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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Oct 27. 2022

가을 이별은 더 아프다

그날따라 유난히 햇살이 환하고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다. 야트막한 산에 고조곤히 자리한 그곳에 오르니 황금빛 물결이 넘실대는 너른 들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작은 저수지가 보인다. 산새나 들짐승들이 여유로이 목을 축이고 농부들을 위한 귀한 물줄기 노릇을 하는 곳일 것이다. '참 터가 좋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오랫동안 아들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머문 덕분에 유택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고 영산홍 나무도 나른한 표정으로 졸고 있다.


차라리 이런 날은 하늘이 흐리면 좋을 텐데라는 쓸데없는 생각이 스친다. 그녀를 떠나보내기에는 어쩌면 화창한 날씨가 여러모로 더 좋을 것이다. 장지로 떠나는 날 비까지 내리면 더 우울하고 슬퍼질지도 모르는데 괜히 맑은 날씨 탓을 해볼 뿐이다. 이내 먹물 번지듯 떠난 그녀의 마음으로까지 번지고 만다. 이렇게 좋은 날 떠나는 그녀의 발길은 얼마나 무거울까. 사랑하는 자식들과 친구들을 뒤로하고 또 다른 세상으로 가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주말에 동료의 장례식장에서 서너 시간을 보내고 발인에 갔다가 어쩌다 보니 장지까지 가게 되었다. 장례식장은 익숙한데 새로운 사람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 묘소의 광경은 늘 낯설고 어색하다. 한쪽에서는 어떤 이를 떠나보낼 작업을 하고 한편에서는 물컹하게 익어 제맛이 나는 소고기 뭇국으로 허기를 채우며 농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태어날 때 이미 떠날 것을 예비하고 만남 또한 이별을 수반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별은 늘 힘들고 아픈 일이다. 상대방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일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자연의 순리이니 고집 피우거나 안된다고 거부한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뿐.


오랜 병고 기간을 거치고 난 후에 이뤄진 장례일 경우는 가끔 가족들의 얼굴에 안도감이 서린 것을 보기도 한다. 왜 안 슬퍼 보이지 않을까 의문을 갖기도 하지만 그동안 많이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흔히 우리 세대를 낀 세대라고 말한다. 부모를 봉양하지만 자식한테 봉양을 받기는 어려운 세대라는 뜻이다. 나를 키워주신 부모를 책임지는 일이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은 어느새 구태의연한 구닥다리 사고방식이라고 여긴다. 나 또한 아이들에게 우리 노후는 알아서 책임질 터이니 손만 벌리지 말라고 공공연히 말한다. 혹여 기대를 했다가 실망할지도 모를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상처받지 않기 위해 미리 쳐놓는 방어막일지도 모르겠다. 


  이별과 가장 잘 어울린다고 여겼던 가을. 야위어 홀쭉해진 잎새를 떨구며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처럼 미련 없이 훌훌 털어버리고 떠나는 일이 가장 좋은 시기라고 믿었던 시간. 하지만 가을에도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은 아픈 듯하다.  아니 여느 계절보다 더 힘들 것 같다. 사방이 다 이별로 뒤덮여있는데 사랑하는 이까지 보내야 한다면 이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오래도록 삶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있던 그녀가 행복하게 떠났기를 그리고 햇살이 좋은 가을날 그녀를 떠나보낸 가족들의 마음이 덜 아프기를 기도할 뿐이다. 가을 이별은 더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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