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를 조금 줄여가던 시기,
악기와 운동을 배워보기로 했다.
대단한 열정이라기보다
그 또한 또 다른 치료의 목적이었다.
두뇌 회전에 좋다고 해서 악기를,
약한 체력을 보강하려 운동을 시작했다.
하랑이는 3년 동안 태권도를 배웠다.
처음에는 즐겁게 다녔다.
하지만 국기원 심사를 앞두고
품새암기도 수련도 힘들다며
엉엉 울다가 결국 그만두었다.
학교 근처 피아노 학원.
느린 아이도 천천히 가르쳐 주겠다던 원장이었다.
어느 날 하랑이는 학원에 나타나지 않았다.
화장실에서 휴대폰을 보다가 시간을 놓친 날이었다.
학원은 아이가 오지 않았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곳에서
하랑이는 배움도, 보호도 받을 수 없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학원을 그만두었다.
원장은 별다른 질문도 하지 않았다.
방과 후로 시작한 바이올린.
청각이 예민한 하랑이는
바이올린 소리를 힘들어했고
팔의 움직임도 느리고 뻣뻣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역시 손을 놓았다.
그리고 하랑이가
마지막으로 배우고 싶다던 첼로.
피아노 학원의 일을 듣고
기꺼이 아이를 맡아주겠다고 한 선생님이었다.
나는 조금 기대했다.
1년 가까이
아이는 단계를 넘을 때마다 힘들어했다.
결국 그 선생님도 말했다.
“이 아이는 저보다 더 잘 가르칠 선생님께
가야 할 것 같아요.”
허탈했다.
화가 나지도 않았다.
그냥 허탈했다.
선생님들이 애쓰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걸 안다.
그런데도 아이는
결국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못 배운다기보다
기회가 없다는 느낌이었다.
악기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고학년이 되어
학습 학원에 도전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하랑이를 끝까지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아이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그리고
나도 그 문 앞에서 조용히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