아래서 사죄를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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