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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이여! 이젠 안녕!
18화
빨간 플라스틱 의자
빨간플라스틱의자 주인을 추억하며...
by
꿈꾸는 덩나미
Jun 1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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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골목을 어슬렁거린다.
낡은 빨간 플라스틱 의자 하나가 덩그러니 서 있고
군데군데 금이 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간 모양새가 애처롭다.
한때는 튼실하고 예쁜 모양이었겠지.
그녀가 지팡이 걸음으로 골목에 나온다.
서너 걸음 걸었는데 몸속 어딘가에서 휘파람 소리가 난다.
비틀거리며 빨간 의자에 몸을 실으면
의자는 온 힘을 다해 버틴다.
그녀는 관람석에 앉은 관객처럼
두어 시간 거뜬히 앉아 세상 영화를 즐긴다.
짐 보따리를 이고 지나가는 아낙네들을 보며
“장에 가나?”라고 묻기도 하고
흙먼지 날리며 자동차가 지나가면
뉘 집 자식일까 관심을 보이다가
이내 시선은 도로 끝을 서성인다.
전선 줄에 앉은 까치가 꺅~깍 소리를 내면
행여나 지 서방 따라 멀리 이사 간 딸년이 오려나?
몇 년간 발길 끊은 작은 아들 내외가 오려나?
그리움이 파도처럼 굼실거리면
가슴속 어딘가에서 또다시 휘파람 소리가 난다.
지팡이로 훠이~ 훠이~ 까치를 쫓다 보면
미동 없는 새들이 그녀를 조롱한다.
해그림자가 꼬리를 늘어뜨리면
그녀는 한숨 같은 휘파람 소리를 내며
다시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빨간 플라스틱 의자는
남은 그녀의 온기를 주섬주섬 주워 담는다.
이제는 오지 않을 것을 빤히 아는 듯.
그것이 그리움이었는지
한숨이었는지
슬픔이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빨간 플라스틱 의자만이 알고 있다.
어머니는 대문 앞에 놓인 빨간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기도 하고 무료한 시간을 보내시기도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빨간색은 분홍빛을 띠기 시작했고 의자 한쪽 다리가 금이 가 가끔 제 역할을 할지 불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어머니는 넘어지지 않게 요령껏 잘 앉았다.
지금도 어머니가 빨간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잘 가래이~운전 조심하고.”하며 손을 흔들어 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머니 가신 후 그 의자도 버릴까 망설이다가 그냥 두기로 했다.
누구든 한 번씩 쉬었다 가도 되겠지 싶어서.
나도 어머니가 앉았던 그대로 한번 앉아 보았다.
집 앞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보였다.
어머니는 여기 앉아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딸이 오기를 기다렸을까?
보고 싶은 둘째 아들 가족들을 기다렸을까?
어머니가 내뱉은 수많은 한숨이 느껴졌다.
세월의 야속함을 의자에 남겨 놓은 채 어머니는 떠나셨다.
이제 의자의 주인은 없다.
의자도 머지않아 폐품으로 버려지겠지만 어머니가 그리울 때는 그 의자에 앉아 볼 수 있어 너무 좋다.
어머니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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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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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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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끼적거리며 내 마음의 실타래도 같이 풀어놓습니다. 아무래도 말보다는 글이 편한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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