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

교육자는 언제나 을

by 정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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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시작됐다. 당신에게만. 지금껏 스쳐 지나갔던 수많은 이들처럼, 이루어지지 않는 미루어짐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사랑이. 그렇게 비극적 운명이 시작된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게 만들어야만 하는. 그러기 위해 ‘나’를 위하지 않고, ‘너’를 위하게 되는. 절대로 네가 될 수 없지만, 네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원할 지를 생각하는. 너는 관심 없다고 하지만, 어떻게든 너도 나를 좋아하게 만들고 싶은. 그래서 네가 나를 믿어, 결국에는 서로가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는.

그렇다. 교육은 교사의 학생에 대한 짝사랑으로부터 시작된다. 학생에게는 그저 수많은 교사 중 한 명에 불과하지만, 교사는 정말로 아이들을 성장시키려면 그들을 사랑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라는 사람을 구성해왔던 경험들에 의한 믿음과 감각들을 버리고, ‘너’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니까. 그렇게 ‘너’의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을 네게 건네면서 나를 믿고,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니까. 그런데 짝사랑의 상대방이 그러하듯, 학생들은 교사를 이해해 주려고 하지 않는다. 조금만 그들이 생각하는 ‘교사상’을 벗어나도, “그래도 선생님인데..” 그리곤 그들의 마음은 이미 떠나 있다. 학부모들은 더 하다. “이래서 믿을 수가 없다니까!” 뒷담화가 조성되고, 어느새 교사를 왕따로. 교사도 정말 여러 사정이 있지만, 그것은 그저 교사 사정. 학생들은 오로지 자기 사정에만 관심 있으니까. 그런 학생들의 사정을 교사인 나는 전부 이해해 줘야만 한다. 짝사랑이니까. 사랑하기에 을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때론(사실은 매번) 상처받고, 포기하고 싶다.

해서 교육은 당신이 원하지 않았던 짝사랑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새 학기의 시작, 때로는 예기치 못한 누군가의 불행, 때로는 불쑥 찾아온 연민으로부터 시작되는. 어쨌든 누군가가 교사인 나의 마음에 들어오면, 짝사랑은 시작되어 버리니까.

그리고 모든 짝사랑이 그러하듯, 이미 시작됐다면 그 사랑은 서로가 사랑하기를 바랄 수밖에. 특히 교육적 사랑은 결국 서로가 사랑할 때만 학생이 성장할 수 있으니까. 해서 우리는 학생으로 하여금 우리를 사랑하게 만들려고 한다. 그런데 그게 쉬운가? ‘나는 이렇게 까지 했는데, 도대체 얘들은 왜 이런 거야?’라는 생각을 버리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그들의 간단한 듯 복잡한 마음을 헤아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그리고 계속되는 좌절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해서 대부분의 짝사랑이 실패하듯, 대부분의 교육은 실패로 끝난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쌓여간 짝사랑의 실패 경험을 바탕으로 ‘적당히 포기할 줄 아는 어른’이 된다. 그렇게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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