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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Jul 20. 2024

여름날, 최고의 피서는
다락방이 만든 '그늘 샤워'

그 시절, 소나무 향기가 부는 ‘바람 샤워’가 그립다

나와 여름날의 피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내 여름날의 피서는 고향집 다락방 그늘에서 시작하여 추억의 그늘로 끝난다.

올해도 역시 잊힌 기억으로 찾으며 여름이면 찾는 시골 고향집으로 향한다.

그 집엔 통창 달린 다락방엔 추억 서린 여름날의 '그늘 샤워'가 숨겨져 있다.

바람이 불러준 시원 달콤한 ‘낮잠 샤워’,

수박을 화채로 한낮에 이른 간식으로 먹는 ‘입안 샤워’,

역시 여름날의 최고 피서는' 솔바람 향기가 주는 그늘 샤워’ 


다락방 건너 아득히 보이는 샛길 밑엔 한낮 땡볕 열기에 아스팔트가 녹아내리고, 

늘어선 주변 가로수는 지열을 견디지 못해 나뭇잎은 이미 누렇게 변한다. 

건너편 공터엔 검은 구름이 몰려와 후두두 빗방울을 쏟아내면 끓는 물에 데쳐낸 듯 온갖 식물들이 늘어진다. 

매미 떼의 합창으로 시끄럽던 숲은 갑작스러운 장마 비가 그친 뒤, 습지가 된 공터 구석엔 맹꽁이 울음소리가 잡초더미를 들썩인다. 

길가엔 불볕더위 속에서 훌쩍 자란 텃밭의 옥수수 대에 어느덧 통통해져 붉은 옥수수가 수염을 늘어뜨린다.
  

여름날, 고향집의 피서는 이러했다.

이층 집이 드물던 그 시절에는 이층 같은 내 다락방에는 누구나 오고 싶어 하는 곳이었다.

조금만 높은 곳에 올라가 있어도 신기해하던 시절엔 언덕 위에 지어진 이층보다 높았던 내 다락

방은 누구에게나 동경의 대상이었다.

허술한 사다리를 밟고 올라가 턱 하니 자리 잡으면 눈앞에 펼쳐진 세상이 온통 내 발아래 있는 

것처럼 짜릿했다.


조금 멀지만 통창 넘어 건너 집 아이의 낮잠도 달아 보인다. 

사방이 툭 터진 대청마루에서 자는 낮잠이 얼마나 시원하고 달콤한지 아이는 세상일 나 몰라라 단잠에 빠졌다. 그 사이 다락방 건너엔 너른 수박밭과 참외밭에서는 아기가 낮잠에서 깨기 전에 일을 마치려고 엄마는 땀을 흘리고 있다.

 에어컨은 물론이요 선풍기도 부잣집이 아니면 없었던 그 시절엔 맞바람이 통하는 언덕 등성에 있는 이층 

다락방은 최고의 피서지였다. 

친구들과 하교 길에 이곳에서 빌려 논 만화책과 무협소설들을 탐닉했다.

그리곤 잠시 피곤을 벗 삼아 오수도 즐기곤 했다.

한쪽에 놓인 두툼한 이불이 말해주듯 한밤중에는 제법 서늘하기까지 했다. 

다락방엔 그 시절의 낭만만 가득했던 동화의 세계가 존재했다. 


엄마의 “밥 먹어라”라는 하는 소리에,

친구들과 콩국수에 채선 오이 고명, 보기 드문 계란 한 개에 코빠트리고 먹었던 기억이 즐겁다.

저녁이면, 밖으로 낸 사다리로 나무 대청마루를 앉아서 쑥으로 모기를 쫓으며 수박 한 통 쪼개 먹

이며 밤늦게까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 무더위도 쫓으며 함께 본 하늘 별자리는 추억으로 남

는다. 

노을을 지나 밤이 깊어가면 반딧불이 군무를 춤추는 아름다운 여름밤은 허투루 보내기 아까웠다. 

거기에 오랜만에 친구가 가져온 잘 익은 검푸른 ‘포도’ 송이를 곁들인다.

달고 시다. 짙은 녹색이 번갈 새겨진 수박은 달고 곁들인 노란 참외도 달다. 

지금이야 에어컨 바람이 써늘한 고층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그때의 어둠이 내린 밤기온은 서늘함은 이젠 다시 느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다들 피서를 떠나 텅 빈 도시를 홀로 지키며 점심에는 채 썬 오이를 고명으로 얹은 콩국수라도 먹으면 입맛이 돌아올까? 

저녁엔 모처럼 감자에 애호박을 썰어 넣은 수제비를 먹고, 남은 가족과 둘러앉아 입가심으로 수박화채라도 

먹어 볼까!

그래도 여전히 여름날의 피서는 '솔바람이 부는 다락방의 그늘 샤워'가 최고였다. 

장마 비에 젖고, 더위에 찌든 땀방울은 사라지고 남은 건 서늘한 기억들이다.

이젠 그런 기억도 세월과 함께 사라지고 없어지고 있다.

한없이 젊기만 했던 청춘의 기억은 이층 다락방이 만든 ‘여름날의 그늘 샤워 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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