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그 늙어감이 준 훈장(?) 같은 시간을 대하는 나의 자세이다
여름이 오기 직전, 봄날의 정점에 서 있다.
비 갠 후, 아침이면 신선한 바람과 초록의 내음으로 기분이 상쾌해지고 푸른 향기가 바람에 날린다.
해가 중천에 뜬 오후가 되면 한낮의 열기로 몸과 마음까지도 나른 해진다.
공원 옆 집 창문을 열면, 바람에 실려온 부드럽고 달콤한(?) 꽃내음이 코를 간지럽힌다.
이제 반팔차림의 야외 계절이 돌아왔다.
오랜만에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 고향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아프신 노모의 안부도, 친지들의 긴급한 부름에도 그 나름 합당한 이유가 있다.
단지 지금은 마음속에선 그곳에 갈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미루었던 발걸음이다.
금전적 여유보다는 정신적 여유가 부족하기에 더욱 무거운 발걸음이다.
시골의 정경은 서울의 바쁜 시간과는 다르게 한적한 풍경과 그곳의 사람들의 발걸음이
느리게 느껴진다.
실제로 시간도 늦게 흐르는 듯하다.
그런 시간처럼, 노모의 병세도 그렇게 느리게 흘러갔으면 좋겠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어떤 철학자는 ‘시간의 흐름’을 이렇게 표현한다.
“시간이란 움직이지 않는 영원성의 움직이는 이미지이다”라고 하였다.
형이상학적 논지이기도 하지만 무슨 의미일까?
아직은 희미한 이해밖에 오지 않는 구절이다.
그보다는 왜? 나에게는 그 빠른 시간이 나이와 다르게 느끼는 것일까?
누군가 “시간을 대하는 자세는 다르기 때문이다”라고 도 한다.
그런데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고 하고선
그 말에 공감해서 무릎을 “딱”하고 시간과 세월에 대한 이해가 갔다.
어떤 심리학자가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삶, 그 인생을 강물과 달리기 시합에 비유한 것이다.
“젊은이, 청춘의 시기에는 강물보다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다고 믿기에 강물이 더디게 흐른다”
라고 느낀 게 된다.
세상의 중심에 선 “중년의 시기에는 그 시간의 달리기가 강물과 비슷한 속도 띠게 된다”라고 한다.
그리고 “노년의 시기에는 노쇠하여 숨 찬 몸이 강물이 너무 빨라 따라잡을 수 없다”라고 느끼게
된다”라고 한다.
결국 중요하건 "강물의 흐름이 주는 빠르기도 아닌 시간의 빠르기도 아닌 나가 느끼는 빠름에 대
한 마음가짐"이라는 의미이다.
시간과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빠르게 뛸 마음과 그 자세를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아닌가?
라는 의미인 듯하다.
세상의 거칠고 빠르게 변하는 급류 속에서 자신만의 가치와 의미부여를 세월의 속도를 거슬러
가야 하는 시기에 살고 있다.
다만 세월과 상관없이 자신이 선택하고 좋아하는 일이라면 그것만으로 좋을까!
남겨진 시간 속에서 자신만의 속도로 꿈을 향해 살아가는 것이다.
지난날을 그리워하지 않고, 내일을 생각하며 현재의 삶에 만족할 수 있는 게으른 즐거움을 즐길
여유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 마지막 남은 인생은 늘 꿈꿔왔던 ‘낭만 한량’으로 회귀하여 돌아갈 수 있을까!
그것 역시 삶의 즐거운 가치라면 한 편의 이 게으른 즐거움이 세상에 대한 포기이며 기만이라고
해도 좋다.
이게 세월이란 이름, 그 늙어감이 준 훈장(?) 같은 시간을 대하는 나의 자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