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모호함, 숭고함, 역설

못 참고 올리는 리뷰(스포 있음)

by 정준민

1. 피의자인가 수사관인가(모나리자 변용)

청록색이란 단어는 청색과 초록의 합성어이다. 햇빛에 따라, 보는 각도에 따라 청색으로 보이기도 하고, 녹색으로 보이기도 하는. 이런 청록색의 모호함과 양가성이 이 영화를 관통하는 테마가 된다. 어떤 관점으로 캐릭터를 보느냐에 따라 캐릭터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마치 루브르의 모나리자 얼굴이 보는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것처럼. 그렇기 때문에 <헤어질 결심>의 인물포스터는 이 모나리자를 적극적으로 변용한다.

<헤어질 결심> 인물 포스터

스토리적으로는 어떻게 표현될까?

범죄 스릴러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당연히도 피의자이자 범죄자는 서래이고 수사관은 해준이다. 그러나 멜로의 관점으로 보자면 피의자이자 범죄자는 해준이 되고, 수사관은 서래가 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서래의 행동은 범죄 스릴러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잔혹한 범죄행위이다. 그러나 이포에서의 범죄행위는 멜로의 관점으로 보자면 수사관으로서 해준의 마음을 조사하기 위한 수사이다. 해준은 나를 사랑하는 게 맞을까? 붕괴된 해준은 아직도 나를 사랑하는 게 맞을까?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한. 하지만 그녀의 수사는 해준이 고백했다고 생각하는 부산에서의 마지막 멘트를 해준이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에서 종결된다.

해준 왈 “제가 언제 사랑한다고 했죠?”


그 말을 듣고 서래는 수사의 결과를 다음과 같이 발표한다.

“당신이 사랑한다고 말할 때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 때 내 사랑이 시작됐다.”


하지만 서래는 수사의 종결을 해준이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말로 전한다. 표면적인 이유는 한국말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수사의 결과가 보고 싶지 않은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지만, 더 이상 나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진실.

그렇게 서래의 수사는 종결되었지만, 그녀는 해준에 대한 마음을 접고 싶지 않다. 오히려 그녀의 사랑이 붕괴되지 않은 채로 영원히 남길 바란다. 해준의 마음속에 해결되지 못한 미결사건으로서. 그렇게 스스로를 깊은 바다에 버린다. 아무도 못 찾는 미결사건으로 해준의 마음에 남을 수 있도록.

이제 해준은 멜로의 관점에서 피의자가 아닌 범죄자로 확정된다. 다른 어떤 관점도 고려하지 않은 채로 자신을 사랑한 서래와 달리 경찰로서 품위가 붕괴되었다는 핑계로 안개가 자욱한 이포로 숨어들었기에 유죄가 된 것. 힘을 안 주어도 흐트러지지 않고, 몸이 꼿꼿할 수 있는 서래와 달리 애써 경찰로서의 품위를 지키기 위한 해준의 선택이 서래를 죽음으로 몰았기에.

2. 누가 숭고한가(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변용)

서래의 자살은 가히 숭고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칸트에 의하면 "숭고한 것이란 그것과 비교할 때 다른 모든 것이 작게 느껴지게 만드는 것"이다. 서래에게는 해준과의 사랑이 너무 숭고하기 때문에 심지어 자신의 목숨조차도 너무 작게 느껴져 자신의 죽음을 통해 해준과의 사랑을 영원한 미결사건으로 남기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그에 비해 해준은 사랑 이외에도 경찰로서의 품위 또한 중요하다.

숭고함을 쫓는 사람과 숭고함을 쫓지 못한 사람의 시선이 마주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항상 파국일 수밖에. 그래서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의 숭고함을 표상하는 남자는 <헤어질 결심>의 해준으로 변용되며 이미 깊은 바다에 던져진 서래를 찾고 있을 뿐이다. 또한 역설적으로 깊은 바다에 자신을 던진 서래는 오히려 숭고함의 표상이 되어 안개 바다 ‘위’의 진정한 방랑자가 되었다.

<헤어질 결심> 메인 포스터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3. <헤어질 결심>의 역설적 의미


표면적으로 헤어질 결심의 의미는 영화에서 딱 한번 언급되듯이 '해준이 붕괴되어 나를 떠났으므로, 나(서래)도 해준과 헤어져야겠다는 결심을 했다'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영화의 결말을 보았을 때, 서래는 자살로서 해준과 헤어질 결심을 관철시킨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박찬욱은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를 변용함으로써 서래가 바다 아래로 침수하는 '하강'의 이미지가 역설적으로 사랑을 숭고한 태도로 쫓는 안개 바다 위의 서래로 표현되는 역설적인 내러티브를 완성하였다. 이러한 역설은 마찬가지로 <헤어질 결심>이란 제목의 의미에도 그대로 활용된다. 왜냐하면 서래가 자살 한 이유는 역설적으로 해준과 헤어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영원히 해준의 마음에 미결사건으로서 남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헤어질 결심이란 제목의 이면의 의미는 '물리적 공간에서는 해준을 떠나지만 해준의 마음 속, 즉 심리적 공간에서는 미결사건으로서 영원히 남겠다는 결심'으로 볼 수 있다.

부산을 배경으로 한 1부 구조에서 서래는 해준에 의해 '마침내'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모두 이별을 겪게 된다. 따라서 이포를 배경으로 한 2부 구조에서 서래가 다시 해준의 마음을 수사하면서, 최종적으로는 심리적인 공간에서라도 미결사건으로서 영원한 사랑을 완성하고자 한 것은 그녀의 사랑이 얼마나 숭고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헤어질 결심이란 제목을 역설적인 메타포로 완성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청록색이라는 모호함의 상징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이야기 안에 완벽한 역설을 디자인한 박찬욱님에게 존경심이 들었다.


#헤어질결심 #박찬욱 #탕웨이 #박해일 #모나리자 #안개바다위의방랑자 #역설

keyword
이전 11화사회 해방적 관점의 전환학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