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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이여! 이젠 안녕!
13화
늙어가거나 성숙해가거나
나이들어가는 나를 격려하며
by
꿈꾸는 덩나미
Jun 16. 2025
나
는 동안이다.
사람들이 그랬다.
보통 10살 아래로 보기는 예사였다.
하지만 나는 동안이라는 말보다는 예쁘다는 말이 더 좋았다.
그런데 아무도 나에게
“너 참 예쁘구나”
라고 말해 주지 않았다.
가끔
“귀엽구나”
라는 말은 들어본 것 같다.
덕분에 나는 내가 예쁘지는 않지만 늙지 않는 신비한 얼굴인 줄 알았다.
처녀 때는 너무 몸이 말라 사람들이 아기를 낳을 수 없다느니 약을 해 먹어야 한다느니 말이 많았다. 그래서 정말 아기를 낳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결혼을 고민하기도 했다. 그런데 살이 찌지 않고 마른 몸이 얼마나 좋은 건지 나중에 알았다.
사람들은 일부러 다이어트니 지방흡입술이니 뭐니 한다는데
실컷 먹어도 살이 찌지 않으니 얼마나 좋은가.
아들이 둘인 30대 후반에는 미혼인 줄 알고 소개팅이 들어오기도 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동안인 내 얼굴에 대한 자부심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
애 띤 얼굴이 나의 무기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사람들이 10살이나 아래로 볼 때마다 나의 옷차림이나 행색도 점점 어려졌다.
심지어는 아이들의 고모나 이모로 보는 사람도 생겼다.
아이들과 길을 걸을 때 아는 이들과 마주치게 되면 서너 발자국 떨어져 오게 하고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도록 했다. 아이들도 나도 그런 생활을 은근히 즐겼다.
그랬던 내가 마흔 후반이 되면서 조금씩 몸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설마 나잇살이란 게 나에게도 해당이 될까 했는데
눈에 보이지 않게 몸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옷들이 몸에 끼었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살을 빼서 입어야지 하면서 장롱 구석에 보관해 두었다.
몇 년간 쟁여 두었던 옷은 점점 짐이 되었고 어느 날 큰맘을 먹고 정리를 하게 되었다. 모두 헌 옷 수거함에 쑤셔 넣고 나니 나이든 내 모습이 인정되었다.
쉰 중반이 되어 갱년기가 찾아왔다.
평생 거추장스럽게 여긴 생리가 끊어졌다. 아쉬운 마음보다는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다.
부산에 사는 ㅇㅇ 이는 나보다 여섯 살이나 어린 친구다.
그녀는 내가 조금만 몸이 아프다 하면 갱년기라 그런 거라고
몇 년 전부터 귀가 따갑게 이야기를 했다.
그 말이 그렇게 듣기 싫어 아파도 내색 한번 못 하고 꾹 참았던 기억이 났다.
그런데 그 갱년기가 드디어 나에게 찾아왔다.
사춘기보다 무섭다는 갱년기를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어떤 사람은 가슴에 열불이 나고 얼굴이 화끈거리고 불면증에 시달리고 호르몬의 변화로 성격까지 바뀐다는데... 조금은 두려운 마음으로 나에게 일어날 변화를 기다렸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났다.
무릎이 조금 아픈 것 같기는 한데 그다지 변한 건 없었다.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잠이 들었고 차가웠던 손발은 적당히 따뜻해졌고
신경질적인 성격은 오히려 온화해졌다.
ㅇㅇ에게 전화를 걸어 나의 갱년기 소식을 전했다.
“축하해. 당신이 그토록 기다리던 나의 갱년기가 시작됐어.”
그녀는 큰 소리로 웃으며 “정말요? 축하한다고 해야 하나? 어찌해야 하나?”
“당신도 머잖아 올 거야. 조금만 기다려봐.”
나는 그렇게 웃으며 갱년기를 맞이했다.
내가 거부한다고 해서 안 올 갱년기도 아닌 바에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자궁은 이제 제 기능을 멈추고 쇠퇴할 것이고 피부도 탄력을 잃어 가겠지.
면역력도 점점 떨어져 찾아오는 병균들을 이기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늙어간다는 것이고 나이 들어간다는 신호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갱년기가 서서히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내가 극히 혐오하는 일이 나에게 일어난 것이다.
지난 주말에 남편과 함께 강아지를 데리고 동네 개천가로 산책을 갔다.
조금 요의가 느껴져 화장실에 다녀왔어야 했는데 귀찮아서 그냥 나가 버렸다.
이 정도는 충분히 참고 산책을 다녀올 수 있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걸으면 걸을수록 점점 불편해지고 급기야 다리를 꼬고 몸을 비틀게 되었다.
