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랜만에 수육을 삶아 가족과 함께 먹을 생각에 콧노래를 부르며 이른 저녁을 준비했다.
그때 시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형은 뭣하요? 왜 전화를 안 받는다요?..."
"산에 갔다 와서 피곤한지 자고 있네요."
"지금 엄마가 돌아가셨대요."
"네? 무슨... 형 깨울게요."
시동생의 목소리는 조금 떨렸고 평정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게 느껴졌다.
나는 끓이던 수육의 불을 끄고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오랜만에 하늘은 더없이 푸르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기분이 좋았는데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은 우리를 당황하게 했다.
남편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에 깊은숨을 들이쉬고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뜨거운 김이 펄펄 나는 수육을 냉장고에 집어넣자마자 아들이 현관문을 들어섰다.
할머니의 부고 소식을 알리고 각자 간단히 가방을 챙겨 서둘러 집을 나섰다.
우리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사실이 아니길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운전은 두 아이에게 맡기고 남편은 전화기로 부고 소식을 알리며 동생들에게 이것저것 할 일을 알려주었다.
갑자기 주말의 모든 평화는 깨지고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어머니의 부고였다.
나의 시어머니는 평생에 자식밖에 모르고 사신 분이셨다.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친척 집을 전전하며 사시다가 초혼에 실패한 남자의 두 번째 아내가 되어 가난한 살림을 도맡아 여섯 남매를 낳아 키우셨다.
그 작은 몸으로 산으로 들로 쫓아다니시며 무던히 고생하셨던 어머니셨다.
남편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시아버지는 술 좋아하시고 노는 거 좋아하는 한량이셨다.
그런데 술만 드시면 어머니를 향한 폭력이 말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6남매는 또 어떻게 낳으셨는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평생 억눌린 마음의 병이 치매가 되었고 몇 번씩이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셔서 어쩔 수 없이 요양원에서 남은 삶을 사셨다.
큰아들인 내 남편을 아들처럼, 남편처럼, 친구처럼 의지하고 사신 시어머니.
그 어머니께서 갑자기 돌아가신 것이다.
이상하리만치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다른 집에서 초상이 나도 펑펑 우는 내가 막상 내 시어머니의 죽음 앞에 눈물이 나지 않았다.
뭔가 착오가 생겨 잘못 연락이 온 건 아닐까 싶었다.
꿈인지 생시인지조차 구분이 가지 않은 채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장례식장에는 빨리 도착한 형제들이 어수선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집에서부터 가지고 간 어머니의 사진을 제단 위에 놓고 보니 새삼 환하게 웃고 계시는 어머니의 고운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미소가 어쩜 저리 고우시지? 살았을 때보다 더 고운 어머니의 사진을 보고 감탄이 나왔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사진 속 어머니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맞추시는 것 같았다.
장례식 내내 우리 곁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장례식을 진행한 목사님은 어머니와 일면식도 없었지만 모든 순서에 정성을 다하셨다.
덕분에 눈물이 나다가도 목사님이 말씀을 선포하시면 다시 눈물이 쏙 들어갔다.
아무래도 어머니께서 우리가 우는 것을 원치 않으시는 모양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발인이 있는 새벽에는 일찍 형제들을 깨워 밥을 먹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정 사진 앞에 모여 어머니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장례식장에서 사진을 찍는 이가 흔하지는 않을 터이지만 우리는 마지막 기념사진을 남기기로 했다.
팔십 평생을 사셨는데 그 삶을 마무리하기에 2박 3일이면 족했다.
그랬다.
그날따라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얼마나 예쁜지 그렇게 느껴지는 나 자신이 민망했다. 시어머니를 보내 드리는 마당에 며느리가 하늘을 보고 감탄을 하다니. 조금이라도 어머니의 죽음을 추도한다면 슬픔과 회한으로 침통해야 하는 게 아닌가.
이렇게 슬픈 날 이렇게 화창하고 예쁜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어머니는 한 줌의 재가 되어 평생 사신 섬진강 옆 언덕에 그 육체를 누이셨다.
그리고 그 영혼은 하늘 어디엔가 그 주인에게로 돌아가셨다.
장례식을 다 마치고 어머니가 생활하셨던 요양원에 떡을 사 들고 인사를 드리러 갔다.
그동안 어머니를 돌봐주셨던 선생님이 유품이라며 종이가방 하나를 내밀었다.
속물인 며느리는 유품이라는 말에 그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종이가방 안에는 어머니의 틀니 하나와 실내에서 입던 조끼 하나가 들어 있었다.
실망감이 살짝 스쳐 갔다. 남편과 눈이 마주쳤다.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시선을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