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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Oct 28. 2022

'시'를 쓰세요

어느 가을날 이야기

오전 10시경 전화벨이 울린다. 몇 년 전 문학 특강에서 만난 뒤로 SNS로 소통하고 있는 시인이다. 웬일일까 싶어 전화를 받으니 대뜸 점심 식사가 가능한지 묻는다. 선약이 있어 어렵다고 했더니 강연을 가는 길에 경유지여서 얼굴도 볼 겸 들를까 했다는 설명이다. 쉽지 않았을 연락일 텐데 거절하고 나니 마음이 불편해져 이내 만나기로 했던 지인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시 전화를 걸어 점심 약속을 정했다. 


식당 주차장에 도착하니 차 한 대가 온몸을 열어젖히고 있다. 가을 햇살을 들이려는 것일까. 세상의 생채기들이 붙어있는 그 곁에 여전히 마른나무 같은 그가 서 있다. 반가운 표정으로 다가가 인사를 나누고 악수를 한다. 몇 년 만에 만남인데 별로 어색하지 않다. 겨우 한번 만났음에도 그가 나를 기억하는 이유는 '딸기'때문이다. 처음 만나던 날, 마침 제철인 딸기 생각이 나서 챙겨갔었는데 그 이후로 딸기를 보면 내가 떠오른다는 것이다. 


자연스레 이야기는 '글쓰기'에 대한 내용으로 이어졌다. 특히 '시'에 관심이 있다는 말에 놀라워한다. 세계에서 가장 시인이 많은 나라, 그만큼 쓰기에 대한 욕구가 있는 사람이 많은 나라. 내 주위에도 시나 수필, 소설을 쓰는 이들이 제법 많다. 정말 열심히 열정을 태우는 이들을 볼 때마다 자극받기도 하지만 금세 사그라지고 마는 양상의 반복인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시를 좋아하지만 재능이 없어 고민이라는 말에 그는 차분하게 조언한다. 아마 쓰지 않겠다고 생각해도 늘 머릿속에 시가 있을 것이라며 꾸준하게 써보면 좋겠다고. 작품을 차곡차곡 모아서 책을 먼저 출판해도 좋겠다는 것이다. 나무를 그냥 바라보지 말고 스스로 나무가 되어서 세상을 바라보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요즘 쓰기가 시들해져 머릿속이 복잡하던 즈음이었다. 신기하게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을 다독여주는 메신저가 나타나곤 한다. 잊을만하면 우편으로 받게 되는 지인들의 시집이나 수필집을 접하면서 정말 잘 쓸 자신이 없다면 그만둬야 하는 것이 아닐까 고민하곤 한다. 나까지 멀쩡한 나무들의 숫자를 줄이는 대열에 동참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싶기도 했던 것이다.


요즘 수필 쓰는 연습을 한다는 말에 시가 쓰고 싶다면 그냥 '시'를 쓰라는 그의 진심 어린 말 덕분에 또 당분간은 '시'를 부여잡고 씨름하면서 글쓰기를 이어갈 듯하다. 불현듯 찾아와 금세 떠나는 가을처럼 나타난 그 시인의 다정한 말들의 유효기간이 궁금해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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