그런 내 속도 모르고 강아지는 보이는 곳마다 영역표시를 해 대었다.
그걸 보니 더 소변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그런데 하필 우리가 걷고 있는 강둑을 향해 아파트가 줄지어 서 있었다.
아직 쌀쌀한 날씨에 거실 베란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누가 우연히 강둑길을 보고 있을 수도 있어 참아 보려고 애를 썼다.
내 속도 모르는 남편은 강아지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장난을 쳤다.
남편에게 “여보! 화장실 가고 싶어. 화장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주저 없이 엉덩이를 드러내고 말았다.
당황한 남편이 “여보!!” 하고 소리를 질렀지만 나는 이미 볼일을 보고 말았다. 어쩔 수 없었다. 바지에 싸는 것보다는 나을 듯했다.
부끄러움도 모르는 여편네!!
스스로 얼마나 비난의 화살을 쏘았는지 모른다.
나도 이런 내가 한없이 창피하고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이 망할 놈의 갱년기!!
남편은 다음부터는 우산이라도 들고 다니자고 말을 했다.
그 이후로 집 밖을 나설 때는 꼭 화장실부터 들리는 습관이 생겼다.
지금도 갱년기는 나의 신체의 활동을 떨어뜨리고 몸의 각 기관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어느 날 거울을 보는데 눈두덩이 위가 살짝 접히더니 주름이 생기기 시작했다.
피부가 건조해지는 걸 느꼈지만 게으르기도 하고 직장이 집 옆이다 보니
그다지 보습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코로나로 인해 오랫동안 마스크를 낀 습관에 피부관리에 게을러진 탓도 있었다.
친구들은 이미 쌍꺼풀 수술도 하고 주기적으로 보톡스를 맞는 친구도 있었고
시술도 하였다는 소리를 심심치 않게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들은 동안이라 자랑한 나보다 훨씬 더 젊어지기 시작했다.
돈과 의학의 위력은 엄청났다.
나의 노화는 치아로부터 시작된 것 같다.
치아를 빼고 난 후 얼굴의 형태가 조금씩 변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결국은 주름살이 생겼다. 이제는 돋보기를 껴야 책을 읽을 수 있다.
세월은 나를 비껴갈 마음이 전혀 없나 보다.
이제는 더 이상 동안을 자랑하지 않는다.
나의 나이 들어감을 자랑하고 늙어감을 자랑한다.
그것이 무슨 자랑거리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이 나이까지 버티고 견디어 온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
누군가 이 세상에 가장 공평한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한다면 그것은 늙음이고 나이가 드는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길이 아닌가?
부자라 해서, 많이 배운 사람이라 해서, 인류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봐 주지 않는다. 모두에게 똑같은 시간을 적용하고 늙음을 선물한 후 죽음을 겪게 한다.
이것이 없었다면 나는 신을 많이 원망했을 것이다.
미스코리아처럼 아름다운 사람이 늙어서 우리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면 위로가 된다. 평소에 똑똑하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늙어 한 줌 흙으로 돌아가니 얼마나 다행인가. 재벌이라 하는 이들도 죽을 때는 빈손으로 가게 되니 공평하다고 할 수밖에.
어떤 이는 늙어가는 게 아니고 성숙해가는 거라고 말하지만 그 말이나 이 말이나 똑같은 의미이다. 늙어간들 어떠하고 성숙해간들 어떠하랴!
정해진 길이라면 즐겁게 걸어갈 수밖에.
나는 어릴 때 무슨 마음에서인지 오래 살고 싶지 않다고 신에게 기도를 드린 적이 있다.
한 예순이나 그 중반까지만 살고 싶다고 했던 것 같다.
신께서 이 기도에 대하여는 어떻게 응답하실지 궁금하다.
내 기도를 그대로 응답하신다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100세 시대라는데 너무 빨리 데려가 달라고 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서 하루하루를 허투루 쓸 수가 없다.
아침에 눈을 뜨면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저녁에 잘 때는 하루를 잘 살았음에 감사한다.
내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라는 성경 말씀이 요즘 마음에 와닿는다.
그래서 내일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으려 애쓴다.
이제 쉰하고도 아홉 번째의 봄을 맞이한다.
젊어서는 그렇게 가지 않던 시간이 이제서야 탄력을 받았는지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나에게 몇 번의 봄이 더 남았을지 모르지만
견디고 버티면서 하루하루를 잘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누구보다 잘 늙어갈 것이다.
그 끝에 기다릴 죽음과도 사이좋은 친구가 될 것이다.
더없이 화창한 봄날이다.
(어느봄날 휘적휘적이며 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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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끼적거리며 내 마음의 실타래도 같이 풀어놓습니다. 아무래도 말보다는 글이 편한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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